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6.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나? > (3) 민족통일인가?
 
 0004-09 삼국사기(1145)
온조왕이 1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부현 동쪽 지방에서 사냥하다가, 말갈의 도적을 만나 단번에 물리쳤다. 이때 잡은 포로들을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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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67-07 삼국사기(1145)
군사를 몰래 보내 신라의 서쪽 변경에 있는 두 성을 격파하고 남녀 1천 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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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67-08 삼국사기(1145)
신라왕이 일길찬 흥선으로 하여금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동쪽의 여러 성을 침공하게 하였다. 신라왕은 또한 직접 정예 기병 8천 명을 거느리고 뒤를 이어 한수까지 진격해왔다. 초고왕은 신라군이 많아서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곧 이전에 빼앗았던 성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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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69-09 삼국사기(1145)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군사를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급히 쳐서 깨뜨리고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는데, 그 사로잡은 적들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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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2 북사(659)
문선제는 영주에 이르러, 박릉 최유를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어 위(魏 북위)나라 말에 흘러 들어간 백성들의 송환을 요구케 하면서, 최유에게 조칙하기를, “만약 순종하지 않으면 상황에 맞게 대응하라.”고 하였다. 고려에 이르러 허락을 받지 못하자, 최유는 눈을 부릅뜨고, 나무라면서 주먹으로 성(成 양원왕)을 쳐 용상 밑으로 떨어뜨렸다. 성(成)의 좌우는 숨을 죽이고 감히 꼼짝도 못한 채 사죄하고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최유는 5천호를 돌려받아 복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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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2-09 삼국사기(1145)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왕이 이사부에 명하여 토벌케 하였는데, 사다함이 부장이 되었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거기에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전공을 논함에 사다함이 으뜸이었으므로, 왕이 좋은 토지와 포로 200명을 상으로 주었으나 사다함이 세 번이나 사양하였다. 왕이 굳이 주므로 이에 받아 포로는 풀어 양인이 되게 하고 토지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니,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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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7-03 삼국사기(1145)
무왕이 한솔 연문진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 또한 좌평 왕효린을 보내 공물을 바치면서 고구려를 치자고 요청하였다. 양제가 이를 허락하고 고구려의 동정을 살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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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8 삼국사기(1145)
진평왕이 고구려가 자주 강역을 침략하는 것을 걱정하여 수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원광에게 명하여 걸사표를 짓게 하니, 원광이 말하였다. “자기 살기를 구하여 남을 멸하는 것은 승려로서의 행동이 아니나, 저는 대왕의 땅에서 살고 대왕의 물과 풀을 먹고 있으니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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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95 신라촌락문서
장적은 개별 세대 연이 보유한 토지를 가리켜 연수유(烟受有), 곧 '연이 받아 가진 것'이라고 했다. 농민의 경지는 국가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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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10-29 김정일
7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우리 나라 력사를 학습하면서 학생들 속에서 삼국통일에 대한 문제가 많이 토론되였다. 삼국통일문제는 우리 나라가 어느때부터 통일국가를 이루고 발전되여왔으며 우리 나라 력사의 흐름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지난 시기 써놓은 조선력사자료들에서는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하여 삼국의 통일을 이룩하였다고 하고있다. 지금 력사학계에서는 지난 시기에 신라에 의하여 삼국이 통일되였다고 한 자료를 인정하는데로부터 우리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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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10-29 김정일 교정
이 글은 전체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역사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해석하는 관점과 역사를 '민족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짜집기해서 괴상한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다. 인류사회의 구조를 민족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보는 민족주의는 신분제가 철폐된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하던 그 이전에는 인류사회가 계급대립의 구조였다. 그렇다면 신라의 한국통일에 대한 해석도 계급대립의 관점에서 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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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고등학교 교과서
신라의 삼국 통일은 외세의 이용과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를 경계로 한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의 세력을 무력으로 몰아 낸 사실에서 자주적 성격을 인정할 수 있다. 또, 고구려⋅백제 문화의 전통을 수용하고 경제력을 확충함으로써 민족 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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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인가 - 박노자
훨씬 후대에 형성된 ‘우리 민족’을 고대에 투영해 고구려를 높이고 신라를 낮추고 만주의 상실을 애통하게 여기는 ‘역사 정치’는 학술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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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환의 오류 (unification & reunification)
통일이란 원래 하나였던 것이 나뉘어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것이다. 삼국통일전쟁론이나 백제통합전쟁론을 거부하는 중요한 이유는 당대에 세 나라가 동족의식을 지녔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러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라는 표현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통일이란 그냥 하나로 합치는 것이고 나뉘어졌다 다시 합치는 것은 재통일이다. 삼국통일전쟁론이나 백제통합전쟁론에는 동족의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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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통일인가?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에서 한민족은 신라가 대동강 이남을 단일정치공동체에 담으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하나의 민족이었던 적이 없다. 따라서 660년에 시작되어 676년에 마무리된 지배구조의 변화는 민족을 통일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을 혼동하고 이것을 불완전한 민족통일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쉽게 비유하자면, 한 남자가 낯선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비로소 부부가 된 것을 두고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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