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128 濊·沃沮史 > 蓋單山嶺┆五水┆東北九城 > 單單大領

在單單大領之東 分置東部都尉┆自單單大山領以西 屬樂浪
 
   대동강 유역과 영흥만
• 대동강 유역과 영흥만
① 樂浪은 대동강에 있었고 ② 濊는 그 동쪽 바닷가에 있었으며 ③ 單單大領은 樂浪과 濊 사이에 있었다.
21141#23450 SBLNGS CHLDRN 23450
 
• ① 樂浪의 위치
대동강 남안에 토성이 있는데, 그 주변에 한나라 양식의 고분이 많이 출토되고 낙랑을 명시하는 새김도 발견되므로 이곳을 낙랑군의 치소로 설정한다. 그렇게 하면 역사 기록과도 잘 어울린다.
21141#23466 SBLNGS CHLDRN 23466
 
• ② 濊의 위치
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沃沮接 東窮大海 今朝鮮之東皆其地也 조선의 동쪽이 다 예인데 그 동쪽은 큰 바다다.
21141#23468 SBLNGS CHLDRN 23468
 
› ③ 單單大領의 위치
自單單大山領以西屬樂浪 自領以東七縣都尉主之 皆以濊爲民 단단대령의 서쪽은 낙랑에 소속되었고 단단대령의 동쪽은 도위가 통치하는데 그 백성은 모두 예인이다.
21141#23467 SBLNGS CHLDRN OPN
 
  樂浪, 濊 그리고 單單大領
• 樂浪, 濊 그리고 單單大領
21141#23469 SBLNGS CHLDRN 23469
 
• -0108 茂陵書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 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 真番郡 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 신찬이 말하기를 '무릉서에 임둔군은 치소가 동이현으로 현이 15개다. 진번군은 치소가 삽현으로 현이 15개다'라고 하였다. ▐ 신찬은 西晋(265~316) 시기의 인물이다. 무릉서는 무릉에서 출토된 한무제 시기의 공문서다.
21141#23475 SBLNGS CHLDRN 23475
 
• -0082 後漢書(445)
至昭帝始元五年 罷臨屯真番 以并樂浪玄菟 玄菟復徙居句驪 自單單大領已東 沃沮濊貊悉屬樂浪 -82년에 임둔군과 진번군을 폐지하고 낙랑군과 현도군에 합쳤다. 현도군은 다시 구려로 옮기고 옥저와 예맥은 모두 낙랑군에 소속시켰다.
21141#23472 SBLNGS CHLDRN 23472
 
• -0075 三國志(289)
漢以土地廣遠 在單單大領之東 分置東部都尉 治不耐城 別主領東七縣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불내성에 치소를 두어 별도로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 임둔군이 처음 설치될 때 15개 현이었는데 동부도위는 7개 현만 남았다. 진번군도 15개 현이었는데 대방군을 설치할 때는 7개 현이었다. 대방군의 남계는 임진강이 자연스럽고 동부도위의 남계는 철령이 자연스럽다.
21141#23476 SBLNGS CHLDRN 23476
 
• 1454 世宗實錄地理志 定平
栍川(源出長谷縣 劒山 過長谷 達于預原 道安浦) 생천(근원이 장곡현의 검산에서 나와서 장곡을 지나 예원의 도안포에 이른다.)
21141#17031 SBLNGS CHLDRN 17031
 
• 1454 世宗實錄地理志 永興
大川曰 沸流水 龍興江 대천은 비류수와 용흥강이다. 要害 馬餘嶺(在府西) 長城關門(在府北) 요해는 마여령(부의 서쪽)·장성관문(부의 북쪽)이다.
21141#14560 SBLNGS CHLDRN 14560
 
• 1656 東國輿地志
大關嶺 一名大嶺 自咸鏡道之劍山 分水嶺入本道 爲鐵嶺 楸池嶺 金剛山 又自金剛 歷彌時坡嶺 雪嶽山 所冬羅嶺 五臺山 爲此嶺 橫亘千餘里 漢志 所謂單單大嶺者 卽此也 대관령은 대령이라고도 한다. 함경도의 검산으로부터 분수령이 강원도로 들어와 철령·추지령·금강산이 되고 또 금강산으로부터 미시령·설악산·소동라령·오대산을 지나 이 령이 되는데, 천여리에 걸쳐 뻗어 있다. 한지에서 말하는 단단대령이 바로 이것이다.
21141#23471 SBLNGS CHLDRN 23471
 
