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조는 624년에 고려 영류왕을 上柱國 遼東郡王 高麗王으로 책봉하였다. 개소문은 그런 영류왕을 642년에 살해하고 집권하였기 때문에 당나라와 대립하다 결국 망했다.
삼국유사(1281)에 수나라의 장수가 고려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해 개소문으로 태어났다는 설화가 나올 정도로 개소문은 고려 멸망의 원흉이었다.
당태종으로부터 641년에 柱國 帶方郡王 百濟王으로 책봉받은 의자왕도 643년에 개소문의 고려와 손을 잡는 바람에 당나라와 멀어지고 결국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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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1 舊唐書(945)
璋卒 其子義慈遣使奉表告哀 太宗素服哭之 贈光祿大夫 賻物二百段 遣使册命義慈爲柱國 封帶方郡王百濟王
장(무왕)이 죽으니 그의 아들 의자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슬픔을 알렸다. 태종은 소복 차림으로 곡을 하고 광록대부를 추증하였으며 부조 2백 단을 내렸다. 사신을 보내어 의자를 주국으로 책명하고 대방군왕 백제왕에 봉하였다.
2611#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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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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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 新唐書(1060)
아버지는 동부대인 대대로다. 그가 죽자 蓋蘇文이 자리를 이었으나 너무 난폭하고 나쁜 짓을 하므로 대신들이 건무와 상의하여 죽이기로 하였다. 蓋蘇文이 알아차리고 거짓으로 크게 열병을 한다고 말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신들의 참석을 청하였다. 손님이 이르자 다 죽여버리니 무려 백여명이나 되었다. 또 왕궁으로 달려가 건무를 죽여 시체를 찢고 도랑에 던졌다. 그리고 건무 아우의 아들인 장을 세워 왕으로 삼고 자신은 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장악하였다.
2611#1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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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 新唐書(1060)·舊唐書(945)
新唐書(1060) 신라가 사자를 보내 글을 올려 “고려와 백제가 연합하였으므로 침범을 받을 것 같습니다. 삼가 천자께 의지합니다.” 라고 말하였다.┆舊唐書(945)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고려와 백제가 여러차례 번갈아 공습을 하여 수십 성을 잃었는데, 두 나라 군대가 연합하여 신의 사직을 없애려 합니다. ” 라고 하였다.
▐ 백제는 의자왕이 당태종으로부터 柱國 帶方郡王 百濟王으로 책봉받았으나 개소문의 고려와 손을 잡는 바람에 당나라와 멀어지게 되었다.
2611#1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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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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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6 三國史記(1145)
高勾麗貴臣淵淨土以城十二 戶七百六十三 口三千五百四十三来投 淨土及從官二十四人給衣物 糧料 家舍 安置王都及州府 其八城完 並遣士卒鎮守
고구려에서 지위가 높은 신하인 연정토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항복해 왔다. 정토와 그를 따르는 관리 24명에게 옷과 일상 용품, 식량, 집을 주어 왕도와 주·부에 안치하였다. 그 중 여덟 성은 온전하였으니 모두 사졸을 보내어 진수하게 하였다.
2611#2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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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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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6 新唐書(1060)
乾封元年 藏遣子男福從天子封泰山 還而蓋蘇文死 子男生代為莫離支 有弟男建男產相怨 男生據國內城 遣子獻誠入朝求救 蓋蘇文弟凈土亦請割地降
▐ 삼국사기(1145)에는 연정토가 666년에 12성을 들어 신라에 투항했다가 668년에 당나라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당나라는 정토가 고려땅의 일부를 들어 자신들에게 귀부한 것으로 간주한 듯하다.
