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0676 新羅 > (2) 다종족 상태

농경이 시작된 이후 반도로 흘러온 유민은 경작의 종류에 따라 밭농사와 논농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각 북쪽과 서남쪽으로 들어온 듯하다. 역사 기록이 시작된 이후 반도로 흘러온 유민은 북중국, 특히 연나라 지역에서 발해를 지나 대동강 및 한강 유역으로 와 일부는 정착하고 일부는 낙동강 유역까지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고고학적 양상을 보면 영산강 유역과 일본 구주 지역이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어 종족적 친연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Ethnolinguistic Groups of Myanmar
Ethnolinguistic Groups of Myanmar
한국통일 이전의 한반도도 이처럼 여러 종족으로 갈라져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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姓氏
한국 성씨의 특징은 본관이 영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영남 지역에서 출발한 신라가 한국을 통일했던 역사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여진다.
1716#1720 SHARED COMMENT
 
고려와 한국은 서로를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韓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에 高句麗와 별개의 나라로 처음 나타난다. 고려는 광개토왕릉비에서 韓과 穢를 다른 종족으로 보았으며 중원비에서는 신라를 東夷라 했다. 신라 또한 고려를 다른 종족으로 보았으며 해동안홍기와 당시장군비 그리고 낭혜화상탑비에서 穢貊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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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동이족이란 없었다
1716#6127 SHARED COMMENT
 
말이 통했을까?
삼국지(289)에는 진한에 대해 진나라 유민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소개하며 쓰는 말이 마한과 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주서(636)에는 백제에서 왕을 어라하라 부르는데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어, 부여계 지배 세력과 마한계 피지배 세력의 언어가 달랐거나 한강 유역의 언어와 금강 유역의 언어가 달랐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1716#1212 SHARED COMMENT
 
온돌은 민족 고유의 문화가 아니다.
1716#2253 SHARED COMMENT
 
유민
고대 동북아 유민의 가장 큰 흐름은 중국, 특히 연나라에서 조선으로 유민이 흘러가고 또 조선에서 진한으로 유민이 흘러오는 경향이다. 조선이 낙랑이 된 이후에도, 그리고 진한이 신라가 된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졌다. 한편, 백제와 고려가 패망하면서 많은 유민들이 당나라와 왜로 건너갔다.
1716#1763 SHARED COMMENT
 
이질감은 오래 남았다
1203 고려사(1451)1217 고려사(1451)1237 고려사(1451)1237 고려사(1451)1237 고려사(1451)1267 원사(元史 1370 明·宋濂等) 卷006양호(梁浩)한겨레21: 통일新羅 시대에 ‘우리’란
 
한국과 고려는 지명이 달랐다.
삼한³의 지명을 보면 차현과 죽령을 경계로 해서 남북의 지명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 이북의 지명은 한사군 시기에 없던 것으로 고려가 붙인 것이고, 그 이남의 지명은 삼한의 지명에 기원이 닿은 것이 많아 삼한의 지명을 이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양상은 고려와 한국이 근본적으로 언어가 달랐던 것을 암시한다. 차현과 죽령 이남도 소백산맥을 경계로 동서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이는 방언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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