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012 貊·樂浪高麗史 > 0427~0668 樂浪高麗

樂浪高麗는 도읍을 평양으로 옮긴 427년부터 패망한 668년까지를 말한다. 제사, 장례, 결혼 등의 풍습이 이전의 貊高麗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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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0343~0427 高麗의 南下
313년과 314년에 각각 樂浪과 帶方을 병합한 고려는 342년에 모용 선비의 침공을 받아 도읍인 丸都城이 파괴되자 이듬 해에 平壤 동쪽의 黄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즈음 백제도 예성강 유역까지 차지한 듯하다. 369년부터 고려는 백제의 예성강 유역을 침공하기 시작했는데, 371년에는 패해서 다시 도읍을 國內城으로 옮기기도 했지만, 399년 즈음에는 백제의 탈환 의지를 꺾고 임진강 유역까지 완전히 차지하였고, 427년에는 도읍도 平壤으로 다시 옮겼다.
2459#23940 SIBLINGS CHILDREN 23940
 
결혼
삼국지(289)에는 신랑이 폐백을 바치고 신부의 집에서 동거하다 아들을 낳으면 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수서(636) 이후의 사서에는 연애를 자유로이 해서 남녀가 사랑하면 바로 결혼시키는데, 이때 신랑이 폐백을 바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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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漢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중원의 무덤벽화는 漢의 쇠퇴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으나 북중국과 요동에서는 오히려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고려의 벽화무덤은 현재까지 100여기가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대동강 유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압록강 중류에서도 일부 발견된다. 축조 시기가 가장 이른 것은 燕 출신 동수의 묘로 357년에 만들어졌고 옛 대방 지역에 위치해 있다.
2459#1477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법률
0289 三國志0445 후한서0636 수서0636 양서0636 주서0659 남사0659 북사0945 구당서1060 신당서
 
옷, 신, 쓰개, 머리털 등
무덤 벽화는 낙랑을 병합한 이후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덤 벽화에 나오는 복식은 모두 낙랑고려인의 복식이다. 그 이전 맥고려인의 복식은 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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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삼국지(289)에는 결혼 직후부터 수의를 준비하고 장례에 재물을 많이 쓰며 돌을 쌓아서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주변에 심는다고 되어 있다. 주서(636)에는 부모와 남편 상의 복제가 중국과 같다고 되어 있다.
2459#2514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제사
삼국지(289)에는 靈星과 社稷에 제사지낸다고 되어 있는데, 구당서(945)에 와서는 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에 제사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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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浪高麗
낙랑 천도를 전후해서 고려는 풍습, 문화 그리고 국호까지 바뀌었다. 그래서 낙랑 천도 이후의 고려에 낙랑고려(樂浪高麗)란 이름을 붙여본다. 고려가 망할 때 고려인 2만 8천호 또는 20만명이 당나라에 끌려갔는데, 이때 끌려간 사람들은 주로 낙랑고려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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