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왜의 한반도 간섭 지구인 임나를 병합하고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왜와 친밀하게 지내던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왜의 대규모 원병마저 당나라와 함께 격멸시켰다. 일본서기는 백제의 유민이 가져온 기록과 그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당연히 신라에 대한 혐오가 담기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는 1300여 년 후 한국을 통치할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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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新羅國
소잔오존의 하는 짓이 매우 버릇이 없었으므로 여러 신들이 그 벌로 많은 재물을 바치게 하고 마침내 쫓아 내었다. 이 때 소잔오존은 그의 아들 오십맹신을 데리고 新羅國에 내려가 증시무리란 곳에 살았다. 말하기를 “이 땅에서 나는 살고 싶지 않다”하고는 찰흙으로 배를 만들어 그것을 타고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출운국 파천 가에 있는 조상봉에 도착했다.
11918#1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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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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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韓鄕
어떤 책에는 말하였다. 소잔오존이 “韓鄕의 섬에는 금은이 있다. 만약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배가 없으면 (한국으로 건너갈 수 없으니) 좋지 않다”하고는 수염을 뽑아 뿌리니 삼나무가 되었다. 또 가슴의 털을 뽑아서 뿌리니 이것이 전나무가 되었고 꽁무니의 털은 비자나무가 되었으며 눈썹의 털은 녹나무가 되었다.
11918#13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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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320
足仲彦천황이 죽자 황후는 남자의 복장을 하고 신라를 정벌하였다. 신라왕 宇流助富利智干을 사로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하였다. 조금 있다가 목을 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머물게 하여 신라의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는데 신라왕의 처가 재상을 유인하여 죽였다. 왜가 다시 쳐들어가자 신라인들이 신라왕의 처를 죽여 사죄하였다.
11918#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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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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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325
신라왕이 오례사벌과 毛麻利叱智, 부라모지 등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전에 볼모로 와 있던 微叱許智伐旱을 돌아가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함께 대마에 도착하여 서해의 수문에 머물렀을 때 신라의 사신이 몰래 배와 뱃사공을 나누어 미질한기를 태우고 신라로 도망가게 하였다. 습진언이 신라 사신 세 사람을 붙잡아서 우리 속에 집어넣고 불태워 죽였다.
11918#13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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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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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369
왜의 황전별과 녹아별이 탁순에 이르러 사백과 개로를 백제에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백제의 목라근자와 사사노궤가 오자 함께 신라를 치고 7국을 평정하였다. 서쪽으로 가 고해진에 이르러 침미다례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초고와 귀수가 왔는데 이때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초고는 의류촌에서 왜군을 전송하고 천웅장언과 함께 백제의 벽지산과 고사산에 차례로 올라 맹세하고 도읍으로 돌아와 대접한 뒤 구저를 딸려 천웅장언을 보냈다.
11918#1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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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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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405
평군목토숙녜, 적호전숙녜를 가라에 보냈다. 정병을 주며 “습진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분명히 신라가 방해하여 체류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빨리 가서 신라를 치고 길을 열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목토숙녜 등이 정예병을 이끌고 나아가 신라의 국경에 이르렀다. 신라왕은 놀라 사죄하였다. 궁월의 인부를 거느리고 습진언과 함께 돌아왔다.
11918#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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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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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463
전협은 궁중에서 시종을 하고 있었는데 큰 소리로 아내 치원의 미모를 자랑하였다. 천황이 듣고 전협을 임나국사로 보낸 뒤 치원과 동침하였다. 그 소식을 듣은 전협은 신라로 망명할 생각을 하였다.
신라는 이때 倭를 섬기지 않고 있었는데 천황은 전협의 아들 제군에게 신라를 정벌하라 명했다. 제군은 무리를 이끌고 백제에 도착하여 신라에 들어가다 되돌아가 섬에 머물렀다.
이를 못마땅해 한 제군의 아내 장원이 제군을 죽이고 천황이 보낸 사람을 따라 복명하였다.
11918#1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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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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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464
웅략 천황이 즉위한 이후 8년째 신라는 倭를 섬기지 않고 고려와 우호를 맺어 고려의 날랜 병사 100명이 신라를 지켜 주었다.
그러나 고려가 신라를 삼키려 한다는 오해를 한 신라왕이 고려군을 죽이게 하였고 고려는 군사를 일으켜 신라로 쳐들어갔다.