2611#2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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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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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9 新唐書(1060)
徙高麗民三萬於江淮山南 大長鉗牟岑率眾反 立藏外孫安舜為主 詔高偘東州道 李謹行燕山道 並為行軍總管討之 遣司平太常伯楊昉綏納亡餘 舜殺鉗牟岑走新羅 偘徙都護府治遼東州 破叛兵於安市 又敗之泉山 俘新羅援兵二千 李謹行破之於發廬河 再戰 俘馘萬計 於是平壤痍殘不能軍 相率奔新羅 凡四年乃平 始 謹行留妻劉守伐奴城 虜攻之 劉擐甲勒兵守 賊引去 帝嘉之 封燕郡夫人
2611#2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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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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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9 新唐書(1060)
고려민 3만명을 강회와 산남으로 옮겼다. 고려의 대장 겸모잠이 무리를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켜 장의 외손 안순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고간을 동주도행군총관으로 삼고 이근행을 연산도행군총관으로 삼아 토벌케 하였다. 사평태상백 양방을 보내어 도망치고 남은 무리를 불러 들이게 하였다. 순이 겸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 났다.
2611#2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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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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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9 新唐書(1060)
간은 도호부의 치소를 요동주로 옮기고 반란군을 안시에서 격파하고 또 천산에서 쳐부수고 신라의 원병 2천명을 사로잡았다.
이근행은 그들을 발로하에서 쳐부수고 다시 싸워서 포로와 참수한 수가 1만에 이르렀다. 이에 평양의 패잔병들은 다시 군열을 정비할 수 없게 되자 함께 어울려 신라로 망명하였다. 그리하여 무려 4년만에 평정되었다.
2611#2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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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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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0 三國史記(1145)
高勾麗水臨城人年岑大兄 收合殘民 自窮牟城至浿江南 殺唐官人及僧法安䓁 向新羅行 至西海史冶島 見高勾麗大臣淵淨土之子安勝 迎致漢城中 奉以為君
고구려 수림성 사람인 모잠 대형이 남은 백성들을 거두어 모아서 궁모성으로부터 패강 남쪽에 이르러 당나라 관인 및 승려 법안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서해의 사야도에 이르러 고구려 대신 연정토의 아들 안승을 보고 한성 안으로 맞이해 들이고는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2611#2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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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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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4 三國史記(1145)
▐ 삼국사기에는 안승에 대해 王之庶子와 淵淨土之子라는 두 가지 설명이 나온다. 이 두 설명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안승이 666년에 신라에 투항했을 때 신라에 의해 고려왕으로 불려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안승은 668년에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아들 안승이 670년에 고려왕을 계승한 것이다.
신당서(1060)과 자치통감(1084)에는 안승이 각각 藏外孫과 高藏外孫으로 되어 있어 그가 보장왕의 외손주였음을 알 수 있다.
2611#2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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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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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왕씨고려 강조의 목종 살해
서경유수 康肇가 誦(목종)을 살해하고 誦의 종형 詢(현종)을 임금으로 세웠다.
요나라 성종이 “高麗康兆弑君大逆也 宜發兵問罪 고려의 강조가 임금을 시해한 것은 대역죄이므로 군사를 내어 죄를 묻는 것이 마땅하다.”라며 보병과 기병 40만 명을 거느리고 1010년 11월에 압록강을 건너와 도읍 등을 파괴하고 이듬해 2월에 돌아갔다.
▐ 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웠다가 당나라의 침공을 받은 것과 유사하다.
2611#2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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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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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三國遺事
수나라 양제는 고려를 정벌하려다 패하고 물러났다. 이때 羊皿이라는 장수가 “신이 죽어 고려의 대신이 되어서 반드시 나라를 멸망시켜 황제의 원수를 갚겠습니다”고 하였다.
羊皿은 고려에서 태어나 스스로 성을 盖라고 하고 이름을 金이라고 하였는데, 지위가 蘇文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고려를 패망으로 이끌었다.
▐ 개소문이 한 짓이 고려에 얼마나 해가 되었으면 수나라의 장수가 고려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해 개소문으로 태어났다는 설화가 만들어졌을까?
2611#2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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