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웅천주의 泗沘는 웅진도독부에서 사라졌다가 9주5소경에서 부여로 나타나고 웅진도독부에는 이전의 백제 웅천주에 없고 이후의 9주5소경에도 없는 邁羅가 나타난다. 또 泗沘의 귀족 沙씨를 백제왕이 邁羅의 왕으로 삼는 것으로 보아 泗沘와 邁羅는 같은 곳인 듯하다.
다음 지명들이 모두 같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①萬盧(만로)
②邁盧(매로)
③邁羅(매라)
④沙宅(사택)
⑤砂宅(사택)
⑥沙吒(사타)
⑦娑陀(사타)
⑧泗沘(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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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爰襄國
牟水國
桑外國
小石索國
大石索國
優休牟涿國
臣濆沽國
伯濟國
速盧不斯國
日華國
古誕者國
古離國
怒藍國
月支國
咨離牟盧國
素謂乾國
古爰國
莫盧國
卑離國
占離卑國
臣釁國
支侵國
狗盧國
卑彌國
監奚卑離國
古蒲國
致利鞠國
冉路國
兒林國
駟盧國
內卑離國
感奚國
❶萬盧國
辟卑離國
臼斯烏旦國
一離國
不彌國
支半國
狗素國
捷盧國
牟盧卑離國
臣蘇塗國
莫盧國
占臘國
臨素半國
臣雲新國
如來卑離國
楚山塗卑離國
一難國
狗奚國
不雲國
不斯濆邪國
爰池國
乾馬國
楚離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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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0 南齊書(537)
녕삭장군 面中王 저근은 정치를 두루 잘 보좌하였고 무공 또한 뛰어났으니 이제 가행관장군 도장군 都漢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 八中侯 여고는 젊을 때부터 임금을 도와 충성과 공로가 진작 드러났으므로 이제 가행녕삭장군 阿錯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 여력은 천성이 충성되고 정성스러워 문무가 함께 두드러졌으므로 이제 가행용양장군 ❷邁盧王이라 하였으며, 광무장군 여고는 정치에 공로가 있고 국정을 빛내고 드날렸으므로 이제 가행건위장군 弗斯侯라 하였습니다.
10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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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5 南齊書(537)
사법명을 가행정로장군 ❸邁羅王으로, 찬수류를 가행안국장군 辟中王으로, 해례곤을 가행무위장군 弗中侯로 삼고, 목간나는 과거에 군공이 있는 데다 또 성문과 선박을 때려 부수었으므로 행광위장군 面中侯로 삼았습니다.
25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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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5 南齊書(537)
▐ 삼국지(289)의 斯盧가 후대에 斯羅로 불리기도 한 사례를 볼 때, 동성왕 표문에 나오는 邁盧와 邁羅도 동일한 지명의 다른 표기일 듯하다. 이 지명은 삼국지(289)의 萬盧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
1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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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0.09 日本書紀(720)
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어느 정도의 군사가 있으면 신라를 칠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다. 물부대련미여 등이, “적은 군사로는 쉽게 칠 수 없습니다. 지난 번 백제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임나의 上哆唎·下哆唎·❼娑陀·牟婁의 네 현을 청하였는데, 대반대련금촌이 표에서 청하는 대로 구하는 곳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의 원망이 여러 해 동안 쌓여 갔으니 가볍게 칠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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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4 砂宅智積碑
갑인년 정월 내기성의 ❺砂宅智積은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은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 금을 캐어 진귀한 집을 짓고 옥을 파내어 보배로운 탑을 세우니, 그 높디놓은 한 자애로운 모습은 신령스런 빛을 토하여 구름을 보내는 듯하고, 그 우뚝 속은 자비로운 모습은 성스로운 밝음을 머금어...
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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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4 砂宅智積碑
▐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백제에는 沙씨가 등장하는데, 이 沙씨는 砂宅, 沙宅 또는 沙吒로도 나타난다. 砂宅智積碑는 泗沘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는 沙씨가 백제 왕조에 편입된 泗沘 지방의 토착 세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泗沘는 일본서기(720)에서 임나4현의 하나로 나오는 娑陀의 다른 표기일 가능성도 생긴다.
泗沘는 久麻那利에서 가깝고 久麻那利는 임나 4현의 하나인 下哆唎의 별읍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25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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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 唐平濟碑
그 왕 부여의자 및 태자 융(隆) 이외 왕자 효(孝) 13인은 대수령 대좌평 ❻沙吒千福, 국변성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말가죽을 버리게 하고 우거에 실어다가 잠시 있다가 사훈에 올리고 이에 청묘에 드렸다.
▐ 泗沘에 있다.
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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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4 熊津都督府
都督府 一十三縣┆嵎夷縣┆神丘縣┆尹城縣(夲悅已)┆麟德縣(夲古良夫里)┆散昆縣(夲新村)┆安遠縣(夲仇尸波知)┆賔汶縣(夲比勿)┆歸化縣(夲麻斯良)┆❸邁羅縣┆甘蓋縣(夲古莫夫里)┆奈西縣(夲奈西兮)┆得安縣(夲德近支)┆龍山縣(夲古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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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1.01 日本書紀(720)
이 달 대금하를 좌평 여자신· ❹沙宅紹明 법관에게, 소금하를 귀실집사 학직두에게, 대산하를 달솔 곡나진수·목소귀자·억례복류·답발춘초·발일비자찬파라금라금수·귀실집신에게, 소산상을 달솔 덕정상·길대상·허솔모·각복모에게, 소산하를 다른 달솔 등 50여 인에게 제수했다.
40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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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1.11 日本書紀(720)
대마국사가 사신을 축자의 대행부에 보내 “이 달 2일에 사문 도구·축자군살야마·한도승사바·포사수반 4인이 당으로부터 와서 ‘당의 사신 곽무종 등 600인, 송사 ❹沙宅孫登 등 1400인, 모두 합해 2000인이 배 47척에 타고 함께 비지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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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熊州
扶餘郡 夲百濟●所夫里郡 唐將蘇定方與庾信乎之 文武王十二年置揔管 景徳王改名 今因之 領縣二┆石山縣 夲百濟珍惡山縣 景徳王攺名 今石城縣┆恱城縣 本百濟恱巳縣 景徳王改名 今定山縣
▐ 백제 所夫里郡 → 웅진도독부 □□ → 신라 扶餘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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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熊州
▐ 백제 웅천주의 所夫里郡(一云泗沘)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는데도 백제를 멸망시키고 설치한 웅진도독부에 나타나지 않다가 9주5소경에 와서야 扶餘郡으로 나타난다.
한편, 웅진도독부에는 이전의 백제 웅천주에 없었고 이후의 9주5소경에도 나타나지 않는 邁羅縣이 나타나는데 동성왕 표문(495)에는 沙法名을 邁羅王으로 삼았다고 되어있다.
沙씨는 백제 왕조에 편입된 泗沘 지방의 토착 세력으로 보이므로, 그런 沙씨를 왕으로 삼은 邁羅는 泗沘와 동일한 곳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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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부여
@萬盧 @만로 @邁盧 @매로 @邁羅 @매라 @沙宅 @사택 @砂宅 @沙吒 @사타 @娑陀 @泗沘 @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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