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23시에 광주역 앞에서 3공수의 발포로 5명이 숨졌다. 21일 13시에는 전남도청 앞에서 7공수와 11공수의 발포로 36명이 죽었다. 이 두 사건은 광주사태의 발포 시작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상부로부터 별도의 발포 명령이 내려온 증거는 없다.
발포명령설은 전두환관여설과 암매장설을 연결하여 광주□□음모론을 형성하는 핵심 고리 중 하나인데 이렇게 근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광주□□음모론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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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19:30 자위권 천명
"국민들에 대한 경고적 의미 이외에 5월 20~21일 사이에 광주에서 발생한 총기, 탄약, 장비 등의 피탈과 관련하여 당시 자위권이 제대로 발동되었다면 그와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계엄군들이 자위권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후환이 두려워서, 또는 자위권 자체를 몰라서 자위권을 발동하지 아니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정당한 자위권 발동을 촉구하는 의미로 했던 것입니다." - 이희성 1995.2.3. 피의자 신문조서
3273#9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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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6 허장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다녀간 뒤 그날 밤 자위력 구사라는 미명 하에 발포명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상관인 S 중령에게 직접 전해 듣고 실탄 무장 지시를 받았고 실제 실탄을 받았다. 자위권 구사가 최종 결정됐다는 말과 실탄 지급은 공식적인 발포명령을 의미하며, '우리가 먼저 한 것으로 해서는 안 돼'라는 말도 이어졌다. 모든 문제는 사령관이 책임진다는 말도 S 중령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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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이규연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는 보안사에서 505보안부대를 거쳐 공수부대에 직접 명령이 내려갔을 가능성이 있다. 발포는 계엄사의 자위권 발동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 그래서 전두환이 발포명령을 했다?
검찰조사에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한 정확한 말은 '계엄사 대책회의에서 결정된 자위권 발동조치에 따라 발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다. 앞 부분을 떼어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빨간 사과가 아니라는 말과 사과가 아니라는 말은 아주 다르다.
3273#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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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김용장
전두환이 광주를 다녀간 직후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있었다. 따라서 그때 전두환의 사살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 전날 밤에도 광주역 앞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4명이 죽었다.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있기 직전에 공수부대원이 장갑차에 깔려 죽는 사고가 있었다. 여기에 격분해 있던 공수부대에게 차량 공격까지 가해지자 발포를 하게 되었다는 이경남의 설명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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