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562~0659 年代記

신라가 임나를 병합한 때부터 백제가 망하기 전까지.
 
0475~0561 年代記
고려가 백제의 한성을 차지한 때부터 신라가 임나를 병합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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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新羅, 임나 병합
일본서기에는 562년에 신라가 임나관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고 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562년에 가라가 반란을 일으키자 신라가 이를 토벌하였다고만 되어 있다. 임나 10국 중 중심이었던 가라가 신라에 병합됨으로써 임나가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격분한 왜는 군사를 보내어 치리와 거증산으로부터 나아가 신라를 치도록 했으나 임나를 복구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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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08 日本書紀(720)
대장군 대반련 협수언을 보내어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를 치게 하였다. 협수언은 이에 백제가 낸 꾀를 써서 고려를 쳐서 깨뜨렸다. 그 왕이 담을 넘어 도망하자 협수언은 마침내 승세를 타고 왕궁에 들어가 진귀한 보물과 갖가지 재화, 칠직장, 철옥을 모두 얻어 돌아왔다. (어떤 책에는 “550년에 대반협수언련이 백제국과 함께 고려왕 陽香을 비진류도에서 쫒아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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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1.03 日本書紀(720)
반전이자랑군을 신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임나를 멸망시킨 사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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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1.04 日本書紀(720)
천황이 병환으로 자리에 누웠다. 황태자는 밖에 나가 없었으므로 역마로 불러들였다. 누워 있는 내전에 불려 들어가니, 그의 손을 잡고 명하기를 “내 병이 심하니 이후의 일을 너에게 맡긴다. 너는 반드시 신라를 쳐서 임나를 세워 봉하라. 다시 서로 화합하여 옛날과 같이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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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1 ~ 0618 수(隋)
0581 ~ 0618 수(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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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1 수서(636)
그 나라(백제)의 왕 여창이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바치니, 창을 상개부 대방군공 백제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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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0 三國史記(1145) 고려
수나라 문제가 사신을 보내 벼슬을 주어 왕을 상개부의동삼사를 삼고, 요동군공의 작위를 계승하게 하고 옷 한 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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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1.01 三國史記(1145) 고려
사신을 수에 들여보내 은혜에 감사하는 표를 올리고 왕으로 책봉해주기를 청하니, 황제가 이것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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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1.03 三國史記(1145) 고려
고구려왕으로 책봉하고 수레와 의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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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1.05 三國史記(1145) 고려
사신을 들여보내 은혜에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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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2.01 三國史記(1145) 고려
사신을 수나라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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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4 수서(636)
(신라의) 왕위가 김진평에 이른 594년에 사신을 파견하여 방물을 바쳤다. 고조는 진평을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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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7.04 日本書紀(720)
백제왕이 왕자 아좌(阿佐)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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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7.05 수서(636)
高麗遣使貢方物 고려가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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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8 隋의 고려 침공
598년 2월에 영양왕이 말갈 기병 1만 기를 거느리고 요서를 공격하였다. 수나라는 수륙으로 고려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육군은 장마와 전염병으로 시달리고 수군은 풍랑을 만나 배가 많이 파괴되었다. 그러던 중 영양왕이 사죄의 글을 보내오자 수나라는 9월에 군사를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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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8.09 三國史記(1145) 百濟
위덕왕이 수나라가 요동 전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바치고 군도(軍道)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년에 고구려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신하로서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기에 장군들로 하여금 그들을 토벌케 하였는데, 고원의 신하들이 겁을 내며 잘못을 시인하기에 내가 이미 용서하였으니 그들을 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우리 사신을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그 일을 모두 알고 군사를 보내 우리 국경을 침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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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8.09 三國史記(1145) 百濟
● 백제 개로왕은 472년에 북위에 사신을 보내어 고려를 칠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 북위로부터 거절당했지만, 이 사실 때문인지 475년에 고려는 백제를 침공하여 개로왕을 죽이고 한성을 차지했다. 598년에 백제가 고려의 침공을 받은 것도 이와 유사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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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01 三國史記(1145) 고려
