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임나를 병합한 때부터 백제가 망하기 전까지.
›
0562 新羅, 임나 병합
일본서기에는 562년에 신라가 임나관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고 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562년에 가라가 반란을 일으키자 신라가 이를 토벌하였다고만 되어 있다. 임나 10국 중 중심이었던 가라가 신라에 병합됨으로써 임나가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격분한 왜는 군사를 보내어 치리와 거증산으로부터 나아가 신라를 치도록 했으나 임나를 복구하지는 못했다.
1520#658
SHARED
COMMENT
•
0562.08 日本書紀(720)
대장군 대반련 협수언을 보내어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를 치게 하였다. 협수언은 이에 백제가 낸 꾀를 써서 고려를 쳐서 깨뜨렸다. 그 왕이 담을 넘어 도망하자 협수언은 마침내 승세를 타고 왕궁에 들어가 진귀한 보물과 갖가지 재화, 칠직장, 철옥을 모두 얻어 돌아왔다. (어떤 책에는 “550년에 대반협수언련이 백제국과 함께 고려왕 陽香을 비진류도에서 쫒아내었다”고 한다.)
39757
SHARED
COMMENT
•
0571.04 日本書紀(720)
천황이 병환으로 자리에 누웠다. 황태자는 밖에 나가 없었으므로 역마로 불러들였다. 누워 있는 내전에 불려 들어가니, 그의 손을 잡고 명하기를 “내 병이 심하니 이후의 일을 너에게 맡긴다. 너는 반드시 신라를 쳐서 임나를 세워 봉하라. 다시 서로 화합하여 옛날과 같이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35163
SHARED
COMMENT
›
0598 隋의 고려 침공
598년 2월에 영양왕이 말갈 기병 1만 기를 거느리고 요서를 공격하였다. 수나라는 수륙으로 고려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육군은 장마와 전염병으로 시달리고 수군은 풍랑을 만나 배가 많이 파괴되었다. 그러던 중 영양왕이 사죄의 글을 보내오자 수나라는 9월에 군사를 되돌렸다.
1520#3484
SHARED
COMMENT
•
0598.09 三國史記(1145) 百濟
위덕왕이 수나라가 요동 전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바치고 군도(軍道)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년에 고구려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신하로서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기에 장군들로 하여금 그들을 토벌케 하였는데, 고원의 신하들이 겁을 내며 잘못을 시인하기에 내가 이미 용서하였으니 그들을 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우리 사신을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그 일을 모두 알고 군사를 보내 우리 국경을 침략하였다.
35917
SHARED
COMMENT
•
0598.09 三國史記(1145) 百濟
● 백제 개로왕은 472년에 북위에 사신을 보내어 고려를 칠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 북위로부터 거절당했지만, 이 사실 때문인지 475년에 고려는 백제를 침공하여 개로왕을 죽이고 한성을 차지했다. 598년에 백제가 고려의 침공을 받은 것도 이와 유사한 경우다.
11719
SHARED
•
0600¦日本書紀(720)
경부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수적신을 부장군으로 삼아 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임나를 위하여 신라를 치도록 명하였다.
신라왕이 두려워하여 흰 기를 들고 장군의 깃발 아래에 이르러 서서 多多羅·素奈羅·弗知鬼·委陀·南迦羅·阿羅羅 6城을 떼어 주며 항복을 청하였다.
장군들이 신라로부터 이르자 신라가 또 임나를 침략하였다.
7887
SHARED
›
0602~0603 왜, 新羅 정벌 시도
왜는 신라를 정벌하기로 결정하고 내목황자에게 2만 5천의 군사를 주었다. 내목황자는 축자로 건너가 정벌을 준비하다 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왜는 다시 내목황자의 형 당마황자에게 정벌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당마황자도 가던 도중 파마에서 부인이 죽자 되돌아 왔다. 이로써 신라 정벌은 무산되었다.
1520#11720
SHARED
›
0607 수서(636)
왜왕 다리사북호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아뢰길 "듣자오니 바다 서쪽 보살천자께서 불법을 다시 일으키신다 하니 사신을 보내 조배드립니다. 아울러 중 수십 명이 여기 와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 국서에는 '해 뜨는 곳 천자가 해 지는 곳 천자에게 글을 보내오. 별일 없으신가?' 어쩌고 저쩌고 하였다. 황제가 글을 보고 언짢아 홍려경에게 "오랑캐가 보낸 글이 무례하구나. 다시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게 하라." 하였다.
