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에서 발견된 고려비에는 古牟婁城守事라는 관직명이 나오는데, 이로 보아 古牟婁城은 이곳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 古牟婁城은 이름으로 보아 牟婁城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牟婁를 포함하는 4현이 구마나리에서 멀지 않았다고 하므로, 牟婁의 위치를 구마나리와 충주 사이로 설정한다. 구마나리는 공주이므로 牟婁는 지금의 청주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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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三國志(289)
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莫盧國·占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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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廣開土王陵碑
攻取
牟婁城
古牟婁城
모루성, 고모루성 등을 공격하여 얻었다.
殘主困逼獻出男女生口一千人細布千匹
백잔주가 1천 명의 남녀와 1천 필의 세포를 바쳤다.
得五十八城村七百將殘主弟幷大臣十人旋師還都
58성 700촌을 얻고 백잔주의 동생과 대신 10인을 데리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新來韓穢
牟婁城二家爲看烟
古牟婁城國烟二看烟八
새로 온 한과 예.
모루성 1집은 간연이다.
고모루성은 국연이 1집이고 간연이 8집이다.
8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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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9 中原高麗碑
古牟婁城守事下部大兄耶□
고모루성 수사 하부 대형 야□
▐ 국사편찬위원회┆古牟婁城守事는 耶□라는 인물의 관직명이고 下部는 출신부명이며 大兄은 관등명이다. 古牟婁城守事는 모두루묘지에 보이는 北夫餘守事와 마찬가지로 고모루성 장관을 의미한다. 大兄은 중원고려비와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周書 고려전에 의하면 13등급으로 이루어진 고구려 관등조직에서 3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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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日本書紀(720)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의 上哆唎·下多唎·娑陀·牟婁의 4현을 청했다. 哆唎國守 수적신압산이 “이 4현은 백제와 인접해 있고 일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백제와는) 아침 저녁으로 통하기 쉽고 (어느 나라의) 닭과 개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니 지금 백제에게 주어 합쳐서 같은 나라로 만들면 굳게 지키는 계책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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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中原京 本髙句麗國原城 新羅平之 眞興王置小京 文武王時築城 周二千五百九十二歩 景徳王改爲中原京 今忠州
중원경은 본래 고구려 국원성이었는데 신라가 이를 평정하였다. 진흥왕이 소경을 세우고 문무왕 때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2592보였다. 경덕왕이 중원경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은 충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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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漢山州 國原城(一云未乙省 一云託長城)
한산주 국원성(미을성이라고도 하고 탁장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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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 未乙(미을)은 마을(村)과 발음이 비슷하다.
이곳에서 발견된 중원고려비(449)에는 古牟婁城이 언급되고 있는데 牟婁는 광개토왕릉비(414)와 일본서기(720)에도 언급되어 있다.
牟婁는 일본에서 むろ로 발음되는데 마을을 뜻하는 말인 むら(村)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충주의 옛 지명이 牟婁였고 마을을 뜻하는 말에서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인근에 牟婁城이 새로 만들어지며 충주는 古牟婁城으로 불려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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