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ian > 광주□□ > 쟁점 > 발포명령설

20일 23시에 광주역 앞에서 3공수의 발포로 5명이 숨졌다. 21일 13시에는 전남도청 앞에서 7공수와 11공수의 발포로 36명이 죽었다. 이 두 사건은 광주사태의 발포 시작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 상부로부터 별도의 발포 명령이 내려온 증거는 없다. 자위권은 발포 명령을 기다릴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별도의 명령 없이 발포를 할 수 있는 권한이다. 당연히 자위권 발동에는 별도의 발포 명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1980-05-20 23:00 광주역앞 발포
광주역 앞에서 3공수의 발포로 5명이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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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08:10 20사단 피습
서울에 주둔하던 20사단의 차량 14대가 2시에 출발하여 8시에 광주에 도착하였다. 시내에 진입하자 농성동에서 길이 막히고 쇠파이프, 낫, 칼 등을 지닌 300여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중상 2명, 경상 5명, 실종 1명(4일 후 복귀)의 피해를 입고 짚차 14대, M60 2정, M16 4정, 45구경 권총 1정, M60 탄약 200발, M16 탄창 91개, M60 차량장치대 2개 등을 탈취당했다. ● 집단발포가 있기 전에 집단 무기탈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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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12:00 ᑅ 자위권 천명 건의
진종채 2군사령관은 21일 오전 김준봉 작전참모를 대동하고 광주의 전투교육사령부를 찾아갔다. 전남북계엄분소장인 윤흥정 전교사령관은 "시민과 학생이 탈취한 무기로 무장을 하고 계엄군에게 총을 난사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발표하면 진정이 될 것"이라면서 계엄사령관에게 자위권 발동을 건의해줄 것을 진종채 2군사령관에게 요구했다고 진종채 사령관이 1심 21차 공판에서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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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13:00 전남도청앞 집단발포
갑작스런 화염병 공격을 받은 계엄군 장갑차가 후진하면서 계엄군 1명이 참혹하게 깔려죽자 분개한 계엄군이 돌진해 오는 버스를 향해 집단발포를 하여 36명이 사망하였다. 전남도청을 지키던 계엄군은 7공수와 11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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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16:00 자위권 천명 건의
“21일 2군사에서는 사령관 진종채 장군과 작전참모 김준봉 장군이 헬기 편으로 육본으로 올라와 참모총장을 뵙고 이러한 현지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자위권 발동을 건의하였다”고 돼 있다. 이어 “건의를 들은 참모총장 이희성 장군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하면서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자’고 하여 세 장군은 국방부장관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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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19:30 자위권 천명
"국민들에 대한 경고적 의미 이외에 5월 20~21일 사이에 광주에서 발생한 총기, 탄약, 장비 등의 피탈과 관련하여 당시 자위권이 제대로 발동되었다면 그와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계엄군들이 자위권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후환이 두려워서, 또는 자위권 자체를 몰라서 자위권을 발동하지 아니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정당한 자위권 발동을 촉구하는 의미로 했던 것입니다." - 이희성 1995.2.3. 피의자 신문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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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5공화국 전사
“자위권 발동의 지시가 있었으나 인내와 극기로 버티어 왔던 계엄군들은 드디어 자위권을 발동하였다. 이날(20일) 밤 11시경 광주소요의 발발 이래 최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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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검찰의 수사발표
"상급 지휘관이나 별도의 지휘계통에 있는 특정인의 발포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거나 광주 시민들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하여 사전 계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행하여진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으며 ... 특수부대 장교들이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의 통제 없이 장갑차 등의 돌진에 대응하여 자위 목적에서 발포한 것으로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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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6 이희성 인터뷰
○ 기자: 자위권을 천명한 담화 발표 뒤 계엄군에게 실탄이 지급됐습니까? ● 이희성: 실탄 지급은 일선 부대 지휘관 차원에서 이뤄지는 거지, 계엄사령관이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오. ○ 기자: 누가 발포 명령을 한 겁니까? ● 이희성: 1996년 재판 당시 광주 현지까지 내려가 조사를 벌였으나 발포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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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전두환 회고록
