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에 바친 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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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고려사절요
살례탑이 그의 사자와 고려의 장군 조숙창(趙叔昌)을 보내어 이첩(移牒)하여 말하기를, “황제께서 신(臣 살례탑)에게 명하여, 고려에서 사신(使臣) 저고여(著古與)를 죽인 사고 등 몇 가지 일을 묻게 하였다." 하고 곧 말 2만 필과 처녀ㆍ총각 수천 명, 자라(紫羅) 1만 필, 수달피 1만 영(領)과 군사의 의복을 토색하므로 백관에게 명령하여 옷을 차등있게 추렴하도록 하였다.
2624#3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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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3.03 고려사(1451)
초욱이 남편 없는 부녀자 140명을 뽑으라고 급하게 독촉하므로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이때부터 가을까지 민간에서 홀어미, 역적의 처, 승려의 딸을 샅샅이 찾아내어 겨우 그 수를 채우자 원성이 크게 일어났다. 여자 1명당 치장하는 비용으로 비단 12필을 지급한 후 만자들에게 나누어주자 만자들이 즉시 데리고 북쪽 원으로 돌아갔다. 통곡소리가 하늘에 진동하였고 보는 사람도 슬퍼서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2624#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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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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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06 고려사절요
다음날 또 대궐에 나아가 부두연(扶頭宴)을 베풀었는데, 황제가 고려의 노래를 부르라 하니 왕이 대장군 송방영과 송영 등에게 쌍연곡(雙鷰曲)을 부르게 하였다. 전왕은 단판(檀板 박자를 맞추는 악기 이름)을 잡고 왕은 일어나 춤추며 헌수하니, 황제와 황후가 기뻐하였다.
※이때 왕씨고려의 왕은 충렬왕이었고 전왕은 충선왕이었다. 충선왕은 충렬왕과 쿠빌라이의 딸 사이에 태어나 1298년에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이듬해에 반환하고 원나라로 갔었다.
2624#3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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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5 고려사절요
전의부령 이곡이 원나라에 있었는데 소(疏)를 작성하여 말하기를,
대개 지금 그 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자들은 모두 부인이나 첩을 얻고자 하니,
군대의 관리가 사방에서 나와 집집마다 수색하고 그 이웃 마을까지 엮고 그 친족을 묶어서 매질을 하고 고통스럽게 하여 찾은 후에야 그만 둡니다.
한 해에 한 두 번 있으며 그 수는 많은 경우 40~50명에 이릅니다. 선발인원에 포함되면 부모와 일가친척이 서로 모여 소리를 내어 우니 밤낮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2624#36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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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8.07 고려사절요
원 나라에서 실리미(失里迷)를 보내어 황후 책립의 조서를 반포하고, 환자(宦者)ㆍ처녀ㆍ말을 요구하였다. 실리미는 금교역(金郊驛)에 이르러 왕이 백주 등암사에 있다는 말을 듣고, 성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재상이 상호군 전사의(全思義)를 보내어 양고기와 술을 접대하였으나 그것을 받지 않고 말하기를, “왕이 맞이하지 않으면 나는 성에 들어가지 않겠다." 하였다.
2624#36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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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3 원사
皇太子를 册立하고 天下에 大赦令을 내리면서 太府監山童 등을 보내어 頒詔하였다. 太子는 奇皇后의 소생인데, 奇氏는 高麗人으로 본래는 미천하였다. 이 때에 와서 順帝가 皇后의 아버지는 榮安王에 봉하고, 어머니 李氏는 榮安王夫人에 봉하였다. 또 皇后의 兄子 기철(奇轍)을 大司徒로 삼으니 富貴가 한 시대를 뒤흔들었다. 轍이 한층 더 교만하고 횡포를 부리어 祺(공민왕)가 견딜 수 없었다.
2624#39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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