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半島의 古代 地名 > 車竹以南 - 彌支·彌知·蜜地·馬知·馬渚 > 只馬馬知→支牟 ②③④

▐ 백제 완산주의 金馬渚郡은 신라 전주의 金馬郡이 되는데, 그 사이의 웅진도독부 시절에는 노산주의 支牟縣(夲只馬馬知)이었던 거 같다. 백제가 말기에 도읍을 옮겼다는 枳慕蜜地와 취리산이 있다는 只馬縣에 대응된다. 웅진과 사비가 강변에 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왕궁터가 발견된 이곳은 산 밑이다. 만경강에서 논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다보면 왼쪽 언덕 위에 只馬馬知가 있다.
 
0289 乾馬國
25137#16809 SIBLINGS CHILDREN 16809
 
0369 日本書紀(720)
백제왕 부자와 황전별·목라근자 등이 意流村(州流須祇)에서 함께 서로 만나 기뻐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오직 천웅장언과 백제왕은 백제국에 이르러 辟支山에 올라가 맹세하였다. 다시 古沙山에 올라가 함께 반석 위에 앉아서 맹세하였다.
25137#25158 SIBLINGS CHILDREN 25158
 
0641- 枳慕蜜地
觀世音應驗記 遷都○枳慕蜜地 지모밀지로 도읍을 옮겼다. ▐ 金馬面 인근에서 발견되는 궁궐 유적에 대응시킬 수 있다.
25137#24959 SIBLINGS CHILDREN 24959
 
0660↶ 百濟 完山州
金馬渚郡┆所力只縣┆閼也山縣┆干召渚縣
25137#24960 SIBLINGS CHILDREN 24960
 
0664 三國史記(1145)
인덕 원년에 이르러 다시 엄한 칙명을 내려 맹세를 맺지 않은 것을 꾸짖었으므로 곧 熊嶺에 사람을 보내 제단을 쌓고 함께 서로 맹세하고, 이내 맹세를 맺은 곳을 드디어 두 나라의 경계로 삼았습니다.
25137#25157 SIBLINGS CHILDREN 25157
 
0664 熊津都督府 魯山州
魯山州 六縣┆魯山縣(夲甘勿阿)┆唐山縣(夲仇知只山)┆淳遲縣(夲豆尸)┆支牟縣(夲只馬馬知)┆烏蠶縣(夲馬知沙)┆阿錯縣(夲源村) ▐ 只馬馬知는 관세음응험기에 나오는 枳慕蜜地와 발음이 비슷하다.
25137#25140 SIBLINGS CHILDREN 25140
 
0665 天地瑞祥志(666)
大唐麟德二年秋八月 勅使劉仁願 新羅王及百濟隆 盟于就利山 山百濟地也 由盟改亂山爲就利山 在只馬縣也 665년 8월에 칙사 유인원과 신라왕 그리고 백제의 융이 취리산에서 맹약을 했다. 그 산은 백제에 있는데 맹약을 맺은 곳이라고 해서 난산을 취리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지마현에 있다.
25137#25106 SIBLINGS CHILDREN 25106
 
0665 天地瑞祥志(666)
▐ 只馬縣은 웅진도독부 노산주의 支牟縣(夲只馬馬知)으로 보인다. 就利山은 다른 모든 사서에서 熊津에 있었다고 되어 있으므로 只馬縣에 있었다는 부분은 취하지 않는다. 당시의 정황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25137#25143 SIBLINGS CHILDREN 25143
 
0665 舊唐書(945)
8월에 隆이 熊津城에 이르러 신라왕 법민과 백마를 잡아 놓고 맹약하였다.
25137#26946 SIBLINGS CHILDREN 26946
 
0665 冊府元龜(1013)
高宗麟德二年八月 開府儀同三司新羅王金法敏 熊津都尉扶餘隆 盟於百濟之熊津城 初百濟自扶餘璋與高麗連和屢侵新羅之地 新羅遣使入朝求救相望於路及蘇定方既平百濟軍回餘眾 又叛鎮守使劉仁軌仁願等經略數年漸平之詔扶餘隆歸撫餘眾及令與新羅和好至是刑白馬而盟先祀神祗及川谷之神而後軟血其盟文
25137#8153 SIBLINGS CHILDREN 8153
 
0665 新唐書(1060)
(부여융이) 신라왕과 熊津城에서 만나 백마를 잡아 놓고 맹약하였다.
25137#26947 SIBLINGS CHILDREN 26947
 
0665 三國史記(1145)
가을 8월에 왕이 칙사 유인원, 熊津都督 부여융과 더불어 웅진 就利山에서 맹세하였다.
25137#26948 SIBLINGS CHILDREN 26948
 
