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新羅民族論 > 0369 任那 > 자료 > 일본의 신라 혐오

신라는 왜의 한반도 간섭 지구인 임나를 병합하고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왜와 친밀하게 지내던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왜의 대규모 원병마저 당나라와 함께 격멸시켰다. 일본서기는 백제의 유민이 가져온 기록과 그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당연히 신라에 대한 혐오가 담기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는 1300여 년 후 한국을 통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0720 日本書紀 新羅國
소잔오존의 하는 짓이 매우 버릇이 없었으므로 여러 신들이 그 벌로 많은 재물을 바치게 하고 마침내 쫓아 내었다. 이 때 소잔오존은 그의 아들 오십맹신을 데리고 新羅國에 내려가 증시무리란 곳에 살았다. 말하기를 “이 땅에서 나는 살고 싶지 않다”하고는 찰흙으로 배를 만들어 그것을 타고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출운국 파천 가에 있는 조상봉에 도착했다.
13034
 
0720 日本書紀 韓地
처음에 오십맹신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나무의 종자를 많이 가지고 왔다. 그러나 韓地에는 심지 않고 모두 가지고 돌아와 마침내 축자로부터 대팔주국 안에 심어 푸른 산이 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오십맹신을 일컬어 공이 있는 신이라 하는데, 기이국에 모셔진 대신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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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日本書紀 韓鄕
어떤 책에는 말하였다. 소잔오존이 “韓鄕의 섬에는 금은이 있다. 만약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배가 없으면 (한국으로 건너갈 수 없으니) 좋지 않다”하고는 수염을 뽑아 뿌리니 삼나무가 되었다. 또 가슴의 털을 뽑아서 뿌리니 이것이 전나무가 되었고 꽁무니의 털은 비자나무가 되었으며 눈썹의 털은 녹나무가 되었다.
13063
 
0720 日本書紀 -0028
그 국호를 彌摩那國이라 함은 이것이 연유가 된 것이다. 아라사등은 받은 붉은 비단을 자기 나라의 군부에 보관하여 두었다. 신라인이 그것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와서 붉은 비단을 모두 빼앗았다. 이것이 두 나라가 서로 원망하게 된 시초라고 한다.
13079
 
0720 日本書紀 -0028
임나인 소나갈질지가 “나라에 돌아가고 싶다.”고 청하였다. 아마도 선황의 시대에 알현하러 와서 아직 돌아가지 않았던 것인가? 그래서 소나갈질지에게 융숭하게 상을 주었다. 아울러 붉은 비단 1백 필을 주어 任那王에게 하사하였다. 그러나 신라인이 길을 막아 이것을 빼앗아버렸다. 양국의 원한이 이때 처음으로 생겼다.
13078
 
0720 日本書紀 0320
신공황후가 和珥津에서 출발하여 신라에 이르자 신라왕 波沙寐錦은 흰 끈을 목에 걸어 항복하고 토지의 도면과 백성의 호적을 봉인하여 항복하였다. 신공황후가 돌아갈 때는 微叱己知波珍干岐를 볼모로 하여 금, 은, 비단 등을 배 80척에 싣고 관군을 따르게 했다.
13219
 
0720 日本書紀 0320
足仲彦천황이 죽자 황후는 남자의 복장을 하고 신라를 정벌하였다. 신라왕 宇流助富利智干을 사로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하였다. 조금 있다가 목을 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머물게 하여 신라의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는데 신라왕의 처가 재상을 유인하여 죽였다. 왜가 다시 쳐들어가자 신라인들이 신라왕의 처를 죽여 사죄하였다.
13238
 
0720 日本書紀 0325
신라왕이 오례사벌과 毛麻利叱智, 부라모지 등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전에 볼모로 와 있던 微叱許智伐旱을 돌아가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함께 대마에 도착하여 서해의 수문에 머물렀을 때 신라의 사신이 몰래 배와 뱃사공을 나누어 미질한기를 태우고 신라로 도망가게 하였다. 습진언이 신라 사신 세 사람을 붙잡아서 우리 속에 집어넣고 불태워 죽였다.
13266
 