사방에서 고려군의 노랫소리가 들리자 신라는 임나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日本府 行軍元帥로 하여금 구원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임나왕이 선신반구, 길비신소리, 난파길사적목자에게 권하여 신라를 구해주도록 했다.
11918#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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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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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465
천황이 “신라는 본래 서쪽 땅에 있으면서 여러 대에 걸쳐 신하를 칭하며 조빙을 어기지 않았고 공물도 잘 바쳤다. 짐이 천하를 다스리자 고려의 조공을 막고 백제의 성을 병탄하였다. 조빙을 걸렀으며 공물도 바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기소궁숙니 등이 신라에 들어가 㖨의 땅을 평정하였으나 남은 무리들이 항복하지 않았다. 기소궁숙니는 대반담련 등과 만나 군대를 다시 크게 일으켜 남은 무리와 싸웠다.
대반담련은 싸우다가 죽었고 기소궁숙니는 병에 걸려 죽었다.
11918#1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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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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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485
신라가 조공하지 않았다.
상모야군의 선조 죽엽뢰를 파견하여 조공하지 않은 까닭을 묻게 하였다. 또 죽엽뢰의 아우 전도를 파견하며 “만일 신라가 막으면 군사를 일으켜 치라.”고 명하고 정병을 주었다. 이에 신라가 군사를 일으켜 막았다. 신라군이 무너지자, 그 틈을 타 군사를 풀어 수백 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4읍의 백성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11918#1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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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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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562
신라 장군이 하변신경부 등과 그를 따라왔던 부인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때는 아버지와 아들,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도울 수가 없었다. 신라 장군이 하변신에게 “汝命與婦 孰與尤愛 너의 목숨과 부인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아끼는가”라고 묻자 “何愛一女 以取禍乎 如何不過命也 어찌하여 한 여자를 아껴 화를 당하겠습니까. 어떤 것도 목숨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라 대답하고 첩으로 삼기를 허락하였다. 신라 장군은 마침내 벌판에서 그 부인을 간음하였다.
11918#1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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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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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562 欽明天皇
“신라는 서쪽의 오랑캐로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다. 궁색해서 항복한 것을 불쌍히 여겨 목이 베어질 처지의 신라왕을 온전하게 두었고 신라에게 요충의 땅을 주어 유달리 번영하게 했다. 그러나 신라는 긴 창과 강한 활로 임나를 능욕했고 커다란 이빨과 갈고리 같은 손톱으로 중생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쓸개를 쏟고 창자를 꺼내는 심정으로 간악한 역도를 벌주지 못한다면 죽어도 신하와 자식의 도리를 이루지 못한 한이 남을 것이다.”
11918#1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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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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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0571 欽明天皇
3월에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임나를 멸망시킨 사유를 물었다.
4월에 병환으로 자리에 누웠다. 밖에 나가 있던 황태자를 역마로 불러들이니 그의 손을 잡고 명하기를 “내 병이 심하니 이후의 일을 너에게 맡긴다. 너는 반드시 신라를 쳐서 임나를 세워 봉하라. 다시 서로 화합하여 옛날과 같이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이 달 내전에서 죽었다.
8월에 신라가 조문사를 보내어 빈소에서 죽음을 애도하게 하였다.
11918#8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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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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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45 일본통치기
일조시대 영남은 가장 살기 힘든 곳이었다. 이는 만주와 일본으로 이주해간 사람의 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재일교포의 본적지 구성은 경남 27%, 경북 20%, 제주 16%, 서울 11%, 전라도 9%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일본군 위안부도 영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본 통치에 대한 저항도 경상도가 가장 거셌는데, 본적지별 독립유공자의 분포는 경상도 3500여 명, 전라도 2300여 명, 평안도 2200여 명 등으로 나타나 있다.
11918#13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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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今西龍(いまにしりゅう)
車峴以南公州江外를 지금의 전라도로 보고, ① 왕건이 나주 출신 부인의 아들을 태자(혜종)로 삼았고 ② 장흥 출신인 정안 임씨가 인종과 의종의 외척이었으며 ③ 최지몽(영암)·유방헌(전주)·김심언(영광)·전공지(영광) 등 전라도 출신 인물이 왕씨고려 전기 정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을 들어, 신라계인 최항이 견훤백제 출신을 견제하기 위해 8조를 날조했다고 주장했다.
11918#2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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