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완산주의 金馬渚郡은 신라 전주의 金馬郡이 되는데, 그 사이의 웅진도독부 시절에는 노산주의 支牟縣(夲只馬馬知)이었던 거 같다.
백제가 말기에 도읍을 옮겼다는 枳慕蜜地와 취리산이 있다는 只馬縣에 대응된다.
웅진과 사비가 강변에 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왕궁터가 발견된 이곳은 산 밑이다.
만경강에서 논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다보면 왼쪽 언덕 위에 只馬馬知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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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0 三國史記(1145)
고구려 水臨城 사람인 모잠 대형이 남은 백성들을 거두어 모아서 窮牟城으로부터 浿江 남쪽에 이르러 당나라 관인 및 승려 법안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서해의 史冶㠀에 이르러 고구려 대신 연정토의 아들 안승을 보고 漢城 안으로 맞이해 들이고는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소형 다식 등을 보내어 슬피 고하였다. 왕이 그들을 나라 서쪽 金馬渚에 정착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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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4 三國史記(1145)
안승의 조카뻘 되는 장군 대문이 金馬渚에서 반란을 꾀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처형당하였다. 남은 사람들이 대문이 목 베여 죽는 것을 보고 관리들을 죽이고 읍을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장사들에게 명하여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맞서 싸우던 당주 핍실이 전사하였다. 그 읍성을 함락하여 그곳 사람들을 나라 남쪽의 주·군으로 옮기고 그 땅을 金馬郡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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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全州
▐ 백제 완산주의 金馬渚는 웅진도독부에서 후속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장소이므로 빠진 게 아니고 다른 지명으로 표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웅진도독부의 노산주에서 전후의 지명이 연결되지 않는 것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서 金馬渚의 후속 지명으로는 支牟縣(夲只馬馬知)가 유력하다. 백제가 말기에 도읍을 옮겼다는 枳慕蜜地와 발음이 비슷하고 金馬面에서는 근래에 궁궐의 유적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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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三國史記(1145)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혁거세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진한과 변한은 그를 뒤따라 일어난 것이다. 이에 백제는 金馬山에서 개국하여 6백여 년이 되었는데 총장 연간에 당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을 보내어 배에 군사 13만명으로 바다를 건넜고 신라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지나 사비에 이르러 당병과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完山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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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日本紀
중세 일본에서 만들어진 석일본기(釋日本紀)에는 일본서기에 수록된 신라인의 이름을 읽는 법이 나옵니다. 그런데 金이라는 성은 코무(コム)라고 발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라에서는 ‘김’이 아닌 ‘금’으로 발음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당시 발음이 ‘김’이었다면 키무(キム)가 되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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