사신을 수나라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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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02 日本書紀(720)
신라가 임나와 더불어 서로 공격하자, 천황이 임나를 구원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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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05 三國史記(1145) 百濟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니 법왕의 아들이다.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고 기상이 걸출하였다. 법왕이 왕위에 오른 이듬해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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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日本書紀(720)
경부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수적신을 부장군으로 삼아 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임나를 위하여 신라를 치도록 명하였다. 신라왕이 두려워하여 흰 기를 들고 장군의 깃발 아래에 이르러 서서 多多羅·素奈羅·弗知鬼·委陀·南迦羅·阿羅羅 6城을 떼어 주며 항복을 청하였다. 장군들이 신라로부터 이르자 신라가 또 임나를 침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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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08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을 포위하였다. 신라왕 진평이 정예 기병 수천 명을 보내 항전하자 우리 군사가 불리하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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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0603 왜, 新羅 정벌 시도
왜는 신라를 정벌하기로 결정하고 내목황자에게 2만 5천의 군사를 주었다. 내목황자는 축자로 건너가 정벌을 준비하다 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왜는 다시 내목황자의 형 당마황자에게 정벌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당마황자도 가던 도중 파마에서 부인이 죽자 되돌아 왔다. 이로써 신라 정벌은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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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08 고려, 新羅 북한산성 공격
신라의 북한산은 지금의 아차산이다. 553년에 신라가 차지했었는데 이때 고려가 되찾으려 시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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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三國史記(1145) 고려
영양왕이 번방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으므로 황제가 토벌해올까 두려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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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수서(636)
왜왕 다리사북호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아뢰길 "듣자오니 바다 서쪽 보살천자께서 불법을 다시 일으키신다 하니 사신을 보내 조배드립니다. 아울러 중 수십 명이 여기 와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 국서에는 '해 뜨는 곳 천자가 해 지는 곳 천자에게 글을 보내오. 별일 없으신가?' 어쩌고 저쩌고 하였다. 황제가 글을 보고 언짢아 홍려경에게 "오랑캐가 보낸 글이 무례하구나. 다시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게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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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03 수서(636)
璋遣使者燕文進朝貢 其年 又遣使者王孝鄰入獻 請討高麗 煬帝許之 令覘高麗動靜 然璋內與高麗通和 挾詐以窺中國 장(무왕)이 사자 연문진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그해에 또 사자 왕효린을 보내어 공물을 바치면서 고려의 토벌을 청하였다. 양제는 이를 허락하고, 고려의 동정을 엿보게 하였다. 그러나 장은 안으로는 고려와 통화를 하면서 간사한 마음을 가지고 중국을 엿본 것이었다. ● 백제는 전후로 계속 고려와 충돌하고 있었으므로 고려와 화통했다는 추정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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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05 三國史記(1145) 고려
군대를 보내 백제 송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옮겨서 석두성을 습격하여 남녀 3천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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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02 三國史記(1145) 고려
장수에게 명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사로잡은 포로가 8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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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03 三國史記(1145) 百濟
수나라 문림랑 배청이 왜국에 사신으로 가면서 우리 나라 남쪽 길을 통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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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03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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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04 三國史記(1145) 고려
신라 우명산성을 쳐서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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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02 수서(636)
百濟遣使朝貢 백제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수나라 양제가 고려 정벌 조서를 내리기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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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02 수서(636)
詔曰 武有七德 先之以安民 政有六本 興之以教義 高麗高元 虧失藩禮 將欲問罪遼左 恢宣勝略 雖懷伐國 仍事省方 今往涿郡 巡撫民俗 其河北諸郡及山西 山東年九十已上者 版授太守 八十者 授縣令 ※수나라 양제가 내린 고려 정벌 조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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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02 수서(636)
帝親征高麗 璋使其臣國智牟來請軍期 帝大悅 厚加賞錫 遣尙書起部郎席律詣百濟 與相知 황제가 몸소 고려를 정벌하려 하자, 장(무왕)이 그의 신하 국지모를 보내와 출병의 시기를 물었다.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상을 후하게 내리고, 상서기부랑 석률을 백제에 보내어 서로 알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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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04 三國史記(1145) 고려
행차가 탁군의 임삭궁에 이르니, 사방의 병력이 모두 탁군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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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0614 隋의 고려 침공
