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289)에는 진한에 대해 진나라 유민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소개하며 쓰는 말이 마한과 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주서(636)에는 백제에서 왕을 어라하라 부르는데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어, 부여계 지배 세력과 마한계 피지배 세력의 언어가 달랐거나 한강 유역의 언어와 금강 유역의 언어가 달랐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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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20-23년에 염사착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작정하였다. 살던 부락을 나오다가 밭에서 참새를 쫓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의 말은 한인(韓人)의 말이 아니었다.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한인(漢人)으로 이름은 호래다. ... 함자현에서 낙랑군에 연락을 하자, 군은 염사착을 통역으로 삼아 금중으로부터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가서 호래 등을 맞이하여 데려갔다.
1212#27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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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秦)의 고역을 피하여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그들의 말은 마한과 달라 나라를 방(邦)이라 하고 활을 호(弧)라 하고 도적을 구(寇)라 하고 술잔을 돌리는 것을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모두 도(徒)라 하여 진(秦) 사람들과 흡사하니, 단지 연(燕)과 제(齊)의 명칭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진한(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1212#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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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 梁職貢圖 百濟국사
言語衣服畧同高麗 行不張拱 拜不申足 以帽爲冠 襦曰複衫 袴曰褌 其言參諸夏 亦秦韓之遺俗
언어와 의복은 고려와 거의 같다. 다닐 때에는 두 손을 맞잡지 않고 절을 할 때에는 다리를 펴지 않는다. 두건를 관(冠)이라 부르고 저고리를 복삼(複衫), 바지를 곤(褌)이라 한다. 그 말에는 중국(夏)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 또한 진(秦)과 한(韓)의 습속이 남은 때문이라고 한다.
1212#24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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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周書 ⪢⪢
▐ 백제가 부여의 유민이 마한에 와서 세운 나라라는 점을 고려해서 부여계 지배 세력과 마한계 피지배 세력의 언어가 달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한성에서 수백년간 있던 백제가 금강 유역으로 옮겨온 점을 고려해서 한강 유역의 언어와 금강 유역의 언어가 달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영어에 가축 이름과 그 고기의 이름이 각각 토착 농민과 외래 귀족의 말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cow·beef, pig·pork, sheep·mutton ...
1212#24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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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7 日本書紀(720)
春秋美姿顔善談笑
춘추는 용모가 아름답고 담소를 잘하였다.
▐ 속일본기(797)의 681년 사건에 신라 사신이 통역을 대동하고 일본을 방문하였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와 일본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이 기록에서처럼 통역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기록에서 통역을 거쳤다는 이야기가 없다고 해서 말이 통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12#27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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