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地理志 > 0245 東夷 > 夫餘
 
-0221↤ 史記(-91)
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나라는 북으로 오환 및 부여와 이웃하고 동으로 예, 맥, 조선 그리고 진번과 교류하여 이익을 얻었다. ● 예, 맥 그리고 부여는 나타나나 고구려나 옥저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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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1- 부여건국설화
● 논형(80)┆삼국지(289)┆후한서(445)┆양서(636)┆수서(636)┆북사(659) ● 橐離(논형,양서)┆高離(삼국지)┆索離(후한서,북사)┆高麗(수서) ● 掩水(논형,수서)┆施掩水(삼국지)┆掩㴲水(후한서)┆淹滯水(양서,북사) ▐ 부여건국설화는 離國의 시녀가 하늘의 기운으로 낳은 東明이 掩水를 건너 夫餘를 세운다는 이야기다. 고려건국설화에도 奄利大水(광개토왕릉비), 淹㴲水(삼국사기) 그리고 盖斯水(삼국사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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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7  요동사의 무대
-0037 요동사의 무대
고려의 건국 설화는 부여의 건국 설화와 이야기 구조가 같다. 부여의 건국설화는 북쪽 나라에서 이탈한 동명이 강을 건너 부여를 세웠다는 것이고 고려의 건국 설화는 부여에서 이탈한 추모가 강을 건너 고려를 세웠다는 것이다. 부여와 고려는 발해, 金 그리고 淸과 역사 무대가 서로 얽혀 있어 요동사로 묶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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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환도성 아래
0003 환도성 아래
맥고려의 고분군이 있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부여인의 묘제는 석관묘와 토광묘였는데 비해, 맥인인 고구려인의 묘제는 적석총이어서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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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한서
北隙烏丸夫餘 東賈真番之利 玄菟樂浪 武帝時置 皆朝鮮濊貉句驪蠻夷 殷道衰 箕子去之朝鮮 教其民以禮義 연나라는 북쪽으로 오환 및 부여와 사이가 벌어지고 동쪽으로는 진번과 장사를 해서 이익을 얻었다. 현도와 낙랑은 무제때 설치했는데 조선, 예, 맥 그리고 구려 오랑캐들이다. 은나라가 쇠퇴하자 기자는 조선으로 가 예의를 가르쳤다. ● 貉句驪란 표현은 맥과 구려가 별개처럼 보이나 夷貊에서처럼 포함관계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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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1) 夫餘
지금 부여의 창고에는 옥으로 만든 구슬·잔 등 여러 대를 전해 오는 물건이 있어서 대대로 보물로 여기는데, 노인들은 선대께서 하사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도장에 濊王之印이란 글귀가 있고 나라 가운데에 濊城이란 이름의 옛 성이 있으니 아마도 본래 濊貊의 땅이었는데 부여가 그 가운데에서 왕이 되었으므로 자기들 스스로 亡人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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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1) 夫餘
● 동명설화와 연결하여, 동명이 예인들 땅에 들어가 왕조를 세우고 국호를 부여라 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이 지역의 주민은 더 이상 예인으로 불리지 않고 부여인이라 불려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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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8 속일본기(797)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 무예(무왕)는 황송스럽게도 대국을 맡아 외람되게 여러 번을 함부로 총괄하며,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扶餘)의 습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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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貊·濊·沃沮·夫餘
0926 貊·濊·沃沮·夫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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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발해의 행정구역
0926 발해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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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여진이 된 예, 맥, 부여 그리고 옥저
고려는 맥인의 나라로 시작해서 예, 옥저 그리고 부여까지 흡수하였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고 나서는 이들 지역이 모두 발해의 영역이 되었다. 발해가 망했을 때 이들 예, 맥, 부여 그리고 옥저는 흔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들 지역은 왕씨고려에서 여진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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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0 신당서(新唐書)
내부는 곧 한(漢)대의 계루부로서 황부라고도 한다. 북부는 곧 절노부로서 후부라고도 한다. 동부는 곧 순노부로서 좌부라고도 한다. 남부는 곧 관노부로서 전부라고도 한다. 서부는 곧 소노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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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고려도경(高麗圖經)