1520#9888
SHARED
•
0607.03 수서(636)
璋遣使者燕文進朝貢 其年 又遣使者王孝鄰入獻 請討高麗 煬帝許之 令覘高麗動靜 然璋內與高麗通和 挾詐以窺中國
장(무왕)이 사자 연문진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그해에 또 사자 왕효린을 보내어 공물을 바치면서 고려의 토벌을 청하였다. 양제는 이를 허락하고, 고려의 동정을 엿보게 하였다. 그러나 장은 안으로는 고려와 통화를 하면서 간사한 마음을 가지고 중국을 엿본 것이었다.
● 백제는 전후로 계속 고려와 충돌하고 있었으므로 고려와 화통했다는 추정은 잘못된 것이다.
11716
SHARED
•
0611.02 수서(636)
詔曰 武有七德 先之以安民 政有六本 興之以教義 高麗高元 虧失藩禮 將欲問罪遼左 恢宣勝略 雖懷伐國 仍事省方 今往涿郡 巡撫民俗 其河北諸郡及山西 山東年九十已上者 版授太守 八十者 授縣令
※수나라 양제가 내린 고려 정벌 조서다.
11713
SHARED
•
0611.02 수서(636)
帝親征高麗 璋使其臣國智牟來請軍期 帝大悅 厚加賞錫 遣尙書起部郎席律詣百濟 與相知
황제가 몸소 고려를 정벌하려 하자, 장(무왕)이 그의 신하 국지모를 보내와 출병의 시기를 물었다.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상을 후하게 내리고, 상서기부랑 석률을 백제에 보내어 서로 알게 하였다.
11715
SHARED
•
0612 수서(636)
六軍渡遼 璋亦嚴兵於境 聲言助軍 實持兩端 尋與新羅有隙 每相戰爭
6군이 요수를 건너니, 장도 군사를 국경에 엄중히 배치하고, 수나라 군을 돕는다고 공공연히 말만 하면서 실제로는 양단책을 쓰고 있었다. 얼마 안되어 신라와 틈이 생겨 자주 전쟁을 하였다.
▐ 백제의 군사적 활동이 수나라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을 것은 짐작이 되나 이 시기에 백제가 양다리를 걸친 흔적은 없다. 수서를 편찬한 당나라의 편견이 들어간 듯하다.
11717
SHARED
•
0613.04 三國史記(1145) 고려
황제가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요동성 을 공격하였는데 편의에 따라 일을 처리하도록 허락하였다. ... 마침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글이 도착했다. 황제가 크게 두려워하고, 또 고관의 자손들이 모두 양현감의 처소에 있음을 듣고 더욱 걱정하였다. 병부시랑 곡사정이 평소에 양현감과 친하였으므로 속으로 불안하여 도망쳐왔다.
35931
SHARED
COMMENT
•
0623 日本書紀(720)
이 해 신라가 임나를 공격하여 임나가 신라에 복속되었다.
...
그 해에 대덕 境部臣雄摩侶·소덕 中臣連國을 대장군으로 하고, 소덕 河邊臣禰受·소덕 物部依網連乙等·소덕 波多臣廣庭·소덕 近江脚身臣飯蓋·소덕 平群臣宇志·소덕 大伴連·소덕 大宅臣軍을 부장군으로 하여, 수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신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41394
SHARED
COMMENT
•
0624.04.03 日本書紀(720)
백제의 승려 관륵이 표를 올려, “대저 불법은 서국(인도)로부터 漢(중국)에 이르러 3백 년이 지나 백제국에 전해져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백 년이 되었을 때에, 우리 왕은 일본천황이 지혜가 깊고 사리에 밝다는 것을 듣고 불상과 경전을 바쳤는데 아직 백 년이 못되었습니다.
