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옛날 이야기 > 만파식적
 
단군설화의 기원
ᐥ단군설화는 중국의 위만이 평양으로 건너와 세웠다는 위만조선의 건국설화에서 비롯되었다.ᐥ
 
1145 삼국사기 -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여름 4월에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로 놀러 갔을 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출행하였다가 그를 보고서 묻기를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가?”하고는 마침내 함께 돌아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호동이 나라로 돌아와 몰래 사람을 보내 최씨 딸에게 알려서 말하기를 “만일 그대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 북과 뿔피리를 찢고 부수면 내가 예로써 맞이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이하지 않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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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 -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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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 -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1145 삼국사기 -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이 이야기에 나오는 고구려는 맥이고 낙랑국은 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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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 -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왕 최리가 32년에 고려의 호동 왕자에게 딸을 시집보냈다가 37년에 고려의 침공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그 유민이 신라로 흘러간 낙랑은 36년, 14년 그리고 4년에 신라를 침공한 낙랑이다. 이 낙랑은 -2년에 백제를 침공하고 -8년에 말갈로 하여금 백제를 침공하게 한 낙랑이기도 하다. -6년에 백제는 이 낙랑을 東有樂浪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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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 - 만파식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신녀왕(神女王) 때 동해 가운데 홀연히 한 작은 산이 나타났는데, 형상이 거북 머리와 같았다. 그 위에 한 줄기의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갈라져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베어다가 적(笛)을 만들어, 이름을 만파식(萬波息)이라고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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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 만파식적 1
제31대 신문대왕(神文大王)의 이름은 정명(政明)이며, 성은 김씨다. 개요(開耀) 원년 신사(辛巳) 7월 7일에 왕위에 올랐다. 부왕(聖考)인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해 동해 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 절에 있는 기록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처음으로 짓다가 다 끝마치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개요 2년(682)에 끝마쳤다. 금당 섬돌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 하나를 뚫어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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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 만파식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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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 만파식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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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 만파식적 2
왕의 아버지 대각간 효양(大角干 孝讓)이 대대로 전해져 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왕에게 전했다. 왕은 이것을 얻었으므로 하늘의 은혜를 두텁게 입어 그 덕이 멀리까지 빛났다. 정원(貞元) 2년 병인(丙寅) 10월 11일에 일본왕 문경(文慶, 日本帝紀를 살펴보면, 제55대 왕 文德인 듯한데 이것이 옳다. 그 후에는 문경이 없다. 다른 본에서는 이 왕의 태자라고도 한다)이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했으나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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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 만파식적 3
천수(天授) 3년 임진(壬辰) 9월 7일에 효소왕(孝昭王)은 대현(大玄) 살찬(薩喰)의 아들 부례랑을 국선(國仙)으로 삼았다. 낭도[珠履]가 천 명이었는데 안상(安常)과 더욱 친하였다. 천수(天授) 4년 즉 장수(長壽) 2년 계사(癸巳) 늦은 봄에 낭도들을 거느리고 금란(金蘭)으로 출유하여 북명(北溟) 지경에 이르러 적적(狄賊)들에게 붙잡혀 갔다. 문객들은 모두 어찌할 줄을 모르고 돌아왔으나 안상만이 홀로 그것을 추적하였는데 이는 3월 11일(6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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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 만파식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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