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245 蓋單山嶺 > 0245 單單大領

在單單大領之東 分置東部都尉┆自單單大山領以西 屬樂浪
 
   대동강 유역과 영흥만
대동강 유역과 영흥만
① 樂浪은 대동강에 있었고 ② 濊는 그 동쪽 바닷가에 있었으며 ③ 單單大領은 樂浪과 濊 사이에 있었다.
21141#23450 SIBLINGS CHILDREN 23450
 
① 樂浪의 위치
대동강 남안에 토성이 있는데, 그 주변에 한나라 양식의 고분이 많이 출토되고 낙랑을 명시하는 새김도 발견되므로 이곳을 낙랑군의 치소로 설정한다. 그렇게 하면 역사 기록과도 잘 어울린다.
21141#23466 SIBLINGS CHILDREN 23466
 
② 濊의 위치
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沃沮接 東窮大海 今朝鮮之東皆其地也 조선의 동쪽이 다 예인데 그 동쪽은 큰 바다다.
21141#23468 SIBLINGS CHILDREN 23468
 
③ 單單大領의 위치
自單單大山領以西屬樂浪 自領以東七縣都尉主之 皆以濊爲民 단단대령의 서쪽은 낙랑에 소속되었고 단단대령의 동쪽은 도위가 통치하는데 그 백성은 모두 예인이다.
21141#23467 SIBLINGS CHILDREN OPEN
 
  樂浪, 濊 그리고 單單大領
樂浪, 濊 그리고 單單大領
21141#23469 SIBLINGS CHILDREN 23469
 
-0108 茂陵書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 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 真番郡 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 신찬이 말하기를 '무릉서에 임둔군은 치소가 동이현으로 현이 15개다. 진번군은 치소가 삽현으로 현이 15개다'라고 하였다. ▐ 신찬은 西晋(265~316) 시기의 인물이다. 무릉서는 무릉에서 출토된 한무제 시기의 공문서다.
21141#23475 SIBLINGS CHILDREN 23475
 
-0082 後漢書(445)
至昭帝始元五年 罷臨屯真番 以并樂浪玄菟 玄菟復徙居句驪 自單單大領已東 沃沮濊貊悉屬樂浪 -82년에 임둔군과 진번군을 폐지하고 낙랑군과 현도군에 합쳤다. 현도군은 다시 구려로 옮기고 옥저와 예맥은 모두 낙랑군에 소속시켰다.
21141#23472 SIBLINGS CHILDREN 23472
 
-0075 三國志(289)
漢以土地廣遠 在單單大領之東 分置東部都尉 治不耐城 別主領東七縣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불내성에 치소를 두어 별도로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 임둔군이 처음 설치될 때 15개 현이었는데 동부도위는 7개 현만 남았다. 진번군도 15개 현이었는데 대방군을 설치할 때는 7개 현이었다. 대방군의 남계는 임진강이 자연스럽고 동부도위의 남계는 철령이 자연스럽다.
21141#23476 SIBLINGS CHILDREN 23476
 
1454 世宗實錄地理志 定平
栍川(源出長谷縣 劒山 過長谷 達于預原 道安浦) 생천(근원이 장곡현의 검산에서 나와서 장곡을 지나 예원의 도안포에 이른다.)
21141#17031 SIBLINGS CHILDREN 17031
 
1454 世宗實錄地理志 永興
大川曰 沸流水 龍興江 대천은 비류수와 용흥강이다. 要害 馬餘嶺(在府西) 長城關門(在府北) 요해는 마여령(부의 서쪽)·장성관문(부의 북쪽)이다.
21141#14560 SIBLINGS CHILDREN 14560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1656 東國輿地志
大關嶺 一名大嶺 自咸鏡道之劍山 分水嶺入本道 爲鐵嶺 楸池嶺 金剛山 又自金剛 歷彌時坡嶺 雪嶽山 所冬羅嶺 五臺山 爲此嶺 橫亘千餘里 漢志 所謂單單大嶺者 卽此也 대관령은 대령이라고도 한다. 함경도의 검산으로부터 분수령이 강원도로 들어와 철령·추지령·금강산이 되고 또 금강산으로부터 미시령·설악산·소동라령·오대산을 지나 이 령이 되는데, 천여리에 걸쳐 뻗어 있다. 한지에서 말하는 단단대령이 바로 이것이다.
21141#23471 SIBLINGS CHILDREN 23471
 
