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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1일에 있었던 김대중의 선동으로부터 1980년 5월 31일에 있었던 계엄사의 발표 그리고 그 이후의 관련된 사건까지.
 
1980.05.11 김대중의 선동
12일 서울역 시위에 앞서 11일 전북 정읍에서 동학제가 있었다. 정읍은 동학운동의 시발지다. 여기서 DJ는 “동학란은 민주주의 혁명”이라 규정하며 “제2의 동학란이 일어나야 한다”고 선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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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15
18:50 버스 돌진심재철 1심재철 2장세동 광주 방문전두환 회고록
 
1980.05.16
1980.05.16 최규하 대통령 귀국1980.05.16 경향신문1980.05.16 김대중의 최후통첩1980.05.16 최규하 대통령 대책회의
 
1980.05.17
11:00 국방부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16:30 국무총리에게 국방부 회의 전달 ┆19:00 국무회의 ┆23:30 계엄군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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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18
1공수 연세대, 3공수 국립묘지, 7공수 광주 전주 대전, 11공수 동국대 배치 ┆10:00 2백여명의 전남대생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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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19
04:00 11공수 광주 배치 ┆유언비어 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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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0
3공수 광주 배치 ┆21:00 선무방송 시작 ┆21:00 버스 돌진, 경찰 4명 사망 ┆23:00 광주세무서 무기고 총기 탈취 ┆23:00 광주역앞 발포, 5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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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00:00 전교사령관, 계엄사령관에게 전화로 공수부대의 외곽 철수 건의┆08:00 전교사령관, 광주에 '진돗개 하나' 발령 ┆08:10 20사단 피습 ┆11:00 계엄사령관, 대통령에게 보고한 계엄군 외곽 철수를 국방부 대책회의에 보고 ┆13:00 계엄군, 도청앞 집단발포 ┆16:00 2군사령관, 전교사령관으로부터 자위권 발동을 건의받아 계엄사령관에게 전달 ┆16:30 계엄사령관, 2군사령관에게 계엄군 외곽 철수 지시┆19:30 계엄사령관, 자위권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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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미대사관
It is probable that regionalism is playing significant role in the intensity of the riot in Kwangju. 지역주의가 광주폭동을 격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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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2
대통령, 전교사령관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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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3
08:00 11공수 62대대, 주남마을에서 버스승객 몰살 ┆지방유지와 온건파 학생들, 수습위원회 구성 ┆2군사령부, 재진입 작전 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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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3 미국방성
한미연합사령부 소속 한국군 병력의 소요사태 진압을 위한 이동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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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4
13:55 11공수 63대대와 전교사 교도대 교전 ┆1만 5천여명 전두환 화형식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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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5
11:00 광주 재진입 작전 결정 ┆5만여명 김대중석방·계엄철폐 요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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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6
15:00 5천여명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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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7
광주사태 상황도육군항공단 203대대 UH-1이주천 강의
 
