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4. 任那史 > ¦임나경영설 Quick Proof

흔히 임나경영설은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한국과 고려 그리고 중국의 기록에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일본에서도 이제 임나경영설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 교과서에는 여전히 임나경영설이 실려 있다.
 
0391 광개토왕릉비(414)
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그런데 왜가 391년에 □을 건너와 백잔 □□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11535
 
0397 삼국사기(1145) 백제본기
王與倭國結好 以太子腆支爲質 왕이 왜국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다.
11532
 
0399 광개토왕릉비(414)
백잔이 맹서를 어기고 倭와 화통하였다. 왕이 평양으로 행차하여 내려갔다. 그때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성지를 부수고 노객으로 하여금 倭의 민으로 삼으려 하니 이에 왕께 귀의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왕이 은혜롭고 자애로워 신라왕의 충성을 갸륵히 여겨, 신라 사신을 보내면서 계책을 돌아가서 고하게 하였다.
11539
 
0400 광개토왕릉비(414)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을 거쳐 신라성에 이르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任那加羅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安羅人 ... 신라성 ... 왜구가 크게 무너지고  ... 옛적에는 新羅寐錦이 몸소 고려에 와서 보고를 하며 청명을 한 일이 없었는데, 광개토왕대에 이르러 신라 매금이 ... 하여 조공하였다. 
11540
 
0402 삼국사기(1145) 신라본기
與倭國通好 以奈勿王子未斯欣爲質 왜와 우호를 통하고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볼모로 삼았다.
11533
 
0405 삼국사기(1145) 백제본기
腆支王은 阿莘이 재위 6년에 왜국에 볼모로 보냈다. 14년에 왕이 죽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가 정사를 대리하면서 태자의 환국을 기다렸는데, 막내 동생 혈례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腆支가 왜국에서 부음을 듣고 귀국하기를 청하니 왜왕이 병사 100명으로써 호위해 보냈다. 腆支는 왜인을 머물러 두어 자기를 호위하게 하고, 바다의 섬에 의거하여 기다렸더니, 나라 사람들이 혈례를 죽이고 腆支를 맞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11534
 
0451 송서(488)
加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 (왜왕 제에게) 사지절 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6국제군사를 더하였다.
11541
 
0478 송서(488)
詔除武使持節 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 安東大將軍 倭王 조서를 내려 (왜왕) 무를 사지절 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왕에 제수하였다.
11542
 
0526~0539 양직공도(제번공직도)
斯羅國本東夷辰韓之小國也魏時曰新羅宋時曰斯羅其實一也或屬韓或屬倭國王不能自通使聘普通二年其王名募秦始使隨百濟奉表献方物 사라국은 본래 동이 진한의 한 소국이었다. 조위 때에는 신라라 했고 유송 때에는 사라라 했지만 사실은 하나다. 때로는 韓에 속했고 때로는 倭에 속했다. 국왕은 스스로 사신을 보내 조빙할 능력이 없었다. 521년에 모진이라는 왕이 처음으로 백제의 편에 사신을 딸려보내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11544
 
0636 수서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並敬仰之恆通使往來 신라와 백제는 모두 왜를 대국으로 여기며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공경하고 우러러보며 항상 사신을 통하고 왕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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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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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400±)과 대선릉(519)
왼쪽 가운데 쌍분이 황남대총이고 오른쪽 전방후원분이 대선릉이다. 각각 길이가 120m와 525m로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크다. 두 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의 규모를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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