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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la > 0291~0368 ❷ 三韓의 再編 |
三韓²=百濟+新羅+任那=韓國²
┆중국의 통일 왕조인 晉이 망하고 중국이 분열되자 반도도 재편되었다.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은 百濟, 新羅 그리고 任那로 바뀌었고 樂浪은 高麗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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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7 三國史記(1145)
(신라) 伊西國이 금성을 공격해 왔으므로 우리 편에서 군사를 크게 일으켜 막았으나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홀연히 이상한 군사가 왔는데, 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그 사람들은 모두 귀에 대나무 잎을 달고 있었다. 우리 군사와 함께 적을 공격하여 깨뜨린 후 어디로 간지를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대나무 잎 수만 장이 죽장릉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 청도에 伊西面이 있다.
2408#3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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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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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04┆5주갑인상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에는 백제가 마한 50여국의 하나로 나오고 신라가 변진 24국의 하나로 나오지만, 414년에 세워진 광개토왕릉비에는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나오지 않고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안라 등이 나온다.
따라서 삼국지와 광개토왕릉비 사이에 한국에서 큰 재편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8~9년에 망했다는 삼국사기의 마한 기록은 5주갑을 인하해야 자연스럽다.
2408#1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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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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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04 자치통감(1084)
遼東張統據樂浪 帶方二郡 與高句麗王乙弗利相攻 連年不解 樂浪王遵說統帥其民千餘家歸廆 廆爲之置樂浪郡 以統爲太守 遵參軍事
요동의 장통이 낙랑 대방 2군에 있으면서 고구려왕 을불과 서로 공격하여 여러 해 동안 풀리지 않았다. 낙랑의 왕준이 장통에게 권고하여 그 백성 1,000여 가를 이끌고 외(慕容廆)에게 귀부케 하였다. 외가 이들을 위하여 낙랑군을 두고 장통을 낙랑태수로, 왕준을 낙랑군 참군사로 삼았다.
2408#3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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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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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8 자치통감(1084)
송황(宋晃)은 338년에 후조의 석륵이 모용황을 공격하자 전연의 성주내사 최도(崔燾), 거취령 유홍(游泓), 동이교위 봉추(封抽) 등과 함께 이에 내응하였다. 그러나 석륵이 오히려 패하고 모용황이 반했던 성들을 토멸하자, 최도는 석륵에게로, 송황은 봉추·유홍과 함께 고구려로 망명해 왔다. 석륵이 같은 해 고구려에 양곡 30만 곡(斛)을 배 300척에 실어 보낸 것도 이러한 사정에서였다.
2408#4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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