현도군 고구려현이 설치된 이후 점점 현도군에 나아가지 아니하니 군에서 동쪽 경계에 자그마한 성을 쌓고 세시에 받아가게 하였다. 이때에 와서 비로소 왕이라 일컬었다. 왕망이 고려 군사를 출동시켜 흉노를 치려고 했으나 가지 아니하매 왕을 낮추어 侯로 삼았다. 광무가 중흥하여 변방에 관원 보내는 것을 폐지하매, 건무 8년에 사신을 보내어 조회했다. 따라서 왕호를 복구시켜 주고 외번(外藩)의 반열(班列)에 끼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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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불내(不耐)와 화려(華麗) 2현은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낙랑동부(樂浪東部)에 속하고, 불이현(不二縣)은 도위(都尉)의 소재지였다. 불이(不二)는 또한 불내라고도 칭한다. 이른바 영동(嶺東) 7현(縣)이란 바로 지금의 철령(鐵嶺) 내외의 땅이니, 불내ㆍ화려 2현은 아마 옛날 이추(夷酋)의 호인데, 한 무제(漢武帝)가 강등시켜서 현(縣)으로 만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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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맥고(貊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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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예고(濊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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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夷
東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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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夷ꜛ
弱水↑⸢扶餘⸥↓高句麗 □ 鮮卑 ← 扶餘 → 挹婁 □ 扶餘↑⸢高句麗⸥↓朝鮮·濊 □ 高句麗 → 沃沮 □ 扶餘·挹婁↑⸢沃沮⸥↓濊 □ 高句麗 ← 沃沮 □ 夫餘↗挹婁 □ 未知↑⸢挹婁⸥↓沃沮 □ 高句麗·沃沮↑⸢濊⸥↓辰韓 □ 濊 → 大海 □ 朝鮮 → 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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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의 어원
高句麗는 句麗란 어근에 高라는 꾸밈말이 붙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왕망이 高句驪를 下句驪로 이름을 바꾸었다거나 삼국지에서 句麗로만 칭해지기도 한 것으로 보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句麗의 어원에 대해서는 高句麗에서 城을 溝漊라 했다는 기록과 연결하여 溝漊와 어원이 동일하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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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東夷族)은 허구의 개념
한반도와 그 주변에 관한 오래된 기록은 서기전 91년에 편찬된 사기와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가 있다. 사기에는 대동강 유역에 있던 조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삼국지에는 동이(東夷)라 하여 부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濊, 韓 그리고 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기에 나오던 조선은 삼국지가 편찬될 무렵에는 낙랑이 되어 있었다. 이 삼국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동이족(東夷族)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동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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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 맥인
맥인은 선진문헌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선진문헌의 맥인은 특정한 종족을 지칭한다기보다 중원의 바깥에 사는, 농경문화가 덜 발달된 종족들에 대한 범칭이었다. 고구려를 세운 압록강 중류 지역의 맥인은 외부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토착해서 살던 사람들이다. 청동기 문화 단계에서 요동으로부터 청동기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이어 서기전 3세기 대에 연나라가 요동군을 설치한 이후 연의 철기문화를 수용하면서 서서히 발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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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 부여
부여국의 중심지역인 부여성(夫餘城)의 위치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장춘(長春)·농안(農安) 부근으로 비정하는 설이 일찍이 제기되었다.부여성은 고구려의 북부여성이며 발해의 부여부(扶餘府)인데, 요(遼)나라가 발해를 멸한 뒤 부여부 지역에 황룡부(黃龍府)를 설치했고, 그것이 금대(金代)에 융안부(隆安府)가 되며 오늘날의 농안부근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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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 예맥
예맥에 대해서는 예와 맥으로 나누어 보거나, 예맥을 하나의 범칭으로 보는 견해, 예맥은 맥의 일종이며, 예는 예맥의 약칭이라는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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