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이야기 > 1429 고려장
 
 05c 雜寶藏經 棄老國緣
佛言過去久遠有國名棄老彼國土中有老人者皆遠驅棄有一大臣其父年老依如國法應在驅遣大臣孝順心所不忍乃深掘地作一密屋置父著中隨時孝養 -- 잡보장경은 5세기 말에 위(北魏)의 길가야가 담요와 함께 한역한 경전으로, 121가지의 짧은 설화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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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c 잡보장경 기로국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에 기로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노인이 있으면 멀리 내다 버리는 법이 있었다. 한 대신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늙었으므로 국법에 따라 멀리 내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효심이 있어 차마 그러지 못하고 땅을 깊이 파고 밀실을 만들어 아버지를 그 안에 모시고 수시로 봉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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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58 曲江 (杜甫)
朝回日日典春衣 毎日江頭盡醉歸 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穿花蛺蝶深深見 點水蜻蜓款款飛 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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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58 曲江 (杜甫)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잡히고 곡강에 나가 취하도록 마시고 돌아온다. 외상 술값은 가는 곳마다 널려 있지만 잘 살아야 칠십 인생 옛부터 드물다네.  호랑나비 꽃 사이를 숨바꼭질 하듯 날고 물잠자리 강물 위를 스치고 유유히 난다.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잠시나마 등지지 말고 봄을 즐기세나.  -- '칠십살까지 사는 것은 옛날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 이 부분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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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9 조선왕조실록
高麗之季外方無知之民父母歿則反生邪意卽毁其家且父母垂死氣猶未絶出置外舍雖有復生之理終或不免焉 고려 말기에 지방의 무지한 백성들이 부모가 죽으면 도리어 간사한 마음으로 즉시 그 집을 무너뜨리고, 또 부모가 거의 죽어갈 때, 숨이 아직 끓어지기도 전에 외사로 내어 두게 되니, 비록 다시 살아날 이치가 있더라도 마침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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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9 조선왕조실록
예조에 교지를 내려 금지시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주 드물게 있었던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방의 무지한 백성'으로 범위를 한정해 놓은 것으로 보아 또한 일반화된 풍습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이 기록에서는 '고려말기'라고 언급했지만 내용이 현재 진행형이라 당시에도 그런 풍습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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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9 조선왕조실록
이조는 이전 왕조였던 왕고를 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한 예로 高麗公事三日을 들 수 있다. 고려의 법령은 오래 가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난다는 뜻인데, 이 말은 1406년 태종에 의해서 언급된 이래 1767년 영조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고려란 말이 붙어서 언급되었다. 1767년까지 그런 속성이 남아 있었다면 그건 이조의 속성이기도 하건만 朝鮮公事三日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고려장이란 말도 이처럼 왕고를 비하하는 경향의 산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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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4-? 회은집(晦隱集)
特深穿窟。如鑿井之形。築以小石。今往往崩毁處。稱以高麗葬者是也。 굴을 깊이 파서 우물처럼 작은 돌을 쌓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 가끔 무너진 곳이 있다. 고려장이라 칭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돌방무덤을 고려장이라 했다. 고려 고분의 특징이 벽화와 함께 바로 이 돌방이므로 일리가 있는 표현이나 고려장의 '고려'가 왕씨고려가 아닌 고대 고려를 지칭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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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9-1756 입재유고(立齋遺稿)
山野處處。高墳大塚。俗謂之高麗葬。 산야 곳곳에 크고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속된 말로 고려장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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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3 연행록(燕行錄)
且滿漢公卿。擧皆不火葬。而地室設炕。傍開通穴。守直之人。出入燃燭云。有如我東昔日高麗之葬。만주족이나 한족 벼슬아치들은 거의 화장하지 않고 땅 속 방에 구들을 만들며 옆에 구멍을 뚫어서 지키는 사람이 드나들며 촛불을 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옛날 고려장과 같은 것이다. -- 炕(구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오해하기 쉬우나 죽은 후의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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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4 十種古逸書 原穀
原穀者不知何許人祖年老父母厭患之意欲棄之穀年十五涕泣苦諫父母不從乃作輿舁棄之穀乃隨收輿歸父謂之日爾焉用此凶具穀乃日恐後父老不能更作得是以取之耳父感悟愧懼乃載祖歸侍養剋己自責更成純孝穀紳純孫御覽五酉十九霍子 -- 원곡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는 효자전은 남북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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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4 십종고일서 원곡
