久麻那利는 공주인데 차령 남쪽 금강 가에 있으므로 이곳을 별읍으로 둔 下哆唎 또한 공주 남쪽 금강 수계에 있었을 듯하다. 금강은 상류에서 북쪽로 흐르다 계룡산을 돌아 하류에서는 서남쪽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上哆唎와 下哆唎를 각각 금강의 상류와 하류로 설정해 본다. 이는 上己文, 上奇物 그리고 下奇物에도 적용되는 방식이다.
훗날 왜는 哆唎에서 나아가 신라를 치고 백제로 돌아갔는데, 금강 상류가 백제와 신라가 접전을 벌이던 곳이라 이 설정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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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三國志(289)
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莫盧國·占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29536#1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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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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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0 圎山郷
▐ 백제가 마한을 멸망시킬 때 圓山과 錦峴은 이듬해까지 항복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 圓山은 圎山郷과 관련이 있어 보이고 圎山郷은 신라의 서쪽 경계라고 했으므로 圓山은 대전이 어울린다.
이곳은 562년에 왜가 백제에서 신라를 공격할 때 출발한 哆唎에도 대응된다.
또 백제가 母山城을 공격한 이듬해에 拘壤 그리고 그 이듬해억 圎山郷을 공격한 것으로 보아 母山城과 拘壤도 대전에서 멀지 않을 듯하다.
29536#3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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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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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7 日本書紀(720)
천황이 백제가 고려에게 패배했음을 듣고 久麻那利를 문주왕에게 주어 그 나라를 구원해 일으키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백제국은 비록 거의 망해 창하에 모여 근심하고 있으나, 실로 천황에게 의지하여 다시 그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였다. 문주왕은 개로왕의 동생이다. 일본구기에서는 “久麻那利를 말다왕에게 주었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잘못일 것이다. 구마나리는 任那國 下哆呼唎縣의 別邑이다.
29536#2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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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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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12 日本書紀(720)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의 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의 4현을 청했다. 哆唎國守 수적신압산이 “이 4현은 백제와 인접해 있고 일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통하기 쉽고 닭과 개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니 지금 백제에게 주어 합쳐서 같은 나라로 만들면 굳게 지키는 계책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표에 따라 임나의 4현을 주었다.
29536#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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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0.09 日本書紀(720)
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어느 정도의 군사가 있으면 신라를 칠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다. 물부대련미여 등이, “적은 군사로는 쉽게 칠 수 없습니다. 지난 번 백제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임나의 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의 네 현을 청하였는데, 대반대련금촌이 표에서 청하는 대로 구하는 곳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의 원망이 여러 해 동안 쌓여 갔으니 가볍게 칠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29536#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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