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地理志 > 0512 四縣 > 娑陀

백제 웅천주의 泗沘는 웅진도독부에서 사라졌다가 9주5소경에서 부여로 나타나고 웅진도독부에는 이전의 백제 웅천주에 없고 이후의 9주5소경에도 없는 邁羅가 나타난다. 또 泗沘의 귀족 沙씨를 백제왕이 邁羅의 왕으로 삼는 것으로 보아 泗沘와 邁羅는 같은 곳인 듯하다. 다음 지명들이 모두 같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①萬盧(만로) ②邁盧(매로) ③邁羅(매라) ④沙宅(사택) ⑤砂宅(사택) ⑥沙吒(사타) ⑦娑陀(사타) ⑧泗沘(사비)
 
0289 三國志
爰襄國 牟水國 桑外國 小石索國 大石索國 優休牟涿國 臣濆沽國 伯濟國 速盧不斯國 日華國 古誕者國 古離國 怒藍國 月支國 咨離牟盧國 素謂乾國 古爰國 莫盧國 卑離國 占離卑國 臣釁國 支侵國 狗盧國 卑彌國 監奚卑離國 古蒲國 致利鞠國 冉路國 兒林國 駟盧國 內卑離國 感奚國 ❶萬盧國 辟卑離國 臼斯烏旦國 一離國 不彌國 支半國 狗素國 捷盧國 牟盧卑離國 臣蘇塗國 莫盧國 占臘國 臨素半國 臣雲新國 如來卑離國 楚山塗卑離國 一難國 狗奚國 不雲國 不斯濆邪國 爰池國 乾馬國 楚離國
6685 SHARED
 
0484 三國史記(1145)
遣内法佐平●沙若思如南齊朝貢 若思至西海中遇髙句麗兵不進 내법좌평 사약사를 남제에 보내 조공하려 했으나, 약사가 서해에서 고구려 군사와 조우하여 가지 못하였다.
211 SHARED COMMENT
 
0490 南齊書(537)
녕삭장군 面中王 저근은 정치를 두루 잘 보좌하였고 무공 또한 뛰어났으니 이제 가행관장군 도장군 都漢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 八中侯 여고는 젊을 때부터 임금을 도와 충성과 공로가 진작 드러났으므로 이제 가행녕삭장군 阿錯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 여력은 천성이 충성되고 정성스러워 문무가 함께 두드러졌으므로 이제 가행용양장군 ❷邁盧王이라 하였으며, 광무장군 여고는 정치에 공로가 있고 국정을 빛내고 드날렸으므로 이제 가행건위장군 弗斯侯라 하였습니다.
10276 SHARED
 
0495 南齊書(537)
사법명을 가행정로장군 ❸邁羅王으로, 찬수류를 가행안국장군 辟中王으로, 해례곤을 가행무위장군 弗中侯로 삼고, 목간나는 과거에 군공이 있는 데다 또 성문과 선박을 때려 부수었으므로 행광위장군 面中侯로 삼았습니다.
25073 SHARED
 
0495 南齊書(537)
▐ 삼국지(289)의 斯盧가 후대에 斯羅로 불리기도 한 사례를 볼 때, 동성왕 표문에 나오는 邁盧와 邁羅도 동일한 지명의 다른 표기일 듯하다. 이 지명은 삼국지(289)의 萬盧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
10345 SHARED
 
0512.12 日本書紀(720)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의 上哆唎·下多唎·❼娑陀·牟婁의 4현을 청했다. ... 이로 말미암아 사신을 바꾸어 칙을 선포하고 내리는 물건과 제지를 붙여서 표에 따라 임나의 4현을 주었다.
4053 SHARED COMMENT
 
0538 三國史記(1145)
봄에 서울을 ❽泗沘(다른 이름은 所夫里였다)로 옮기고 국호를 南扶餘라 하였다.
24884 SHARED
 
0540.09 日本書紀(720)
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어느 정도의 군사가 있으면 신라를 칠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다. 물부대련미여 등이, “적은 군사로는 쉽게 칠 수 없습니다. 지난 번 백제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임나의 上哆唎·下哆唎·❼娑陀·牟婁의 네 현을 청하였는데, 대반대련금촌이 표에서 청하는 대로 구하는 곳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의 원망이 여러 해 동안 쌓여 갔으니 가볍게 칠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4054 SHARED COMMENT
 
0562※ 三韓³地名
0562※ 三韓³地名
6719 SHARED COMMENT
 
0636 隋書
나라안에는 여덟 씨족의 大姓이 있으니, ●沙氏·燕氏·刕氏·解氏·貞氏·國氏·木氏·苩氏이다.
738#1944 SHARED
 
0639 미륵사 석탑 금제사리봉안기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❹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를 받아 삼라만상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의 동량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
40723 SHARED COMMENT
 
0654 砂宅智積碑
갑인년 정월 내기성의 ❺砂宅智積은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은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 금을 캐어 진귀한 집을 짓고 옥을 파내어 보배로운 탑을 세우니, 그 높디놓은 한 자애로운 모습은 신령스런 빛을 토하여 구름을 보내는 듯하고, 그 우뚝 속은 자비로운 모습은 성스로운 밝음을 머금어...
40722 SHARED COMMENT
 