1980.05.28 군검합동 검시 착수
합동검시반은 사망자가 총기에 의한 것인지 타살에 의한 것인지 총격의 경우 카빈인지 M16인지 등 총기식별을 중점적으로 하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체는 지문을 채취, 신원을 파악했으며 사망의 주요 원인에 대해서 천연색 사진을 찍고 사체의 안치경위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특히 검시반은 시체의 부패가 심하고 유족들의 격앙된 감정을 고려, 해부검사를 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총기식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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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31 광주사태에 대한 계엄사 발표
지난 5월18일 광주시내 대학생시위에서 발단하여 5월27일 진압되기까지 광주시 일원에서 발생하였던 폭동사태는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국정의 정상적 수행을 저해하였을 뿐 아니라 국민여러분에게도 큰 불안과 깊은 염려를 끼치게 한 유례없는 비극이었다. 다행히도 5월27일 계엄군의 효과적인 진압에 의해 질서와 안정을 되찾게되었고 사태수습이 진행되고 있음에 즈음하여, 계엄사령관으로서 국민여러분께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 광주사태의 경위 및 진상과 사후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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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6.03 찢어진 깃폭
글쓴이 김문은 본명이 김건남이고 1946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1980년 5월 19일에 광주에 있는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가 겪은 일이다. 5월 24일 새벽 7시에 군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철로를 따라 광주를 빠져나와 서울행 기차를 탔다. 6월 3일 명동성당에서 이 글을 낭독하였고 수녀들이 녹음하여 퍼뜨렸다. 1. 아름다운 도시 1980년 5월 19일, 아름답고 조용한 전원도시 전남의 도청소재지, 독립과 민주주의 투쟁에 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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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8.08 윤흥정에 훈장
광주□□ 초기 대응의 실패 때문인지 5월 22일 전교사령관에서 교체되어 체신부 장관이 되었던 윤흥정이 미국을 방문하여 당시 귀국해 있던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미국의 훈장을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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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8.08 주한미군 고위간부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장 전두환 장군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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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8.11 미국무성
한국의 지도자 선택은 한국민이 결정할 문제다. 미국이 한국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 표정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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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8.16 최규하 대통령 사임
... 광주사태에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정치도의적 책임을 통감해 왔고 ... ▐ 미국의 전두환지지 표명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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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0.22 제5차 국민투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든 제5공화국헌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져 95.5% 투표율에 91.6%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전남과 전북의 투표율/찬성율은 각각 97.3/90.1과 97.8/93.1로 서울의 91.8/87.0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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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09 The Heritage Foundation
The events of May 1980 were not a deliberate plot by the ROK government to massacre innocent civilians in South Cholla Province. Nor was the U.S. involved in the incident-. Given the extent of the insurrection, the death toll was remarkably l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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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0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사태에 가담했던 이재호와 전용호가 자료를 모아 초고를 쓰고 황석영의 이름을 빌려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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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7.19 <5.18> 검찰 수사결과 발표
현재까지 정부의 관련자료에 의하여 확인된 광주시위관련 사망자는 군인 23명, 경찰 4명, 민간인 1백 66명이고 광주시위관련 행방불명자로 인정되어 보상금이 지급된 사람은 47명이다. 현재로서는 당시의 실제 사망자수를 다시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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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3 황석영
용산 참사와 관련, "현 정부의 실책이라고 본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해외에 나가서 살면서 나는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다"며 "70년대 영국 대처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 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고, 큰 틀에서 어떻게 가야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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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광주□□
광장 중앙에 8t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사람이 몰려 웅성거렸다.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이었다. 폭도들이 운전사, 조수를 끌어내려 때리고 발로 차고 밟고 하여 두 사람이 현장에서 죽었다.
 
2012.05 김씨조선, 력사는 고발한다
미국은 박정희가 민심을 잃어 더 이상 쓸모없게 되자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로 하여금 그를 살해하게 한다. 그리고 전두환을 지원하여 12.12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게 하고 1980년 5월 17일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한다. 그러자 유신체제의 부활에 반대하는 항거가 일어났고 광주에서 크게 폭발하였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백악관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이를 강력히 진압하기로 하고 전두환을 돌격대장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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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조폭 출신 구속부상자회장
광주□□ 구속부상자회 문흥식 중앙회장은 신양 OB파 행동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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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8 보상금 불법 수령
현직 광주□□ 구속부상자회 이사가 과거에 가짜로 서류를 조작해 국가 보상금을 타낸 사실이 법원의 최종 판결문에서 확인됐습니다. 1980년 5·18 당시 김 씨는 군인들에게 끌려간 건 맞지만, 구타를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속이고 보상 서류를 내 나랏돈 3천9백만 원을 챙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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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30 Myanmar ⪢⪢
And in Myanmar, at least 459 people have been killed since the military takeover including 114 during protests on Saturday. ▶광주□□ 전기간에 걸쳐 죽은 민간인은 200명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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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구속부상자회 방화
광주□□ 구속부상자회는 이날 오후 광주 동구 광주□□ 민주광장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부활제'를 열었다. 이 단체는 공법단체로 승격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회원들끼리 갈등을 벌이고 있는데, 한 회원이 시비 끝에 인화성 물질을 사무실에 뿌리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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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6 건물 붕괴, 조폭 연루 의혹
사망 9명, 중상 8명 등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붕괴 건물’ 사고와 관련, 사업 공사 수주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던 조폭 출신 광주□□ 구속부상자회 회장이 미국으로 도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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