1520#11718 SHARED
 
0612 수서(636)
六軍渡遼 璋亦嚴兵於境 聲言助軍 實持兩端 尋與新羅有隙 每相戰爭 6군이 요수를 건너니, 장도 군사를 국경에 엄중히 배치하고, 수나라 군을 돕는다고 공공연히 말만 하면서 실제로는 양단책을 쓰고 있었다. 얼마 안되어 신라와 틈이 생겨 자주 전쟁을 하였다. ▐ 백제의 군사적 활동이 수나라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을 것은 짐작이 되나 이 시기에 백제가 양다리를 걸친 흔적은 없다. 수서를 편찬한 당나라의 편견이 들어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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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01 三國史記(1145) 고려
황제가 조서를 내려 천하의 병력을 징발하여 탁군에 집결시키고 백성들을 모집하여 효과를 삼고, 요동 옛 성을 수리하여 군량을 저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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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01 三國史記(1145) 고려
황제가 가까이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기를 “고구려라는 작은 오랑캐가 상국을 업신여긴다. 지금 바다를 공략하고 산을 옮길 일이라도 능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하물며 이 오랑캐쯤이야?”라 하고, 다시 정벌할 것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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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04 三國史記(1145) 고려
황제가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요동성 을 공격하였는데 편의에 따라 일을 처리하도록 허락하였다. ... 마침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글이 도착했다. 황제가 크게 두려워하고, 또 고관의 자손들이 모두 양현감의 처소에 있음을 듣고 더욱 걱정하였다. 병부시랑 곡사정이 평소에 양현감과 친하였으므로 속으로 불안하여 도망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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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04 三國史記(1145) 고려
황제가 밤에 비밀리에 여러 장수를 불러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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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02 三國史記(1145) 고려
황제가 전체 신료에게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정벌할 일을 의논하게 하였으나 여러 날이 지나도록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조서를 내려 천하의 병사들을 다시 징발하여 여러 길로 함께 진군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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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07 三國史記(1145) 고려
왕이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 항복을 청하고 그에 따라 곡사정을 돌려보내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고 사지절을 보내 내호아를 소환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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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07 三國史記(1145) 고려
황제가 회원진에서 군대를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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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10 三國史記(1145) 고려
황제가 서경에 돌아와서 우리 사신과 곡사정을 대묘에 알리고, 곧 왕을 불러 입조하게 하였으나 왕이 끝내 따르지 않았다. 장수들에게 명하여 장비를 엄하게 하고 다시 후에 군사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였으나 마침내 실현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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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09 三國史記(1145) 고려
영류왕(榮留王)은 이름이 건무(建武)이고 [성(成)이라고도 한다] 영양왕의 배다른 동생이다. 영양왕이 재위 29년에 서거하였으므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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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0907 당(唐)
0618~0907 당(唐)
수나라 양제는 술에 취해 듣지 않다가, 618년 이에 불만을 품은 근위군단에 의해 살해되었다. 양제의 죽음을 들은 이연은 양유로부터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건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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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日本書紀(720)
이 해 신라가 임나를 공격하여 임나가 신라에 복속되었다. ... 그 해에 대덕 境部臣雄摩侶·소덕 中臣連國을 대장군으로 하고, 소덕 河邊臣禰受·소덕 物部依網連乙等·소덕 波多臣廣庭·소덕 近江脚身臣飯蓋·소덕 平群臣宇志·소덕 大伴連·소덕 大宅臣軍을 부장군으로 하여, 수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신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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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01 三國史記(1145) 百濟
당나라에 대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고조가 그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사신을 보내 왕을 대방군왕 백제왕으로 책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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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07 三國史記(1145) 百濟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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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10 三國史記(1145) 百濟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과하마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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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04.03 日本書紀(720)