0670 三國史記(1145)
고구려 水臨城 사람인 모잠 대형이 남은 백성들을 거두어 모아서 窮牟城으로부터 浿江 남쪽에 이르러 당나라 관인 및 승려 법안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서해의 史冶㠀에 이르러 고구려 대신 연정토의 아들 안승을 보고 漢城 안으로 맞이해 들이고는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소형 다식 등을 보내어 슬피 고하였다. 왕이 그들을 나라 서쪽 金馬渚에 정착하게 하였다.
25137#25145 SIBLINGS CHILDREN 25145
 
0670 三國史記(1145)
검모잠이 국가를 부흥하려고 하여 당을 배반하고 왕의 외손 안순(신라기에는 승이라 되어있다)을 세워 임금을 삼았다. 당 고종이 대장군 고간을 보내 동주도 행군총관으로 삼고 병력을 내어 그들을 토벌하게 하니 안순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
25137#25148 SIBLINGS CHILDREN 25148
 
0674 三國史記(1145)
안승을 報德王으로 봉하였다.
25137#25146 SIBLINGS CHILDREN 25146
 
0684 三國史記(1145)
안승의 조카뻘 되는 장군 대문이 金馬渚에서 반란을 꾀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처형당하였다. 남은 사람들이 대문이 목 베여 죽는 것을 보고 관리들을 죽이고 읍을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장사들에게 명하여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맞서 싸우던 당주 핍실이 전사하였다. 그 읍성을 함락하여 그곳 사람들을 나라 남쪽의 주·군으로 옮기고 그 땅을 金馬郡으로 삼았다.
25137#25147 SIBLINGS CHILDREN 25147
 
0684 三國史記(1145)
신문대왕 때에 고구려의 남은 적인 실복이 報德城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토벌할 것을 명하고 영윤을 황금서당의 보기감으로 삼았다.
25137#25149 SIBLINGS CHILDREN 25149
 
0684 三國史記(1145)
문명 원년 갑신에 고구려의 남은 적이 報徳城을 차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신문대왕이 장수에게 명하여 그들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을 귀당 제감으로 삼았다.
25137#25150 SIBLINGS CHILDREN 25150
 
Pet Dictionary
What breed is this pet?
 
0757 九州五小京 全州
金馬郡 夲百濟金馬渚郡 景徳王攺名 今因之 領縣三┆沃野縣 本百濟所力只縣 景徳王攺名 今因之┆野山縣 夲百濟閼也山縣 景徳王攺名 今朗山縣┆紆洲縣 夲百濟于召渚縣 景徳王攺名 今紆州 ▐ 金馬渚가 金馬郡으로 개칭된 것은 684년에 그곳에서 일어난 반란 직후다.
25137#25141 SIBLINGS CHILDREN 25141
 
0757 九州五小京 全州
▐ 백제 완산주의 金馬渚는 웅진도독부에서 후속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장소이므로 빠진 게 아니고 다른 지명으로 표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웅진도독부의 노산주에서 전후의 지명이 연결되지 않는 것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서 金馬渚의 후속 지명으로는 支牟縣(夲只馬馬知)가 유력하다. 백제가 말기에 도읍을 옮겼다는 枳慕蜜地와 발음이 비슷하고 金馬面에서는 근래에 궁궐의 유적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25137#25151 SIBLINGS CHILDREN 25151
 
0900 三國史記(1145)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혁거세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진한과 변한은 그를 뒤따라 일어난 것이다. 이에 백제는 金馬山에서 개국하여 6백여 년이 되었는데 총장 연간에 당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을 보내어 배에 군사 13만명으로 바다를 건넜고 신라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지나 사비에 이르러 당병과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完山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25137#25144 SIBLINGS CHILDREN 25144
 
0900 三國史記(1145)
▐ 金馬山은 백제 왕궁지 북쪽에 있다. 金馬渚郡이 金馬郡으로 개칭된 것이 684년이므로 金馬山 또한 그 이후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金馬渚는 只馬馬知로 보이고 天地瑞祥志(666)에 나오는 것처럼 只馬縣에 就利山이 있었다면 金馬山은 就利山의 개칭이 된다.
25137#26945 SIBLINGS CHILDREN 26945
 
枳慕蜜地·金馬渚郡·只馬馬知·支牟縣·只馬縣·金馬郡
枳慕蜜地·金馬渚郡·只馬馬知·支牟縣·只馬縣·金馬郡
25137#26943 SIBLINGS CHILDREN 26943
 
釋日本紀
중세 일본에서 만들어진 석일본기(釋日本紀)에는 일본서기에 수록된 신라인의 이름을 읽는 법이 나옵니다. 그런데 金이라는 성은 코무(コム)라고 발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라에서는 ‘김’이 아닌 ‘금’으로 발음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당시 발음이 ‘김’이었다면 키무(キム)가 되었겠지요.
25137#25153 SIBLINGS CHILDREN 25153
 
낭산산성
25137#16304 SIBLINGS CHILDREN 16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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