• 1656 東國輿地志
▐ 단단대령에 대한 설명 중에서 역사 기록과 가장 어울리는 설명이다. 다만 동부도위의 남쪽 경계가 철령 즈음으로 추정되므로 단단대령도 검산에서 철령까지로 잡는 게 더 좋을 듯하다. 漢志는 후한서(445) 군국지를 말하는 듯한데, 단단대령은 군국지가 아니라 동이열전에서 언급되어 있다.
21141#23473 SBLNGS CHLDRN 23473
 
• 1778 東史綱目
單大嶺 今鐡嶺内外至大關嶺ー條山嶺 是也 勝覧大關嶺亦稱大嶺 盖舊號不替也 단대령은 지금 철령 안팎에서 대관령에 이르는 한 가닥 산령이 바로 그것이다. 여지승람에서 대관령을 또한 대령이라고 칭하였으니 아마 옛이름이 없어지지 않았던가 보다. ▐ 濊의 대부분은 철령 이북이기 때문에 이 설정은 맞지 않는다.
21141#23465 SBLNGS CHLDRN 23465
 
• 1814 大東水經
이곳에 세 개의 검산, 즉 상검산, 중검산, 하검산이 있고 지난날 말이 넘나들던 馬踰嶺이 있었는데 큰길을 내면서 마유령을 검산령으로 개칭하였다.
21141#15001 SBLNGS CHLDRN 15001
 
• 1823 海東繹史
文獻備考 自咸鏡道之劔山分水嶺 至鐵嶺金剛五臺山 爲大關嶺 橫亘千餘里 卽單大嶺也 문헌비고에는 함경도 검산의 분수령으로부터 철령, 금강산, 오대산에 이르기까지가 대관령인데, 1000여 리에 걸쳐 뻗쳐 있는바, 바로 단대령이라고 되어 있다. ▐ 동국여지지(1656)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동국문헌비고(1770)에서 해당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혹시 한치윤이 동국여지지를 문헌비고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21141#23461 SBLNGS CHLDRN 23461
 
• 1834 釰山·馬踰嶺
▐ 中釰山과 下釰山 사이에 있다. 이곳을 넘으면 長谷이다.
21141#23463 SBLNGS CHLDRN 23463
 
• 1834 馬踰嶺
▐ 이곳을 넘으면 영흥의 沸流水에 이른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영흥에 있었다고 하는 馬餘嶺과 혼동했을 수도 있고 馬踰嶺이 車踰嶺과 함께 보통 명사처럼 쓰이기도 했으므로 명칭이 중복되었을 수도 있다.
21141#23462 SBLNGS CHLDRN 23462
 
• 1856~1861 釰山·馬踰嶺
▐ 下釰山 남쪽에 있다.
21141#23451 SBLNGS CHLDRN 23451
 
• 1884 釰山·馬踰嶺
▐ 下釰山 남쪽에 있다. 이곳을 넘으면 영흥에 이르게 된다.
21141#15046 SBLNGS CHLDRN 15046
 
• 1898 馬踰嶺
▐ 대동강 유역에서 정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표시되어 있다.
21141#23464 SBLNGS CHLDRN 23464
 
...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 1955-
▐ 黃草嶺으로 보이는 곳에 單單大領이라 표기해 놓았다.
21141#21138 SBLNGS CHLDRN 21138
 
千山山脈
• 千山山脈
단단대령이 천산산맥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낙랑에서 동쪽으로 단단대령, 예 그리고 바다가 이어졌다는 기록과 고구려에서 동쪽으로 개마대산, 옥저 그리고 바다가 이어졌다는 기록은 인정한다. 그런데 예 북쪽에 옥저가 있었다는 기록을 들이밀면 갑자기 옥저를 예 북쪽의 옥저와 동해안의 동옥저로 분할시킨다. 그러면 고구려 서쪽에 또 옥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기록은 왜 없냐고 물으면 마침내 삼국지가 역사를 조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게 된다.
21141#23470 SBLNGS CHLDRN 23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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