0654 砂宅智積碑
▐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백제에는 沙씨가 등장하는데, 이 沙씨는 砂宅, 沙宅 또는 沙吒로도 나타난다. 砂宅智積碑는 泗沘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는 沙씨가 백제 왕조에 편입된 泗沘 지방의 토착 세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泗沘는 일본서기(720)에서 임나4현의 하나로 나오는 娑陀의 다른 표기일 가능성도 생긴다. 泗沘는 久麻那利에서 가깝고 久麻那利는 임나 4현의 하나인 下哆唎의 별읍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25074 SHARED
 
0660 唐平濟碑
그 왕 부여의자 및 태자 융(隆) 이외 왕자 효(孝) 13인은 대수령 대좌평 ❻沙吒千福, 국변성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말가죽을 버리게 하고 우거에 실어다가 잠시 있다가 사훈에 올리고 이에 청묘에 드렸다. ▐ 泗沘에 있다.
40726 SHARED COMMENT
 
0660↶ 百濟 熊川州
●所夫里郡(一云泗沘)┆珍惡山縣┆悅巳縣(一云豆陵尹城 一云豆串城 一云尹城)┆任存城┆古良夫里縣┆烏山縣
8488 SHARED
 
0660↶ 百濟 熊川州 所夫里郡
25408 SHARED
 
0662.02 三國史記(1145)
상지는 별부장 ❻沙吒相如를 데리고 험준한 곳에 웅거하여 복신과 호응하다가, 이때에 이르러 모두 항복하였다.
40721 SHARED COMMENT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0664 熊津都督府
都督府 一十三縣┆嵎夷縣┆神丘縣┆尹城縣(夲悅已)┆麟德縣(夲古良夫里)┆散昆縣(夲新村)┆安遠縣(夲仇尸波知)┆賔汶縣(夲比勿)┆歸化縣(夲麻斯良)┆❸邁羅縣┆甘蓋縣(夲古莫夫里)┆奈西縣(夲奈西兮)┆得安縣(夲德近支)┆龍山縣(夲古麻山)
8583 SHARED
 
0671.01 日本書紀(720)
이 달 대금하를 좌평 여자신· ❹沙宅紹明 법관에게, 소금하를 귀실집사 학직두에게, 대산하를 달솔 곡나진수·목소귀자·억례복류·답발춘초·발일비자찬파라금라금수·귀실집신에게, 소산상을 달솔 덕정상·길대상·허솔모·각복모에게, 소산하를 다른 달솔 등 50여 인에게 제수했다.
40681 SHARED COMMENT
 
0671.11 日本書紀(720)
대마국사가 사신을 축자의 대행부에 보내 “이 달 2일에 사문 도구·축자군살야마·한도승사바·포사수반 4인이 당으로부터 와서 ‘당의 사신 곽무종 등 600인, 송사 ❹沙宅孫登 등 1400인, 모두 합해 2000인이 배 47척에 타고 함께 비지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36124 SHARED COMMENT
 
0674 日本書紀(720)
대금하 百濟❹沙宅昭明이 죽었다. 사람됨이 총명하고 밝은 슬기를 지녀 당시 사람들이 수재라고 칭하였다. 이에 천황이 놀라며 은혜를 베풀어 외소자위를 추증하고 본국의 대좌평의 위계도 거듭 추증하였다.
36125 SHARED COMMENT
 
0691 日本書紀(720)
의박사 무대참 덕자진, 주금박사 목소정무·❹沙宅萬首에게 사람마다 은 20량을 주었다.
40670 SHARED COMMENT
 
0757 九州五小京 熊州
扶餘郡 夲百濟●所夫里郡 唐將蘇定方與庾信乎之 文武王十二年置揔管 景徳王改名 今因之 領縣二┆石山縣 夲百濟珍惡山縣 景徳王攺名 今石城縣┆恱城縣 本百濟恱巳縣 景徳王改名 今定山縣 ▐ 백제 所夫里郡 → 웅진도독부 □□ → 신라 扶餘郡
25072 SHARED
 
0757 九州五小京 熊州
▐ 백제 웅천주의 所夫里郡(一云泗沘)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는데도 백제를 멸망시키고 설치한 웅진도독부에 나타나지 않다가 9주5소경에 와서야 扶餘郡으로 나타난다. 한편, 웅진도독부에는 이전의 백제 웅천주에 없었고 이후의 9주5소경에도 나타나지 않는 邁羅縣이 나타나는데 동성왕 표문(495)에는 沙法名을 邁羅王으로 삼았다고 되어있다. 沙씨는 백제 왕조에 편입된 泗沘 지방의 토착 세력으로 보이므로, 그런 沙씨를 왕으로 삼은 邁羅는 泗沘와 동일한 곳인 듯하다.
25075 SHARED
 
0757 九州五小京 熊州 扶餘郡
25409 SHARED
 
_부여
@萬盧 @만로 @邁盧 @매로 @邁羅 @매라 @沙宅 @사택 @砂宅 @沙吒 @사타 @娑陀 @泗沘 @사비
30261 SHA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