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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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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高麗史(1451)
예전에 우리 시조가 후계를 잇는 자손들에게 훈계를 내리시기를, ‘무릇 이와 같은 천한 무리는 그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니 이런 무리는 양인이 되게 하지 말라. 만약 양인이 되도록 허락한다면, 뒤에 반드시 벼슬에 올라서 점차 중요한 직책을 구하여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모의를 할 것이다. 만약 이 훈계를 거스른다면 사직이 위태로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793#3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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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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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04.30 선조실록
새벽에 상(선조)이 인정전에 나오니 백관들과 인마 등이 대궐 뜰을 가득 메웠다. 이날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상과 동궁은 말을 타고 중전 등은 뚜껑있는 교자를 탔었는데 홍제원에 이르러 비가 심해지자 숙의 이하는 교자를 버리고 말을 탔다. 궁인들은 모두 통곡하면서 걸어서 따라갔으며 종친과 호종하는 문무관은 그 수가 1백 명도 되지 않았다.
1793#40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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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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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05.01 선조수정실록 전라도
담양 부사가 군사를 거느리고 길을 떠났는데 길에서 난병을 만나 담양의 군사들도 흩어졌으며, 남원·구례·순천의 군사들도 삼례역에 도착했다가 일시에 저절로 흩어졌다. 이광이 고부 군수 왕경조를 시켜 퇴각하는 군사를 참하도록 하자, 군인들이 경조를 에워싸고 전주까지 왔는데 경조가 도망하여 면하였다. 남원 부사 윤안성과 구례 현감 조사겸이 모두 본읍으로 달려 돌아와 군사를 불러모아 거느리고 공주로 진격하였다.
1793#2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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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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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05.03이후 선조수정실록
적이 종묘를 불태웠다. 적이 처음 도성에 침입했을 때 궁궐은 모두 타버리고 종묘만 남아 있었으므로 왜의 대장 평수가가 그 곳에 거처하였는데, 밤중에 괴이한 일이 많고 따르던 졸개 중에 갑자기 죽는 자도 생겼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곳은 조선의 종묘로서 신령이 있는 곳이다.’고 하자, 평수가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종묘를 태워버리고 남방(남별궁)에 이거하였다.
1793#36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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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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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05.12 형평사 발기회
경남 진주에서는 이왕제도(이씨조선의 제도)에서 백정이라하여 차별대우를 받던 이들이 차별의 철폐를 주장하고 남과 같은 대우를 받겠다는 취지로 형평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함은 본보에 이미 소개한 바이거니와 오는 13일에는 동사 발기회를 진주좌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부근 각 군에도 권유문을 돌렸는데 대구부에서도 명치정에 있는 우피상(소가죽 상인) 김경삼 외 몇 사람의 발기로 지부를 설치하였다더라.
1793#39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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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미록
임진왜란 때 한 의병장이 남긴 기록 중에 '쇄미록'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 보면 이런 한탄이 나옵니다. 왜군이 쳐들어왔는데 저 아랫것들이 의병 모이라면 하나도 안 모이고, 일본군 환영해서 걱정이라는 것이지요. 그 때 일본군 점령정책이 동네마다 쌀 나눠주고 먹을 것 나눠주는 것이었거든요.
1793#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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