백제의 승려 관륵이 표를 올려, “대저 불법은 서국(인도)로부터 漢(중국)에 이르러 3백 년이 지나 백제국에 전해져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백 년이 되었을 때에, 우리 왕은 일본천황이 지혜가 깊고 사리에 밝다는 것을 듣고 불상과 경전을 바쳤는데 아직 백 년이 못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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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11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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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三國史記(1145) 百濟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명광개라는 갑옷을 바치면서 고구려가 길을 가로막고 상국을 입조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호소하였다. 고조는 산기상시 주자사에게 조서를 보내 우리와 고구려가 서로의 원한을 잊으라고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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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12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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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08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조카 복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태종이 백제와 신라가 대대로 원수를 맺어 서로 자주 침공한다고 하면서 왕에게 조서를 보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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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09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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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631.02 三國史記(1145) 고려
영류왕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은 부여성에서 동남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천여 리였다. 모두 16년만에 공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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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1.03 日本書紀(720)
백제왕 의자가 왕자 풍장(豐章)을 들여 보내어 볼모로 삼았다. ▐ 의자왕은 641년에 왕이 되었으므로 이 기록은 연도를 잘못 표기했거나 무왕을 의자왕으로 잘못 표기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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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1.09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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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2.01 三國史記(1145) 百濟
맏아들 의자를 태자로 책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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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2.12 三國史記(1145) 百濟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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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수서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並敬仰之恆通使往來 신라와 백제는 모두 왜(倭)를 대국으로 여기며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공경하고 우러러보며 항상 사신을 통하고 왕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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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02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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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7.12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철제 갑옷과 조각한 도끼를 바쳤다. 태종이 후히 위로하고 비단 도포와 채색비단 3천 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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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0.02 三國史記(1145) 百濟
자제들을 당나라에 보내 국학에 입학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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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0.10 三國史記(1145) 百濟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철갑옷과 조각한 도끼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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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1.03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서 용감하고 대담하며 결단성이 있었다. 무왕 재위 33년에 태자가 되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라고 불렸다. 무왕이 사망하자 태자가 왕위를 이었다. 당나라 태종이 사부랑중 정문표를 보내 왕을 주국 대방군왕 백제왕으로 책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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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1.03 舊唐書(945)
璋卒 其子義慈遣使奉表告哀 太宗素服哭之 贈光祿大夫 賻物二百段 遣使册命義慈爲柱國 封帶方郡王百濟王 장(무왕)이 죽으니 그의 아들 의자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슬픔을 알렸다. 태종은 소복 차림으로 곡을 하고 광록대부를 추증하였으며 부조 2백 단을 내렸다. 사신을 보내어 의자를 주국으로 책명하고 대방군왕 백제왕에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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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1.08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아울러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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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1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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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2 日本書紀(720)
아담산배련비라부, 초벽실사반금, 왜한서직현을 백제 조문사의 처소에 보내어 그 쪽 소식을 물었다. 조문사가 대답하기를 “백제국왕이 저희들에게 ‘새상(塞上)은 항상 나쁜 짓을 하므로 돌아오는 사신에 딸려 보내주기를 청하더라도 일본 조정에서 허락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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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2 日本書紀(720)
백제 조문사의 종자 등이 “지난 해 11월 대좌평 지적이 죽었습니다. 또 백제 사신이 곤륜(崑崙)의 사신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고, 또 아우 왕자의 아들 교기(翹岐)와 누이동생 4명, 내좌평 기미 그리고 이름높은 사람 40여 명이 섬으로 추방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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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7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침공하여 미후성 등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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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7~0644.01 구당서(945) 百濟
