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6.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나? > (5) 한국통일의 배경
 
 0051 삼국사기(1145)
모본왕은 날로 포학해져 앉아 있을 때에는 항상 사람을 깔고 앉았고, 누울 때에는 사람을 베개 삼았다. 사람이 혹 움직이면 용서하지 않고 죽였다. 신하로서 간하는 자가 있으면 활을 당겨 그에게 쏘았다.
http://qindex.info/i.php?f=1949#32954
 
 0053 삼국사기(1145)
두로가 칼을 품고 모본왕 앞으로 나아가니 왕이 그를 눌러 끌어다 앉자, 이에 칼을 뽑아 왕을 죽였다.
http://qindex.info/i.php?f=1949#32955
 
 0300-08 삼국사기(1145)
봉상왕이 나라 안의 남녀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궁실을 수리하였다. 백성들이 먹을 것이 모자라고 일이 괴로워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http://qindex.info/i.php?f=1949#38192
 
 0371-10 삼국사기(1145)
근초고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고국원왕이 군대를 내어 막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이 달 23일에 서거하였다. 고국의 들에 장사지냈다.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표를 보내어 말하기를 '쇠(釗 고국원왕)의 머리를 베어 매달았다.'고 하였는데 지나친 말이다.
http://qindex.info/i.php?f=1949#26217
 
 0472 위서(554)
(개로왕이 북위에 올린 표) 그들의 선조인 쇠(釗 고국원왕)가 이웃간의 우호를 가볍게 깨뜨리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신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그리하여 신의 선조인 수(須 근구수왕)가 군사를 정돈하고 번개처럼 달려가서 기회를 타 돌풍처럼 공격하여, 화살과 돌이 오고 간지 잠깐만에 쇠의 머리를 베어 높이 매달으니, 그 이후부터는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http://qindex.info/i.php?f=1949#32743
 
 0475 삼국사기(1145)
개로왕은 나라 사람들을 모두 징발하여 흙을 쪄서 성을 쌓고, 안에는 궁실과 누각과 대사 등을 지었는데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욱리하에서 큰 돌을 가져다가 곽을 만들어 부왕의 뼈를 장사하고, 강을 따라 둑을 쌓았는데 사성 동쪽에서 숭산 북쪽에까지 이르렀다. 이로 말미암아 창고가 텅 비고 백성들이 곤궁해져서 나라의 위태로움은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심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949#26216
 
 0475-09 삼국사기(1145)
고구려왕 거련(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수도 한성을 포위했다. 개로왕이 싸울 수가 없어 성문을 닫고 있었다. ... 성안이 위험에 빠지고 왕은 도망하여 나갔다. 고구려 장수 걸루 등이 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왕의 낯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서 죄목을 따진 다음 아차성 밑으로 묶어 보내 죽이게 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949#26215
 
 0478 삼국사기(1145)
병관좌평 해구가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법을 어지럽히며 문주왕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왕이 능히 제어하지 못하였다. 왕이 사냥을 나가 밖에서 묵었는데 해구가 도적을 시켜 해치게 하여 드디어 죽었다.
http://qindex.info/i.php?f=1949#32953
 
 0554 삼국사기(1145)
성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http://qindex.info/i.php?f=1949#26214
 
 0642 삼국사기(1145)
장군 윤충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였다. 성주 품석이 처자를 데리고 나와 항복하자 윤충이 그들을 모두 죽이고 그의 목을 베어 서울에 보내고 남녀 1천여 명을 사로잡아 서쪽 지방의 주, 현에 나누어 살게 하고 군사를 남겨 그 성을 지키게 하였다. 의자왕이 윤충의 공로를 표창하여 말 20필과 곡식 1천 석을 주었다.
http://qindex.info/i.php?f=1949#26220
 
 0642 삼국사기(1145)
대야성이 패하였을 때 도독 품석의 아내도 죽었는데, 이는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가 이를 듣고 기둥에 기대어 서서 하루 종일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그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얼마가 지나 “슬프다! 대장부가 되어 어찌 백제를 삼키지 못하겠는가?”하고는, 곧 선덕왕을 찾아뵙고 “신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군사를 청하여 백제에게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라 말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949#26219
 
 0660 삼국사기(1145)
의자왕이 좌우 측근을 데리고 밤을 타서 도망하여 웅진성에 몸을 보전하고, 의자왕의 아들 융(隆)은 대좌평 천복 등과 함께 나와 항복하였다. 법민이 융(隆)을 말 앞에 꿇어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은 적이 있다.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골치를 앓게 하였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구나!” 융은 땅에 엎드려 말이 없었다.
http://qindex.info/i.php?f=1949#26218
 
 ¦한국통일의 배경
한국통일의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먼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백제 의자왕은 군사를 보내 대야성을 빼앗게 하였는데 이때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살해되었다. 이에 분노한 김춘추는 보복을 위해 고려에 군사적 지원을 얻으러 갔으나 거절당한다. 다시 일본에도 가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당나라로 가서 마침내 동맹을 성사시키고 백제를 멸망시키게 된다. 그런데 김추추와 같은 원한은 삼국 사이에 항상 있 ...
http://qindex.info/i.php?f=1949#5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