원곡은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할아버지가 늙어가자 부모가 싫어하여 내다버리려 하였다. 원곡은 15살이었는데 울면서 간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마침내 들것에 실어 내버렸는데 따라갔던 원곡이 들것을 거두어 돌아오니 아버지가 '이 흉한 물건을 어디에 쓰려느냐?'고 물었다. 원곡이 '나중에 부모님을 내다버릴 때 다시 만들 수 없으므로 도로 가져 왔습니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그제야 부끄럽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할아버지를 도로 싣고 와 잘 봉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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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 Corea, the hermit nation - William Elliot Griffis
To the house of Ni belongs also the greater honor of abolishing at least two cruel customs which had their roots in superstition. Ko-rai-chang, though not fully known in its details, was the habit of burying old men alive. 고려장은 자세한 건 모르겠고 노인을 산 채로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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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4-09-13 동아일보
평안북도 뎡주에서는 그곳 성외동사는 박창균이라는 사람이 생활곤난이 극도에 달하야 자긔부친을 산 대로 장사지내엇다 한다. 부친을 고려장을 지냇다. 이것을 녯말로는 들엇스나 사실로 듯고는 놀라지 아니할 수 업다. 놀란다는 것은 무슨 자식이 애비에게 불효하엿스니 그런 불효자식으로 놀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산채로 장사지냇다는 이 한 사실과 이러한 일을 하지 아니치 못하게 된 그의 형편을 대조하야 생각할 때에 엄숙한 경악을 늣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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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4-09-13 동아일보
바이다. 경제라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전인격을 지배하는지를 알겟다. 이 근본원리에 대하야 일즉이 맑스는 '우리 의식은 우리의 주위 사정이 지배한다'고 말함과 가치 그 사람의 생활은 필경 그 사람의 전인격을 지배하는가 보다. 속담에 '이 서름 저 서름 해야 배곱흔 서름이 뎨일이라'는 말도 대개 이런 속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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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4-09-13 동아일보
이 기사의 수준 높은 해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또 이 당시 이미 Marxism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Marxism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일찌기 또 넓게 퍼져 있었는지 모른다. 상해에서 설립된 임시정부는 1941년에 토지와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는 내용의 건국강령을 발표했고 1945년 해방 직후에는 조선인민공화국이 세워졌으며 1946년 대구에서는 인민봉기가 발생했다. 이런 일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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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11-04 황해도 재령에서 조카 생매장
황해도 재령군 하류면 모범림 산속에서는 유달리 춥고 휘뿌리는 비바람에 섞인 사람의 부르짖는 소리가 그 아래 신원시중의 꿈을 깨친일이 있었다는데 ... 산중에 고려장(高麗葬) ... 다죽어가는 김진규를 그 산속에 흙구덩이에다가 돼지 우리처럼 만들고 몰아넣어 두었는데 수일내로 빗물이 고여들어 사람으로 차마 볼 수 없이 산장을 한 셈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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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18 노인자살 - 이규태
‘늙음’이란 대저를 남긴 보브알은 미개 종족이 원숭이 나이에 이르면 에스키모족처럼 자살을 권하고 고려장처럼 유기하여 죽어가게 하는 기로속(棄老俗)이, 여진족처럼 화살로 쏴 죽이는 살로속(殺老俗)이 죄책감 없이 관습화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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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葬 - ウィキペディア
高麗葬(こうらいそう、コリョジャン)は、朝鮮の高麗時代(または古代社会)に存在したとされる、老境極まって働けなくなった老人を山に捨てる風習、または墓に生きたまま閉じ込めて葬ることである。 -- 고려장(코오라이소오)은 한국의 왕고시대 또는 고대 사회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늙어 일할 수 없는 노인을 산에 버리는 풍습 또는 산 채로 묻는 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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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로전설(棄老傳說) - 네이버
옛날 어느 집에서 70세가 된 늙은 아버지를 그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 속에 내다 버렸다. 지게를 버리고 막 돌아서려 할 때, 따라왔던 그의 아들이 지게를 다시 가져가려 하므로 아버지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더니, “아버지가 늙어 70세가 되면 이 지게로 다시 져다 버리려고요”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에 아버지는 뉘우치고, 노인을 다시 집으로 모시고 가서 효도를 다하였는데, 이로부터 이 악습은 사라졌다는 줄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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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장(高麗葬) 고찰
이조 초기에 늙은 노인을 외따로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례가 지방에 있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조는 이 풍조를 개탄하면서 왕씨고려의 구습인 것처럼 말했다. 그와 별개로 이조시대 사람들은 옛 무덤을 고려장이라 불렀다. 이조시대에 있어서 '고려'는 옛날이란 뜻이다. 때로는 돌방 무덤을 가리켜 고려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돌방 무덤이 오래 그 형태가 유지되므로 남아 있는 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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