11678
SHARED
•
0641.03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서 용감하고 대담하며 결단성이 있었다. 무왕 재위 33년에 태자가 되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라고 불렸다. 무왕이 사망하자 태자가 왕위를 이었다. 당나라 태종이 사부랑중 정문표를 보내 왕을 주국 대방군왕 백제왕으로 책봉하였다.
35734
SHARED
COMMENT
•
0641.03 舊唐書(945)
璋卒 其子義慈遣使奉表告哀 太宗素服哭之 贈光祿大夫 賻物二百段 遣使册命義慈爲柱國 封帶方郡王百濟王
장(무왕)이 죽으니 그의 아들 의자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슬픔을 알렸다. 태종은 소복 차림으로 곡을 하고 광록대부를 추증하였으며 부조 2백 단을 내렸다. 사신을 보내어 의자를 주국으로 책명하고 대방군왕 백제왕에 봉하였다.
11727
SHARED
•
0642.02 日本書紀(720)
아담산배련비라부, 초벽실사반금, 왜한서직현을 백제 조문사의 처소에 보내어 그 쪽 소식을 물었다. 조문사가 대답하기를 “백제국왕이 저희들에게 ‘새상(塞上)은 항상 나쁜 짓을 하므로 돌아오는 사신에 딸려 보내주기를 청하더라도 일본 조정에서 허락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35737
SHARED
COMMENT
•
0642.02 日本書紀(720)
백제 조문사의 종자 등이 “지난 해 11월 대좌평 지적이 죽었습니다. 또 백제 사신이 곤륜(崑崙)의 사신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고, 또 아우 왕자의 아들 교기(翹岐)와 누이동생 4명, 내좌평 기미 그리고 이름높은 사람 40여 명이 섬으로 추방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35736
SHARED
COMMENT
•
0642.07~0644.01 구당서(945) 百濟
義慈興兵伐新羅四十餘城 又發兵以守之 與高麗和親通好 謀欲取黨項城以絶新羅入朝之路 新羅遣使告急請救 太宗遣司農丞相里玄獎齎書告諭兩蕃 示以禍福
의자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군대를 보내어 지키는 한편, 고려와 화친을 맺어 통호하고, 당항성을 탈취하여 신라의 조공길을 끊고자 하였다. 이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을 청하니, 태종은 사농승 상리현장에게 조서를 보내어 화복으로 양번을 설득하였다.
11724
SHARED
›
0642.08 百濟, 新羅 대야성 침공
의자왕이 윤충으로 하여금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성주 품석이 처자와 함께 나와 항복하자 윤충은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 서울에 전달하였다. 품석의 아내는 김춘추의 딸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신라를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다.
1520#9889
SHARED
•
0642.11 신당서(1060)
여러 대신이 건무(영류왕)와 상의하여 죽이기로 하였다. 개소문이 알아차리고 제부의 병사들을 불러 모아 거짓으로 크게 열병을 한다고 말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신들의 참석을 청하였다. 손님이 이르자, 다 죽여버리니 무려 백여명이나 되었다. 또 왕궁으로 달려 들어가 건무를 죽여서 시체를 찢어 도랑에 던져 버렸다. 이어 건무 아우의 아들인 장(藏 보장왕)을 세워 왕으로 삼고 자신은 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마음대로 하였다.
35842
SHARED
COMMENT
•
0642.11↝ 신당서(1060)
태종은 건무(영류왕)가 부하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사자에게 부절을 주어 보내어 조문하게 하였다. 어떤 이가 태종에게 토벌 하자고 권유하였으나, 태종은 초상을 기회로 하여 남을 치고 싶지 않았다.
장(藏 보장왕)을 요동군왕 고려왕에 배수하였다.
