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 沙喙(524 봉평신라비) 沙㖨(720 일본서기) 沙涿(최치원) 沙梁(1145 삼국사기) ❷ 㖨己呑·喙己呑·㖨國·喙地(720 일본서기) 達伐·達句伐(1145 삼국사기) ❸ 喙評(501 중성리 신라비) 啄評(636 양서) 喙評(801 통전)
➔ 喙(달) 啄(たく) 㖨(とく) 涿(도) 梁(도) 達(달)
➔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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閼川 楊山村
蘿井은 楊山의 산기슭에 있었으므로 楊山은 남산이다. 閼川에 관한 기록은 형산강에 어울리므로 閼川 楊山村은 형산강을 건너는 나루 인근의 남산 기슭일 것이다.
이곳은 외부의 문물이 서라벌로 들어오는 관문이므로 신라의 시조가 이곳에서 났다는 이야기와도 어울린다.
한편, 蘿井은 楊山의 기슭에 있었지만 이 楊山은 月城에서 보았을 때 남쪽에 있기 때문에 훗날 南山이라 불린 듯하다.
2933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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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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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까역사 新羅
(朝鮮→)燕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是爲辰韓六部
연나라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29330#3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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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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突山 高墟村
삼국사기에는 서라벌 주변의 明活山, 吐含山, 北兄山, 西兄山 등이 제사를 지낸 곳으로 나와 있다. 남산만 빠졌을 리는 없을 테니, 제사 기록에 있는 髙墟(沙梁)를 남산에 제사지낸 곳으로 추정한다. 고려사에도 沙梁을 南山部로 바꾸었다고 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남산은 남북으로 결이 나 있어 금오봉에 오르는 길 또한 이 결을 따라 났을 것이므로 그 입구인 포석정 일대를 突山 高墟村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蘿井과 가까워 혁거세 설화와도 어울린다.
2933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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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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茂山 大樹村
삼국유사(1281)에는 仙桃聖母가 西述聖母라고도 되어 있어 仙桃山은 삼국사기(1145)의 제사 기록에서 西述로도 표기된 牟梁에 있었던 듯하다. 牟梁은 원래 茂山 大樹村이었다고 하므로 茂山은 仙桃山이 된다.
이곳은 蘿井에서 멀지 않아 仙桃聖母가 혁거세왕을 낳고 仙桃山에 들어가 살았다는 삼국유사의 이야기와도 어울린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西兄山도 이 仙桃山으로 비정된다.
29330#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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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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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6~0369
達과 喙은 발음이 같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연관성을 상상해 볼 수 있다.
達伐은 236~261년에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보이며 서라벌의 喙, 沙喙 그리고 牟喙은 달구벌에서 서라벌로 넘어올 때 처음 닿는 곳으로 원래 지명은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그리고 무산 대수촌이었다.
따라서 닭을 숭배하는 달구벌 사람들이 서라벌로 많이 이주하였고 그들이 서라벌을 장악하면서 지명도 바꾸고 김씨 왕도 배출하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29330#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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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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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01 ❰❰¹ 0262 三國誤記
味鄒이사금(味照라고도 하였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선조 알지가 계림에서 태어나 탈해왕이 거두어 궁중에서 길러 나중에 대보로 삼았다. 閼智는 세한을 낳았고, 勢漢은 아도를 낳았고, 阿道는 수류를 낳았고, 首留는 욱보를 낳았고, 郁甫는 구도를 낳았는데, 仇道가 곧 味鄒의 아버지이다. 첨해가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갖게 된 시초이다.
▐ 미추왕이 즉위하면서 알지 설화가 만들어지고 6부의 이름이 개칭된 듯하다.
