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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2 북사(659)
문선제는 영주에 이르러, 박릉 최유를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어 위(魏 북위)나라 말에 흘러 들어간 백성들의 송환을 요구케 하면서, 최유에게 조칙하기를, “만약 순종하지 않으면 상황에 맞게 대응하라.”고 하였다. 고려에 이르러 허락을 받지 못하자, 최유는 눈을 부릅뜨고, 나무라면서 주먹으로 성(成 양원왕)을 쳐 용상 밑으로 떨어뜨렸다. 성(成)의 좌우는 숨을 죽이고 감히 꼼짝도 못한 채 사죄하고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최유는 5천호를 돌려받아 복명하였다.
1948#2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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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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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09 三國史記(1145)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왕이 이사부에 명하여 토벌케 하였는데, 사다함이 부장이 되었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거기에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전공을 논함에 사다함이 으뜸이었으므로, 왕이 좋은 토지와 포로 200명을 상으로 주었으나 사다함이 세 번이나 사양하였다. 왕이 굳이 주므로 이에 받아 포로는 풀어 양인이 되게 하고 토지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니,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1948#2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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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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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0.29 김정일
신라는 당나라침략자들과 결탁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는 하였으나 우리 나라에 하나의 통일적인 주권국가를 세우지는 못하였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다음 신라는 대동강 이남 지역밖에 차지하지 못하였으며 대동강 이북의 옛 고구려땅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국이 창건되여 200여 년 동안 존재하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령토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주권국가인 발해와 신라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신라에 의하여 삼국이 통일되였다고 말할 수 없다 ...
1948#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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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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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0.29 김정일 교정
이 글은 전체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역사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해석하는 관점과 역사를 '민족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짜집기해서 괴상한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다.
인류사회의 구조를 민족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보는 민족주의는 신분제가 철폐된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하던 그 이전에는 인류사회가 계급대립의 구조였다. 그렇다면 신라의 한국통일에 대한 해석도 계급대립의 관점에서 보아 ...
1948#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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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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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인가?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에서 한민족은 신라가 대동강 이남을 단일정치공동체에 담으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하나의 민족이었던 적이 없다. 따라서 660년에 시작되어 676년에 마무리된 지배구조의 변화는 민족을 통일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을 혼동하고 이것을 불완전한 민족통일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쉽게 비유하자면, 한 남자가 낯선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비로소 부부가 된 것을 두고 그 ...
1948#3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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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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