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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6-04 전두환 - 미국무부 비밀문건
주한미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의 만찬자리에서 전두환은 '22명의 신원미상 시신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침투요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http://qindex.info/i.php?f=3318#3963
 
 2007 노태우 면담록
"사망자 가운데 16명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혼란이 있을 때마다 북측이 이를 조장하기 위해 공작원을 상투적으로 침투시키곤 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잘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나는 지금도 1백60명의 사망자들은 군인에 의해 희생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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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16 이희성 인터뷰
기자: 당시 담화문에 '상당수의 다른 지역 불순 인물 및 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 광주에 잠입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근거가 있는 겁니까? 이희성: 첩보는 있었지만 확증을 잡지 못했소. 확증이 없는데 어떻게 얘기하겠소. 다만 무기고를 털고 시위대를 조직적으로 이끄는 등 민간인이 할 수 없는 행동이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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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5 이규연
1980년 5월 10일에 작성된 '북괴남침설분석'이란 문건에는 김조의 남침이 결정되었다는 일본 내각 조사실의 첩보를 분석하고 '북괴군사동향은 정상적 활동 수준으로서 특이 전쟁 징후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계엄사령부는 광주에서 무장폭동이 발생하자 '소요는 고정간첩과 불순분자 깡패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습니다'는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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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5 이규연을 교정한다
-- 5월 10일은 아직 혼란이 심하지 않을 때다. 당연히 이북 정규군은 특이 징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계엄사령부의 유인물은 '부득이 소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는 문구를 볼 때 진압일인 5월 27일에 임박하여 살포된 것이다. 이때도 이북 정규군이 특이 징후를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고정간첩, 불순분자 그리고 깡패는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특수부대를 보냈더라도 정규군은 특이 징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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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9 서양화가 예송김영근
"진도에가서 광주사태 상황을 주민들한테 듣게되었다. 진도주민들은 그당시 파출소 순경들이 무기고를 열고 차량까지 지원해주었다고한다." -- 이게 사실이라면 협조하는 경찰이 있어 무기탈취가 조직적이고 쉽게 이루어졌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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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4 김현정의 왜곡
김용장은 광주사태 때 (1) 30-40명의 편의대를 봤고 훗날 (2) 그들이 방화, 무기탈취 그리고 총격을 직접 하거나 유도하지 않았나 의심하고 있다. 김현정은 부마민주화운동 때 편의대로 활동한 제보자를 인터뷰 하면서 김용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그 사례는 김용장이 주장하는 (2)가 아니라는 점은 가리고 있다. 광주사태 태 발생한 방화, 무기탈취 그리고 총격은 여전히 광주폭도의 죄로 남아있다.
http://qindex.info/i.php?f=3318#5650
 
 5.18 기록관
편의대는 무장을 하지 않고 적지에 들어가 몰래 활동하는 첩보, 선동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뜻한다. 당시 대공 분야 국내 1인자인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이 편의대의 중심에 있다는 게 기록관의 분석이다. 기록관은 전 씨가 홍 씨 뿐만 아니라 최예섭 보안사 기획조정실장, 최경조 합수본부 수사국장, 박정희 중앙정보부 과장 등을 광주로 보내 편의대를 운용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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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 공작설 - 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
방산업체인 아시아자동차 차량이 탈취당하고 반남지서 무기고가 최초로 털렸는데도 이를 수사하라는 지시가 없었다. 일반 시민이 무기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무기고가 탈취됐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수사는 흐지부지되었다. -- 국군이 총기와 차량을 탈취하여 폭도들을 무장시키고 인민군 개입설을 지어냈다는 이야기다. 광주사태의 양상이 민간인들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인민군 개입설과 같다.
http://qindex.info/i.php?f=3318#3966
 
 김조 공명주의자들의 사주설
"광주학생 문제도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한의 공명주의자들이 책임을 전가한 일" -- 학생문제라 한 것은 처음에 7공수 부대에 돌을 던져 과잉진압을 유도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 공명주의란 공을 세워 출세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책임전가란 폭력사태의 원인을 공수부대로 돌린 것을 말하는 것일까?
http://qindex.info/i.php?f=3318#1000
 
 전두환 회고록 P384 전두환개입설
"이 책에서 12.12와 5.17과 관련해서는 내가 했던 일과 알고 있는 사실들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5.18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 것이고, 내가 직접 겪은 사실들에 관한 내용은 매우 적다. 그 까닭은 다시 말하지만 5.18사태에 관해 내가 한 일, 직접 겪은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http://qindex.info/i.php?f=3318#3221
 
 전두환 회고록 P530 인민군공작설
"연고대생으로 소개됐다는 5~600명의 정체, 조직적으로 움직인 수백 명 규모의 집단이 실재했느냐의 여부, 복면한 사람들의 정체 그리고 5.18사태에 북한은 어느 정도 개입했었는가 하는 문제들에 관해 내가 이 글에서 확신을 갖고 새삼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http://qindex.info/i.php?f=3318#2548
 
 전두환 회고록 P531 인민군공작설
"5·18사태 때에는 북한의 특수요원들 다수가 무장하고 있는 시위대 속에서 시민으로 위장해 있을 터였다." -- 광주의 상황이 생생하게 김조의 통혁당 방송을 통해 나오는 것을 보면 시위대 속에 분명 간첩이 있었을 터인데 왜 잡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설명이다.
http://qindex.info/i.php?f=3318#2568
 
 전두환 회고록 P541 지만원의 주장
"지만원박사는 5.18때 북한의 특수공작원으로 침투했다가 돌아가 그 뒤 북한의 정부와 군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수백 명의 인물을 사진분석을 통해 실명으로 밝히고 있고 그 내용이 특정 보도매체와 출판물, 인터넷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지만 주요 언론매체들은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 -- 지만원의 인민군공작설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 주장에 대한 어떤 평가도 담고 있지 않다.
http://qindex.info/i.php?f=3318#2631
 
 전두환 회고록 P541 지만원의 주장
"독자나 시청자들의 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언론매체들, 여론의 향배를 좇을 수밖에 없는 정치권은 그렇다 하더라도 학계에서조차 ‘민주화운동’이라는 정통적 역사 인식에 대한 어떠한 ‘수정주의적’접근도 금기되어 있는 것 같다. 광주가 계속 신화의 영역에 있기를 원하며 불편할 수도 있을 진실이 더 이상 드러나길 바라지 않는 세력이 엄존한다는 것은 뚜렷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 현대사학자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http://qindex.info/i.php?f=3318#2640
 
 정규재
인민군 개입설을 부정하며 지역사회에서 모종의 기획이 있지 않았나 의심한다.
http://qindex.info/i.php?f=3318#2547
 
 조선 내부의 소문
조선의 뉴스에서 방송된 Kwangju riots 영상에서 학생들이 활동하는 장면 등을 보고, 조선 내부에서 ‘우리 대남공작원들이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http://qindex.info/i.php?f=3318#1205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장중한이 본 광주인민항쟁
http://qindex.info/i.php?f=3318#4967
 
 ¦인민군/국군 공작설 요약
김조는 한국에 공작원을 침투시켜 혼란을 부추긴 전례가 많다. 광주사태때 무기고를 털어 무장하고 조직적으로 계엄군을 공격한 것은 민간인만이 하기 힘든 일이다. 광주사태 사망자 중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이 여럿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인민군 공작설이 나온다. 그리고 이 인민군 공작설에서 김조의 특수군이 했던 역할을 국군 편의대가 한 것으로 교체하면 국군 공작설이 된다.
http://qindex.info/i.php?f=3318#3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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