義慈興兵伐新羅四十餘城 又發兵以守之 與高麗和親通好 謀欲取黨項城以絶新羅入朝之路 新羅遣使告急請救 太宗遣司農丞相里玄獎齎書告諭兩蕃 示以禍福 의자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군대를 보내어 지키는 한편, 고려와 화친을 맺어 통호하고, 당항성을 탈취하여 신라의 조공길을 끊고자 하였다. 이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을 청하니, 태종은 사농승 상리현장에게 조서를 보내어 화복으로 양번을 설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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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8 百濟, 新羅 대야성 침공
의자왕이 윤충으로 하여금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성주 품석이 처자와 함께 나와 항복하자 윤충은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 서울에 전달하였다. 품석의 아내는 김춘추의 딸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신라를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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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11 三國史記(1145) 고려
보장왕은 이름이 장(臧)이고, 나라를 잃은 까닭에 시호가 없다. 건무왕의 동생 대양왕의 아들이다. 건무왕(영류왕) 재위 25년에 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장을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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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11 신당서(1060)
여러 대신이 건무(영류왕)와 상의하여 죽이기로 하였다. 개소문이 알아차리고 제부의 병사들을 불러 모아 거짓으로 크게 열병을 한다고 말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신들의 참석을 청하였다. 손님이 이르자, 다 죽여버리니 무려 백여명이나 되었다. 또 왕궁으로 달려 들어가 건무를 죽여서 시체를 찢어 도랑에 던져 버렸다. 이어 건무 아우의 아들인 장(藏 보장왕)을 세워 왕으로 삼고 자신은 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마음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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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11↝ 신당서(1060)
태종은 건무(영류왕)가 부하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사자에게 부절을 주어 보내어 조문하게 하였다. 어떤 이가 태종에게 토벌 하자고 권유하였으나, 태종은 초상을 기회로 하여 남을 치고 싶지 않았다. 장(藏 보장왕)을 요동군왕 고려왕에 배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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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11↝ 김춘추의 고려 방문
김춘추는 고려의 힘을 빌려 딸의 원수를 갚고자 고려로 갔다. 그러나 고려가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달라며 김춘추를 가두자 속임수를 써서 도망나왔다. 이로써 신라에 대한 연개소문 고려의 입장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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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 日本書紀(720)
이 해 백제 태자 여풍(餘豐)이 벌통 4개를 가져와 삼륜산에 놓아 길렀으나 끝내 번식시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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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1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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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6 三國史記(1145) 고려
당 태종이 말하기를 “개소문이 그 임금을 죽이고 국정을 제멋대로 하니 진실로 참을 수 없다. 지금의 병력으로도 이를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백성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내가 거란과 말갈로 하여금 그들을 길들이려 하는데, 어떠한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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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6 신당서(1060)
장(藏 보장왕)을 요동군왕 고려왕(遼東郡王 高麗王)의 벼슬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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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고려와 百濟의 연합
0643.09 고려와 百濟의 연합
● 641년 3월에 백제의 무왕이 죽자 의자왕이 즉위하였는데, 그는 신라와 전쟁을 벌여 642년 8월에 대야성을 빼앗았다. 그 과정에서 신라 김춘추의 딸이 살해되었다. 고려에서는 642년 11월에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웠다. 이 일은 당나라를 크게 분노시켰다. 김춘추는 고려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가 오히려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고 도망쳐 나왔다. 643년 마침내 백제와 고려가 손을 잡아 동북아는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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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고려와 百濟의 연합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려와 백제가 저희 나라를 침범하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십 개의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군대를 연합하여 기필코 그것을 빼앗고자 장차 이번 9월에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이 사신을 보내 고려에 말하기를 “너희와 백제는 즉시 군사를 거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일 또다시 그를 공격한다면 내년에 반드시 군사를 내어서 그대 나라를 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1520#11731 SHARED
 
0643.11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이 고구려와 화친을 맺었다. 그 목적은 신라의 당항성을 빼앗아 그들이 당나라로 조공하러 가는 길을 막는 것이었다. 왕은 마침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신라왕 덕만(선덕여왕)이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니 왕이 이 사실을 듣고 군사를 철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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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4.01 三國史記(1145) 百濟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태종이 사농승 상리현장을 보내 두 나라를 타이르자 왕이 표문을 올려 사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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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4.09 三國史記(1145) 百濟
신라 장군 김유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입하여 7성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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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4.09 당나라의 전쟁 결정
고려로부터 돌아온 사신이 고려가 당나라의 자제 요청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당나라는 전쟁을 결심하게 된다.
