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1일에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와 그 2년 뒤에 제5공화국에서 펴낸 전사의 내용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광주□□는 전라도의 피해의식과 전라도 정치인 김대중의 구속 그리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유언비어의 유포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1995년에 이루어진 검찰수사기록에는 경상도 번호판의 차량이 불타고 운전자는 끌려나와 구타를 당했으며 죽은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되어 있어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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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주한미국대사관
오래도록 자신들이 2등급시민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던 전라도민들은 전라도 정치 지도자 김대중의 체포 소식을 듣자 폭동을 일으켰다. 진압에 투입된 군인들이 경쟁 관계에 있는 경상도에서 왔다는 비난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 rioting┆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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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허구가 무너지고 있다
1980년대에 학생들을 자극했던 광주□□ 이야기는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
미국배후설을 믿고 미국을 공격하던 학생들은 지금 집권 세력이 되어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사대역적이 되었고 전두환개입설을 믿고 30여년간 증거를 찾던 사람들은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사과 또는 자백을 받아 그것을 입증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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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2 백악관 정책검토 회의
광주에서 60명의 사망자와 4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전두환이 이 분쟁의 책임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있다. 한국 군부는 무력 사용을 절제하고 있다. 한국 군부가 실패하면 안되니 미국은 그들의 질서 유지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전두환은 한국을 후퇴시켰다. 전두환이 실권하면 권력 공백이 생길 것이다. 미국은 전두환을 반대해서는 안된다.
▐ struggle┆rebellion
6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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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05 제5공화국 전사
▐ 1980년 5월 21일에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와 그 2년 뒤에 제5공화국에서 펴낸 전사의 내용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광주□□는 전라도의 피해의식과 전라도 정치인 김대중의 구속 그리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유언비어의 유포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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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검찰수사기록
차량을 타고 다니며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려고 왔다."는 선동 방송이 있었다.
그리고 경상도 번호판의 차량이 불타고 운전자는 끌려나와 구타를 당했으며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 검찰수사기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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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박근혜
이명박씨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벌이던 박근혜씨는 광주 상무지구 내에 있는 영화관에서 5.18 광주사태를 왜곡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후 “마음이 아프고 무거운 심정으로 영화를 봤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27년 전 광주시민이 겪은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다”며 “그 눈물과 아픔을 제 마음에 깊이 새기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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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0 노태우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流言蜚語)였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악랄한 유언비어가 광주 시내를 뒤덮었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 “무지막지한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잘라냈다”, “처녀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등 수많은 유언비어가 사실인 양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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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1 조원진
조원진 의원과 강기정 의원은 이날 두 지역구의 주민 600여명과 함께 광주 5·18 민주묘역을 참배하고 광주교대 체육관에서 친선 체육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두 의원은 5·18 묘역 참배시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함께 부른다.
이 자리에는 가수 김흥국씨도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주호영 의원의 친구로, 주 의원이 섭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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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6 이희성
'한 사건을 이쪽·저쪽, 위·아래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오. 광주 사태가 불처럼 타 지역으로 번져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그때 우리 군에서는 그런 국가 위기 상황을 걱정했고, 절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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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전두환 회고록
광주사태 당시는 물론 그 후에도 이 사건을 언급하는 외국 정부나 연구소, 언론은 'riot' 'uprising' 또는 'incident'라는 단어를 썼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영어 논문에서 광주사태를 가리키는 말로 'revolt(반란)'라는 단어를 썼다. 5.18단체의 영문 공식문서에도 'rebellion(반란)'이란 단어와 함께 이 단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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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홍준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특별법을 만든 것이 저희 당입니다.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을 탄압했던 분들에 대해서 사법적 단죄를 한 당도 저희 당입니다. DJ가 한 게 아니고 YS가 다 했습니다. ... 지금 와서 다시 5.18민주화운동의 성격을, 국민적 합의로 다 규정이 되었는데, 다시 규정을 하자, 그것은 좀 곤란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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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이주천
폭력적인 수단으로 공권력에 도전했다는 점을 들어 민주화운동론에 공감하지 않고 있다. '폭력사태의 원인은 공수부대에 대한 학생들의 공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견해와 '김대중이 광주사태에 어느 정도 개입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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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정규재
조갑제의 자연발생설이나 당시 정부의 김대중 내란음모설을 모두 부정하고 지역사회에서 모종의 기획이 있지 않았나 의심한다.
김영삼 제명으로 부마사태가 나고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자 집권을 향한 김영삼의 입지가 높아졌다. 김대중을 지지하는 지역사회에서는 부마사태처럼 공수부대가 들어오면 더 완강히 저항하여 김대중의 입지를 더 높이 올려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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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유승민
미래통합당 유승민 의원은 광주사태 사망자 묘지를 참배했다. 유 의원은 이날 유의동 의원, 김웅 당선자 등과 이 묘지를 참배한 뒤 “5·18 역사의 진실은 시간이 지나도 꼭 밝히려는 노력을 우리 미래통합당도 해야 한다”며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왜곡하고 비난하는 정신이 통합당 전신 자유한국당에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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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9 노재헌
투병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가 아버지의 조화를 광주사태 사망자 묘역에 헌화했다. 이 꽃에는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노태우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고 2007년 회고록에는 '광주사태 당시 나는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서울지역의 계엄분소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광주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태에 대해서는 관여할 입장이 아니었다'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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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9 김종인 광주사태 묘역에서 사죄
"광주에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의 어긋난 행동에 우리 당은 엄정한 회초리를 들었다. 일부 정치인들까지 편승하는 태도는 표현의 자유란 명목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할 수 없다. 그동안 잘못된 언행에 당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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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윤석열
5.18은 현재도 진행중인 살아있는 역사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독재와 전제든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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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광주□□를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우리 헌법가치를 지킨 정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헌법이 개정될 때 헌법 전문에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
▐ 당시 미대사관은 광주□□를 지역주의에 의해 일어난 폭동이라 본국에 보고했고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사태가 더 커지면 미군을 직접 투입할 각오까지 했었다. 광주□□가 헌법 전문에 들어가면 대한민국 헌법은 그런 미국과 충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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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6 윤석열
"5월 정신이라는 것이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기 때문에 저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5월 정신을 잊지 않겠다."
그러나 광주□□ 묘역에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회·시민단체들의 반발로 추모탑 30m 앞에서 멈춰선 뒤 묵념만 하고 돌아갔다.
윤석열은 지난해 11월에도 참배하려다 같은 이유로 못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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