0720 日本書紀 0369
왜의 황전별과 녹아별이 탁순에 이르러 사백과 개로를 백제에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백제의 목라근자와 사사노궤가 오자 함께 신라를 치고 7국을 평정하였다. 서쪽으로 가 고해진에 이르러 침미다례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초고와 귀수가 왔는데 이때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초고는 의류촌에서 왜군을 전송하고 천웅장언과 함께 백제의 벽지산과 고사산에 차례로 올라 맹세하고 도읍으로 돌아와 대접한 뒤 구저를 딸려 천웅장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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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어원
ᐥ고구려는 한나라가 설치한 현도군 고구려현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ᐥ
 
0720 日本書紀 0403
弓月君이 백제에서 와서 “신은 저희 나라의 인부 120현을 이끌고 귀화하고자 하였으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加羅國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葛城襲津彦을 보내 궁월군의 인부를 가라에서 불러들이도록 하였으나 3년이 지나도록 습진언이 돌아오지 않았다.
13170
 
0720 日本書紀 0405
평군목토숙녜, 적호전숙녜를 가라에 보냈다. 정병을 주며 “습진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분명히 신라가 방해하여 체류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빨리 가서 신라를 치고 길을 열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목토숙녜 등이 정예병을 이끌고 나아가 신라의 국경에 이르렀다. 신라왕은 놀라 사죄하였다. 궁월의 인부를 거느리고 습진언과 함께 돌아왔다.
13127
 
0720 日本書紀 0463
전협은 궁중에서 시종을 하고 있었는데 큰 소리로 아내 치원의 미모를 자랑하였다. 천황이 듣고 전협을 임나국사로 보낸 뒤 치원과 동침하였다. 그 소식을 듣은 전협은 신라로 망명할 생각을 하였다. 신라는 이때 倭를 섬기지 않고 있었는데 천황은 전협의 아들 제군에게 신라를 정벌하라 명했다. 제군은 무리를 이끌고 백제에 도착하여 신라에 들어가다 되돌아가 섬에 머물렀다. 이를 못마땅해 한 제군의 아내 장원이 제군을 죽이고 천황이 보낸 사람을 따라 복명하였다.
13121
 
0720 日本書紀 0464
웅략 천황이 즉위한 이후 8년째 신라는 倭를 섬기지 않고 고려와 우호를 맺어 고려의 날랜 병사 100명이 신라를 지켜 주었다. 그러나 고려가 신라를 삼키려 한다는 오해를 한 신라왕이 고려군을 죽이게 하였고 고려는 군사를 일으켜 신라로 쳐들어갔다. 사방에서 고려군의 노랫소리가 들리자 신라는 임나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日本府 行軍元帥로 하여금 구원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임나왕이 선신반구, 길비신소리, 난파길사적목자에게 권하여 신라를 구해주도록 했다.
13111
 
0720 日本書紀 0465
천황이 “신라는 본래 서쪽 땅에 있으면서 여러 대에 걸쳐 신하를 칭하며 조빙을 어기지 않았고 공물도 잘 바쳤다. 짐이 천하를 다스리자 고려의 조공을 막고 백제의 성을 병탄하였다. 조빙을 걸렀으며 공물도 바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기소궁숙니 등이 신라에 들어가 㖨의 땅을 평정하였으나 남은 무리들이 항복하지 않았다. 기소궁숙니는 대반담련 등과 만나 군대를 다시 크게 일으켜 남은 무리와 싸웠다. 대반담련은 싸우다가 죽었고 기소궁숙니는 병에 걸려 죽었다.
13107
 