1520#11733 SHARED
 
0644_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의 아들 융(隆)을 태자로 삼았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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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 唐의 고려 침공
0645 구당서(945)0645 구당서(945)0645.05 구당서(945)
 
0645 구당서(945)
及太宗親征高麗 百濟懷二 乘虛襲破新羅十城 태종이 친히 고려를 정벌하자 백제는 두마음을 품고, 그 기회를 틈타 신라의 10성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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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05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은 태종이 직접 고구려를 치면서 신라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 틈을 타서 신라를 습격하여 7성을 빼앗으니, 신라에서 장군 유신을 보내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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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07 日本書紀(720)
고려·백제·신라가 함께 사신을 보내 조(調)를 바쳤다. 백제의 조사(調使)가 임나의 사신을 겸하여 임나의 조를 바쳤다. "과거 우리의 먼 조상의 시대에 백제국은 내관가가 되었으니, 비유하자면 세 개로 묶은 그물과 같았다. 중간에 임나국을 백제에 속하도록 주었고, 후에 삼륜률외군동인을 보내 임나국의 경계를 살피게 하였다. 그러므로 백제왕은 칙명에 따라 그 경계를 다 보여주었으나, 조(調)에 빼놓은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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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6.05 三國史記(1145) 고려
보장왕과 막리지 개금(蓋金 연개소문)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아울러 미녀 두 명을 바쳤다. 황제(태종)가 이들을 돌려보내며 사신에게 말하였다. “여색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나 그들이 친척을 떠나 마음 상하는 것이 딱해 나는 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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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7.10 三國史記(1145) 百濟
장군 의직이 보병과 기병 3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무산성 아래에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어 감물과 동잠 두 성을 공격하였다. 신라 장군 유신이 직접 군사들을 격려하며 결사적으로 싸워서 아군을 크게 격파하니 의직이 단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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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7_ 日本書紀(720)
신라가 상신 대아찬 김춘추 등을 보내고 박사 소덕 高向黑麻呂·소산중 中臣連押熊을 보내 와서, 공작 1쌍과 鸚鵡 1쌍을 바쳤다. 그리고 춘추를 인질로 삼았다. 춘추는 용모가 아름답고 담소를 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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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03 三國史記(1145) 百濟
의직이 신라 서부 변경의 요차 등 10여 성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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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04 三國史記(1145) 百濟
옥문곡으로 진군하니, 신라 장군 김유신이 이들과 두 번 전투하여 크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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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_ 三國史記(1145)
朕今伐髙麗 非有他故 憐你新羅攝乎兩國 每被侵陵 靡有寧歳 山川土地非我所貪 玉帛子女是我所有 我平定兩國 平壤已南百濟土地 並乞你新羅 永爲安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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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_ 三國史記(1145)
내가 지금 고구려를 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희 신라가 두 나라 사이에 끌림을 당해서 매번 침략을 당하여 편안할 때가 없음을 가엽게 여기기 때문이다. 산천과 토지는 내가 탐내는 바가 아니고 보배와 사람들은 나도 가지고 있다. 내가 두 나라를 바로 잡으면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은 모두 너희 신라에게 주어 길이 편안하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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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_ 三國史記(1145)
● 이 약속을 한 당태종은 649년에 죽었다. 뒤를 이은 당고종은 660년에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뒤, 백제는 물론 신라까지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려 하였다. 당태종이 한 약속을 몰랐는지, 알고도 욕심을 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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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_ 三國史記(1145) 新羅
이찬 김춘추와 그의 아들 문왕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의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의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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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_ 三國史記(1145) 김유신 열전
“저는 나라의 위엄과 신령함에 의지하여 두 차례 백제와 크게 싸워 20성을 빼앗고 3만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으며, 또한 품석공과 그 부인의 뼈를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하늘이 주신 다행이 이른 것이지 제가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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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9.08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이 좌장 은상을 보내 정예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석토성 등 일곱 성을 공격하여 빼앗게 하였다. 신라 장수 유신, 진춘, 천존, 죽지 등이 이를 맞아 공격하였으나 불리해지자,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도살성 아래 진을 치고 재차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패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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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1 日本書紀(720)