1656 東國輿地志
▐ 단단대령에 대한 설명 중에서 역사 기록과 가장 어울리는 설명이다. 다만 동부도위의 남쪽 경계가 철령 즈음으로 추정되므로 단단대령도 검산에서 철령까지로 잡는 게 더 좋을 듯하다. 漢志는 후한서(445) 군국지를 말하는 듯한데, 단단대령은 군국지가 아니라 동이열전에서 언급되어 있다.
21141#23473 SIBLINGS CHILDREN 23473
 
1778 東史綱目
單大嶺 今鐡嶺内外至大關嶺ー條山嶺 是也 勝覧大關嶺亦稱大嶺 盖舊號不替也 단대령은 지금 철령 안팎에서 대관령에 이르는 한 가닥 산령이 바로 그것이다. 여지승람에서 대관령을 또한 대령이라고 칭하였으니 아마 옛이름이 없어지지 않았던가 보다. ▐ 濊의 대부분은 철령 이북이기 때문에 이 설정은 맞지 않는다.
21141#23465 SIBLINGS CHILDREN 23465
 
1814 大東水經
이곳에 세 개의 검산, 즉 상검산, 중검산, 하검산이 있고 지난날 말이 넘나들던 馬踰嶺이 있었는데 큰길을 내면서 마유령을 검산령으로 개칭하였다.
21141#15001 SIBLINGS CHILDREN 15001
 
1823 海東繹史
文獻備考 自咸鏡道之劔山分水嶺 至鐵嶺金剛五臺山 爲大關嶺 橫亘千餘里 卽單大嶺也 문헌비고에는 함경도 검산의 분수령으로부터 철령, 금강산, 오대산에 이르기까지가 대관령인데, 1000여 리에 걸쳐 뻗쳐 있는바, 바로 단대령이라고 되어 있다. ▐ 동국여지지(1656)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동국문헌비고(1770)에서 해당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혹시 한치윤이 동국여지지를 문헌비고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21141#23461 SIBLINGS CHILDREN 23461
 
1834 釰山·馬踰嶺
▐ 中釰山과 下釰山 사이에 있다. 이곳을 넘으면 長谷이다.
21141#23463 SIBLINGS CHILDREN 23463
 
1834 馬踰嶺
▐ 이곳을 넘으면 영흥의 沸流水에 이른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영흥에 있었다고 하는 馬餘嶺과 혼동했을 수도 있고 馬踰嶺이 車踰嶺과 함께 보통 명사처럼 쓰이기도 했으므로 명칭이 중복되었을 수도 있다.
21141#23462 SIBLINGS CHILDREN 23462
 
1856~1861 釰山·馬踰嶺
▐ 下釰山 남쪽에 있다.
21141#23451 SIBLINGS CHILDREN 23451
 
1884 釰山·馬踰嶺
▐ 下釰山 남쪽에 있다. 이곳을 넘으면 영흥에 이르게 된다.
21141#15046 SIBLINGS CHILDREN 15046
 
1898 馬踰嶺
▐ 대동강 유역에서 정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표시되어 있다.
21141#23464 SIBLINGS CHILDREN 23464
 
1955-
▐ 黃草嶺으로 보이는 곳에 單單大領이라 표기해 놓았다.
21141#21138 SIBLINGS CHILDREN 21138
 
千山山脈
千山山脈
단단대령이 천산산맥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낙랑에서 동쪽으로 단단대령, 예 그리고 바다가 이어졌다는 기록과 고구려에서 동쪽으로 개마대산, 옥저 그리고 바다가 이어졌다는 기록은 인정한다. 그런데 예 북쪽에 옥저가 있었다는 기록을 들이밀면 갑자기 옥저를 예 북쪽의 옥저와 동해안의 동옥저로 분할시킨다. 그러면 고구려 서쪽에 또 옥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기록은 왜 없냐고 물으면 마침내 삼국지가 역사를 조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게 된다.
21141#23470 SIBLINGS CHILDREN 23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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