0720 日本書紀 0485
신라가 조공하지 않았다. 상모야군의 선조 죽엽뢰를 파견하여 조공하지 않은 까닭을 묻게 하였다. 또 죽엽뢰의 아우 전도를 파견하며 “만일 신라가 막으면 군사를 일으켜 치라.”고 명하고 정병을 주었다. 이에 신라가 군사를 일으켜 막았다. 신라군이 무너지자, 그 틈을 타 군사를 풀어 수백 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4읍의 백성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13027
 
0720 日本書紀 0562
신라 장군이 하변신경부 등과 그를 따라왔던 부인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때는 아버지와 아들,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도울 수가 없었다. 신라 장군이 하변신에게 “汝命與婦 孰與尤愛 너의 목숨과 부인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아끼는가”라고 묻자 “何愛一女 以取禍乎 如何不過命也 어찌하여 한 여자를 아껴 화를 당하겠습니까. 어떤 것도 목숨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라 대답하고 첩으로 삼기를 허락하였다. 신라 장군은 마침내 벌판에서 그 부인을 간음하였다.
13033
 
0720 日本書紀 0562 欽明天皇
“신라는 서쪽의 오랑캐로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다. 궁색해서 항복한 것을 불쌍히 여겨 목이 베어질 처지의 신라왕을 온전하게 두었고 신라에게 요충의 땅을 주어 유달리 번영하게 했다. 그러나 신라는 긴 창과 강한 활로 임나를 능욕했고 커다란 이빨과 갈고리 같은 손톱으로 중생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쓸개를 쏟고 창자를 꺼내는 심정으로 간악한 역도를 벌주지 못한다면 죽어도 신하와 자식의 도리를 이루지 못한 한이 남을 것이다.”
13095
 
0720 日本書紀 0571 欽明天皇
3월에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임나를 멸망시킨 사유를 물었다. 4월에 병환으로 자리에 누웠다. 밖에 나가 있던 황태자를 역마로 불러들이니 그의 손을 잡고 명하기를 “내 병이 심하니 이후의 일을 너에게 맡긴다. 너는 반드시 신라를 쳐서 임나를 세워 봉하라. 다시 서로 화합하여 옛날과 같이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이 달 내전에서 죽었다. 8월에 신라가 조문사를 보내어 빈소에서 죽음을 애도하게 하였다.
8704
 
1860 歌川国芳
1860 歌川国芳
新羅王 神功皇后に帰順奉る所。
7049
 
1890 星野恒(ほしの ひさし)
일본 신공황후에 의한 반도 침공과 구마소의 진압에 의해 한때는 한국과 일본이 통합되었지만, 신라가 반란을 일으켜 당과 연합해 백촌강의 전투에서 백제와 왜를 깨뜨려 덴지천황 때에 완전히 반도를 잃어버렸다. 호시노 히사시는 이걸 "憤慨歎惜"이라고 한탄하며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을 당연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27262 COMMENT
 
1910~1945 일본통치기
일조시대 영남은 가장 살기 힘든 곳이었다. 이는 만주와 일본으로 이주해간 사람의 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재일교포의 본적지 구성은 경남 27%, 경북 20%, 제주 16%, 서울 11%, 전라도 9%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일본군 위안부도 영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본 통치에 대한 저항도 경상도가 가장 거셌는데, 본적지별 독립유공자의 분포는 경상도 3500여 명, 전라도 2300여 명, 평안도 2200여 명 등으로 나타나 있다.
13094
 
1918 今西龍(いまにしりゅう)
왕건의 유언인 훈요십조의 8항은 차령 산맥과 금강 남쪽에 대한 지역차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今西龍은 이것이 왕건이 지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100여 년 뒤인 현종때 왕의 측근이었던 신라계 정치인 崔沆이 백제계를 견제하기 위해 날조했다고 주장했다.
13081
 
1945↶ 戦前の小学歴史教科書
7048
 
전형적인 신공황후 삼한정벌도
전형적인 신공황후 삼한정벌도
7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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