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4-10-25 육영수 살해는 김대중 추종자들의 소행?
김일성은 북한주재 신임 소련대사 글레브 크리울린에게 신임장을 주며,
"테러범 문세광은 아마도 남조선을 지지하는 한인단체인 민단(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좌익에 속한다"며 "이들은 일본에서 납치된 남조선의 반대파 정치인인 김대중을 추종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5517
•
1980-09-11 경향신문의 김대중 비난
선동·권모술수로 얼룩진 '위선의 화신' 김대중을 벗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의 화신' 바로 그것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중 인격과 위선에 가득 찬 그의 인생경로는 급기야 자신을 환상적 사이비 지도자로 착각토록 하는 망상증에 사로잡히게 했던 것이다.
1132
•
1981-01-18 탄원서
본인은 그간 본인의 행동으로 국내외에 물의를 일으켰고 이로인해 국가안보에 누를 끼친데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국민앞에 미안하게 생각해마지 않습니다.
본인은 본인과 특히 본인의 사건에 연루되어 현재 수감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특별한 아량과 너그러운 선처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18076
COMMENT
•
1982-12-13 석방 탄원서
全斗煥 大統領 閣下
國事에 軫念하신 가운데 閣下의尊體 더욱 健勝하심을 仰祝하나이다.
閣下께서도 아시다싶이 本人은 矯導所生活이 二年半에 이르렀아온데 本來의 持病인 股關節変型症과 耳鳴등으로 苦楚를 겪고 있으며 專門醫에 依한 充分한 治療를 받고자 渴望하고 있읍니다.
本人은 閣下께서 出國許可만 해주신다면 美國에서 二 三年間 滯留하면서 完全한 治療를 받고자 희망하온데 許可하여 주시면 感謝千萬이겠읍니다.
아울러 말씀 드릴 것은 本人은 앞으로 國內外를 莫論하고 一切 ...
9135
COMMENT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광주□□
광장 중앙에 8t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사람이 몰려 웅성거렸다.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이었다. 폭도들이 운전사, 조수를 끌어내려 때리고 발로 차고 밟고 하여 두 사람이 현장에서 죽었다.
•
1997-12-31 통일 후 미군주둔 주장
“미군의 한국 및 일본 주둔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동북아에서 군사적 진공사태가 발생해 일본과 중국 사이에 패권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통일 후에도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은 김대중이 최초다. 또 미군주둔의 이유로 조선의 위협이 아닌 중국과 일본 간의 패권 경쟁을 든 것도 김대중이 최초다.
9537
•
1998-06-09 통일 후 미군주둔 주장
그는 연설 초반에 "미국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균형자로서 구실을 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제를 깔았다. 미국에 '세력균형을 잡아주는 나라'라는 지위를 부여하면서 동북아와 미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라는 논리를 편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런 맥락에서 동북아에 주둔하고 있는 10만명의 미군이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736
COMMENT
•
1998-09~12 토지공개념 폐기
노태우 정부는 토지공개념에 입각하여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그리고 개발이익환수법을 제정하였으나 김대중 정부는 택지소유상한법과 토지초과이득세법을 폐지하고 개발이익환수법은 개발 이익의 환수 비율을 50%에서 25%로 줄였다.
9171
•
2000-06-29 롯데호텔파업 강제진압
6월29일 새벽 4시 김대중정권은 경찰 3,000여명을 동원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농성중이던 롯데호텔노조 조합원들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경찰의 폭력에 의해 심하게 부상을 입었으며, 한 여성 조합원은 하반신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23096
COMMENT
•
2002-06-29 2차 연평 해전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대한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되어 30분 가량 진행된 이 전투에서 양측 모두 손상을 입었다. 북한군의 선제 공격을 당한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는 교전 후 예인도중 침몰하였고, 정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이 전사당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인명피해를 겪었다.
● 김대중은 다음날 일본으로 가 일본 천황과 나란히 월드컵 폐막식을 관람했다.
10646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