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475~0561 年代記 > 0527~0530 近江毛野臣

527년에 왜는 근강모야신으로 하여금 6만의 군사를 이끌고 임나에 나아가 남가라와 녹기탄을 다시 세워 임나에 합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축자국조 반정이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529년 왜는 다시 모야신을 안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여 이 문제의 해결을 맡겼다. 530년 임나의 사신이 왜에 와서 모야신의 폭정을 폭로하였다. 왜는 목협자를 보내 모야신을 불렀다. 모야신은 가는 도중 대마도에서 병이 나서 죽었다.
 
0527 근강모야신 요약
527년에 왜는 근강모야신으로 하여금 6만의 군사를 이끌고 임나에 나아가 남가라와 녹기탄을 다시 세워 임나에 합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축자국조 반정이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529년 왜는 다시 모야신을 안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여 이 문제의 해결을 맡겼다. 530년 임나의 사신이 왜에 와서 모야신의 폭정을 폭로하였다. 왜는 목협자를 보내 모야신을 불렀다. 모야신은 가는 도중 대마도에서 병이 나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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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근강모야신의 결과
여기서 임나에 대한 왜(倭)의 개입이 어떤 양상이었는지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임나에는 '한기'라고 불리는 여러 왕들이 있었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아 임나의 여러 나라는 기본적으로 여느 왕국과 다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왜(倭)가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임나의 여러 나라와 주변의 왕국 사이에서 질서를 주도하였는데 이 점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임나와 왜(倭)는 바다로 갈라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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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06 近江毛野臣
왜는 근강모야신으로 하여금 6만의 군사를 이끌고 임나에 나아가 南加羅와 㖨己呑을 다시 세워 임나에 합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筑紫國造 磐井이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 삼국사기에 신라왕이 남쪽 변방의 새로 넓힌 지역을 두루 돌아본 시기를 524년이라 하였으므로 신라가 南加羅와 㖨己呑을 차지한 시기도 524년이나 그 이전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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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03 近江毛野臣
근강모야신을 안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여 신라에 천황의 칙을 전하여 남가라와 녹기탄을 재건토록 권하였다. 백제는 장군 군윤귀, 마나갑배, 마로 등을 보냈고 신라는 번국에 있는 관가를 멸망시켰으므로 두려워하여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보내지 않고 부지나마례와 해나마례 등을 보냈다. 이때 안라는 새로 고당을 만들어 칙사와 안라의 국주 및 관위가 높은 자만 당에 오르게 하고 백제와 신라의 사신은 회의가 계속되는 몇 달 동안 당 아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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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04 近江毛野臣
사신을 보내 근강모야신에게 시정을 명하자 모야신은 熊川(또는 久斯牟羅)에서 신라와 백제 왕들을 소집하였다. 그러나 신라왕 佐利遲는 구지포례를 보내고 백제는 은솔 미등리를 보냈다. 모야신이 두 나라의 사신을 돌려보내자 신라는 상신 이질부례지간기를 무리 3천명을 딸려서 보냈다. 모야신은 멀리서 보고 熊川으로부터 임나의 己叱己利城으로 들어갔다. 이질부례지는 多多羅原에 머물면서 석 달을 기다리다 네 촌을 초략하여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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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09 近江毛野臣
임나의 사신이 “모야신이 久斯牟羅에 택사를 짓고 머문지 오래 되었으나 정사는 게을리하고 있습니다. 즐겨 誓湯을 설치하여 ‘사실을 말하는 자는 데이지 않을 것이며 거짓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데일 것이다’라고 하며 끓는 물 속에 던져 넣으니 죽는 자가 많습니다. 항상 백성을 괴롭히고 용서하는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천황은 사람을 보내어 불러들였으나 모야신은 임무를 완수한 다음 돌아가 사죄하겠다며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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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09 近江毛野臣
아리사등은 모야신에게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으나 듣지 않자 구례사기모와 노수구리를 각각 신라와 백제에 사신으로 보내어 군사를 청하였다. 모야신은 백제병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배평에서 맞아 싸웠으나 사상자가 절반이나 되었다. 백제는 신라와 함께 성을 포위하고 한 달간 머무르다 돌아가는 길에 騰利枳牟羅·布那牟羅·牟雌枳牟羅·阿夫羅·久知波多枳 다섯 성을 함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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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10 近江毛野臣
조길사가 임나로부터 돌아와서 “모야신은 사람됨이 오만하고 정사에도 익숙하지 못하여 포용하는 마음이 없어, 가라를 혼란케 하고 환란을 막지도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래서 목협자를 보내어 불러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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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10 近江毛野臣
모야신이 부름을 받아 대마에 이르러 병에 걸려 죽었다. 장송을 위한 배는 강을 거슬러 올라 근강에 이르렀다. 그 처가 노래하였다. "매방을 거쳐 피리를 불며 배가 올라오네. 근강의 모야라는 젊은 서방님이 피리를 불며 올라오네." 한편 목협자가 처음 임나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 있는 일본인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한국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목협자는 왔는가. 저 멀리 일기로부터 목협자가 건너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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