29330#22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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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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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4 㖨國·喙地-達伐·達句伐
倭는 新羅에 침입한 高麗와 전투를 치렀는데, 그곳은 이듬해에 倭가 다시 新羅와 전투를 치른 㖨일 가능성이 높다. 倭가 高麗를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자 新羅가 되찾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加羅를 고령으로 비정하는 것은 비교적 근거가 충분한데, 㖨己呑은 加羅와 新羅의 경계에 있었다고 하므로 달구벌에 어울린다. 이곳은 倭가 新羅를 치러 왔다가 나루에서 방향을 바꾸어 加羅를 쳤다는 이야기의 무대로도 어울린다.
29330#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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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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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1± 단양신라비
喙部 伊史夫智 伊干▨ 달부의 이사부지 이간□┆喙部 西夫叱智 大阿干▨ 달부의 서부질지 대아간□┆喙部 比次夫智 阿干支 달부 비차부지 아간지┆沙喙部 武力智 阿干支 사달부 무력지 아간지┆鄒文村 幢主 沙喙部 噵設智及 干支 추문촌 당주 사달부 도설지 급간지┆勿思伐▨▨▨喙部 助黑夫智 及干支 물사벌□□□달부 조흑부지 급간지┆書人 喙部 ▨▨▨▨▨▨▨▨▨人 서인 달부 □□□□□□□□□인
29330#26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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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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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梁書
其俗呼城曰健牟羅 其邑在內曰啄評 在外曰邑勒 亦中國之言郡縣也 國有六啄評 五十二邑勒┆왕성을 건모라라 부르며 그 읍이 안에 있는 것은 탁평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은 읍륵이라 하니, 이것은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나라 안에는 6군데의 탁평과 52군데의 읍륵이 있다.
❸ 喙評(501 중성리 신라비) = 啄評(636 양서)
29330#26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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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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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1 通典
城曰健牟羅 其邑在內曰喙評(喙呼穢反) 在外曰邑勒 亦中國之言郡縣也 國有六喙評 五十二邑勒 성을 건모라라 부르며 그 읍이 안에 있는 것은 달평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은 읍륵이라 한다. 달평은 6군데, 읍륵은 52군데 있다.
❸ 喙評(501 중성리 신라비) = 啄評(636 양서) = 喙評(801 통전)
29330#26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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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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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 일본서기(720)는 6세기 신라의 금석문에 나오는 沙喙部를 沙㖨部로 표기하고 喙己呑을 㖨己呑으로도 쓰는 것으로 보아, 喙과 㖨을 구별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일본서기에 별개로 나오는 㖨國과 喙地가 같은 곳일 가능성을 열어준다. 실제로 두 지역을 같은 곳으로 간주해도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다.
또 㖨國과 喙地는 삼국사기의 達伐과도 잘 어울린다. 만약 喙地가 達伐이라면 喙는 '달'로 발음되었을 듯하다. 喙는 '부리 달'이란 뜻도 있기 때문이다.
29330#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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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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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三國遺事
최치원이 말하기를 “진한은 본래 연나라 사람으로서 도피해 온 자들이므로 涿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고을과 동리 이름을 沙涿·漸涿 등으로 불렀다.” 신라 사람들의 방언에 涿 자를 읽을 때 발음을 道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도 혹 沙梁이라 쓰고 梁을 또한 道라고도 읽는다.
❶ 沙喙(524 봉평신라비) = 沙㖨(720 일본서기) = 沙涿(최치원) = 沙梁(1145 삼국사기)
29330#26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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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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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의 어원
달은 닭의 경상도 사투리 발음이다. 달구는 다른 말과 연음될 때 발음의 편의상 묵음 ㄱ이 되살아나는 현상이다. 닭똥을 달구똥이라 발음하는 것은 그 사례다.┆일본서기에 나오는 卓國의 卓도 닭을 가리킨다고 한다.┆신라의 왕궁 터를 月城이라 부르고 그 내부의 연못도 月池라 부른 것도 모두 같은 연유로 본다. 月은 달(닭)을 훈독한데서 나온 표기이다.
29330#2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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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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