"5월 19일 오후 3시 30분경 시위대에 의해 MBC를 경비하던 31사단 병력이 M16소총 1정과 실탄 15발을 탈취당했다. 바로 다음날인 20일 밤 11시에는 2,000여 명의 시위대가 광주세무서 별관 무기고를 습격해 카빈 17정을 탈취했다. 광주에서 무기가 대량으로 탈취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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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당시 전투기 조종사
"군인은 출동 명령이 내려지면 그 안에 발포명령까지 포함된 것이다.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이 총 쏠까요, 말까요, 누구한테 물어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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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505보안대 문서
"5.18당시 광주에 주둔하던 보안사령부 505보안대가 작성한 광주소요사태 군문서입니다. (20일) 오후 11시 15분 전교사 및 전남대 주둔 병력에게 1인당 20발씩 실탄 장전 및 유사시 발포 명령 하달이라는 지침이 내려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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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3 손석희
손석희는 발포와 관련해서 '자위권 발동조치에 따라 발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는 계엄사령관의 말을 인용했는데, 정확한 발언은 '계엄사 대책회의에서 결정된 자위권 발동조치에 따라 발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였다. ● '빨간 사과가 아니다'에서 '빨간'을 빼고 '사과가 아니다'로 변질시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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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손석희
1981년 6월에 작성된 7공수 계엄군의 수기에 5월 21일 13시 30분에 '자위권 발동'이라는 부분이 나오고 자위권 보유 천명 후 '횡대 무릎쏴 자세로 적을 공격'하였다는 부분이 나온다. 따라서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계획된 발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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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손석희
● 자위권 천명은 이날 19시에 있었고 발포는 이미 전날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20일 23시에 광주역 앞에서 3공수의 발포로 4명이 숨졌다. ● 계엄군 1명이 장갑차에 깔려 참혹하게 죽고 차량의 돌진이 이어지는 상황은 발포에 별도의 명령을 필요로 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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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6 허장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다녀간 뒤 그날 밤 자위력 구사라는 미명 하에 발포명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상관인 S 중령에게 직접 전해 듣고 실탄 무장 지시를 받았고 실제 실탄을 받았다. 자위권 구사가 최종 결정됐다는 말과 실탄 지급은 공식적인 발포명령을 의미하며, '우리가 먼저 한 것으로 해서는 안 돼'라는 말도 이어졌다. 모든 문제는 사령관이 책임진다는 말도 S 중령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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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이규연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는 보안사에서 505보안부대를 거쳐 공수부대에 직접 명령이 내려갔을 가능성이 있다. 발포는 계엄사의 자위권 발동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 그래서 전두환이 발포명령을 했다? 검찰조사에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한 정확한 말은 '계엄사 대책회의에서 결정된 자위권 발동조치에 따라 발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다. 앞 부분을 떼어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빨간 사과가 아니라는 말과 사과가 아니라는 말은 아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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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이규연
● 허장환은 1988년부터 전두환 개입설을 주장해온 사람이다.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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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김용장
전두환이 광주를 다녀간 직후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있었다. 따라서 그때 전두환의 사살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 전날 밤에도 광주역 앞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4명이 죽었다.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있기 직전에 공수부대원이 장갑차에 깔려 죽는 사고가 있었다. 여기에 격분해 있던 공수부대에게 차량 공격까지 가해지자 발포를 하게 되었다는 이경남의 설명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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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미국방정부국 문서
... troops were authorized to shoot if absolutely necessary or their lives were in danger ...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나 자신들의 생명이 위험할 때 군대는 발포를 허가받았다. ● 이것은 발포 명령이 별도로 내려오지 않아도 발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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