이 해 신라의 공조사 지만사찬 등이 당나라의 옷을 입고 축자에 이르렀다. 조정에서 함부로 풍속을 바꾼 것을 싫어하여 꾸짖고 돌려 보냈다. 그 때 거세대신이 “지금 신라를 정벌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 정벌하는 상황은 모든 힘을 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난파진으로부터 축자해 가운데까지 서로 이어지도록 배를 가득 띄우고 신라를 불러 그 죄를 묻는다면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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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1 구당서(945)
(백제) 사신이 돌아갈 적에 의자에게 새서를 내려 이르기를, "왕은 빼앗은 신라의 성을 모두 본국에 돌려 주시오. 신라도 사로 잡아간 백제의 포로를 모두 왕에게 돌려 보내야 할 것이오. 왕이 만약 나의 처분에 따르지 않는다면 짐은 이미 법민이 청하는대로 왕과 싸우게 놓아 둘 것이오. 또한 고려와 약속하여 멀리서 서로 돕지 못하게 할 것이오. 고려가 만약 이 명을 받들지 않는다면 즉시 글단의 제번을 시켜 요택을 건너 쳐들어 가게 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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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2.01 三國史記(1145) 百濟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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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3.08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이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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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4.03 三國史記(1145) 新羅
태종무열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이고 진지왕의 아들인 이찬 용춘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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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5 구당서(945)
백제가 고려·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북계를 침입하여 3십여 성을 함락시켰다. 춘추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구원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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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5.02 三國史記(1145) 百濟
태자의 궁을 수리하는데 대단히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하였으며,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건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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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6.03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이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서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좌평 성충이 적극 말렸더니, 왕이 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하려는 자가 없었다. 성충은 옥에서 굶주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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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7 日本書紀(720)
이 해 사신을 新羅에 보내 “沙門 智達, 間人連御廐, 衣網連稚子 등을 너희 나라 사신에 딸려 唐에 보내려고 한다”고 말하였는데, 新羅가 그 말에 따라 (그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沙門 智達 등이 돌아왔다. 西海使 小花下 阿曇連頰垂, 小山下 津臣傴僂 傴僂는 우리 말로 俱豆磨(くつま)라 한다 가 百濟로부터 돌아와 駱駝 1마리, 당나귀 2마리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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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7.01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이 서자 41명을 좌평으로 임명하고, 그들에게 각각 식읍을 주었다. ● 의자왕의 친족이 관직과 식읍을 독점하면서 귀족들의 마음이 백제 왕조로부터 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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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 북사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 多珍物 並仰之 恆通使往來 신라와 백제는 모두 왜를 대국으로 여기며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공경하고 우러러보며 항상 사신을 통하고 왕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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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04 三國史記(1145) 新羅
백제가 자주 변경을 침범하므로 무열왕이 장차 치려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군사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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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07 日本書紀(720)
小錦下 坂合部連石布, 大仙下 津守連吉祥이 唐에 사신으로 갔다. 일을 마친 후 칙지로 ‘국가가 내년에 반드시 해동을 정벌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너희들 왜의 사신들은 동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드디어 서경에 숨겨 특별한 곳에 가두어 두었다. 고통을 겪은 지 해가 지났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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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0676 年代記
백제가 망할 때부터 당나라가 평양에 설치했던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길 때까지.
13729 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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