35846
SHARED
COMMENT
•
0643.09 고려와 百濟의 연합
● 641년 3월에 백제의 무왕이 죽자 의자왕이 즉위하였는데, 그는 신라와 전쟁을 벌여 642년 8월에 대야성을 빼앗았다. 그 과정에서 신라 김춘추의 딸이 살해되었다. 고려에서는 642년 11월에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웠다. 이 일은 당나라를 크게 분노시켰다. 김춘추는 고려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가 오히려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고 도망쳐 나왔다. 643년 마침내 백제와 고려가 손을 잡아 동북아는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11680
SHARED
›
0643.09 고려와 百濟의 연합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려와 백제가 저희 나라를 침범하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십 개의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군대를 연합하여 기필코 그것을 빼앗고자 장차 이번 9월에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이 사신을 보내 고려에 말하기를 “너희와 백제는 즉시 군사를 거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일 또다시 그를 공격한다면 내년에 반드시 군사를 내어서 그대 나라를 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1520#11731
SHARED
•
0643.11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이 고구려와 화친을 맺었다. 그 목적은 신라의 당항성을 빼앗아 그들이 당나라로 조공하러 가는 길을 막는 것이었다. 왕은 마침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신라왕 덕만(선덕여왕)이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니 왕이 이 사실을 듣고 군사를 철수시켰다.
35735
SHARED
COMMENT
•
0645.07 日本書紀(720)
고려·백제·신라가 함께 사신을 보내 조(調)를 바쳤다. 백제의 조사(調使)가 임나의 사신을 겸하여 임나의 조를 바쳤다.
"과거 우리의 먼 조상의 시대에 백제국은 내관가가 되었으니, 비유하자면 세 개로 묶은 그물과 같았다. 중간에 임나국을 백제에 속하도록 주었고, 후에 삼륜률외군동인을 보내 임나국의 경계를 살피게 하였다. 그러므로 백제왕은 칙명에 따라 그 경계를 다 보여주었으나, 조(調)에 빼놓은 것이 있었다."
41393
SHARED
COMMENT
•
0648_ 三國史記(1145)
내가 지금 고구려를 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희 신라가 두 나라 사이에 끌림을 당해서 매번 침략을 당하여 편안할 때가 없음을 가엽게 여기기 때문이다. 산천과 토지는 내가 탐내는 바가 아니고 보배와 사람들은 나도 가지고 있다. 내가 두 나라를 바로 잡으면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은 모두 너희 신라에게 주어 길이 편안하게 하겠다.
11682
SHARED
•
0648_ 三國史記(1145)
● 이 약속을 한 당태종은 649년에 죽었다. 뒤를 이은 당고종은 660년에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뒤, 백제는 물론 신라까지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려 하였다. 당태종이 한 약속을 몰랐는지, 알고도 욕심을 냈는지 알 수 없다.
11681
SHARED
•
0648_ 三國史記(1145) 新羅
이찬 김춘추와 그의 아들 문왕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의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의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35707
SHARED
COMMENT
•
0649.08 三國史記(1145) 百濟
의자왕이 좌장 은상을 보내 정예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석토성 등 일곱 성을 공격하여 빼앗게 하였다. 신라 장수 유신, 진춘, 천존, 죽지 등이 이를 맞아 공격하였으나 불리해지자,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도살성 아래 진을 치고 재차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패배하였다.
35723
SHARED
COMMENT
•
0651 日本書紀(720)
이 해 신라의 공조사 지만사찬 등이 당나라의 옷을 입고 축자에 이르렀다. 조정에서 함부로 풍속을 바꾼 것을 싫어하여 꾸짖고 돌려 보냈다. 그 때 거세대신이 “지금 신라를 정벌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 정벌하는 상황은 모든 힘을 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난파진으로부터 축자해 가운데까지 서로 이어지도록 배를 가득 띄우고 신라를 불러 그 죄를 묻는다면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청하였다.
41396
SHARED
COMMENT
•
0651 구당서(945)
(백제) 사신이 돌아갈 적에 의자에게 새서를 내려 이르기를, "왕은 빼앗은 신라의 성을 모두 본국에 돌려 주시오. 신라도 사로 잡아간 백제의 포로를 모두 왕에게 돌려 보내야 할 것이오. 왕이 만약 나의 처분에 따르지 않는다면 짐은 이미 법민이 청하는대로 왕과 싸우게 놓아 둘 것이오. 또한 고려와 약속하여 멀리서 서로 돕지 못하게 할 것이오. 고려가 만약 이 명을 받들지 않는다면 즉시 글단의 제번을 시켜 요택을 건너 쳐들어 가게 할 것이오."
41320
SHARED
COMMENT
•
0657 日本書紀(720)
이 해 사신을 新羅에 보내 “沙門 智達, 間人連御廐, 衣網連稚子 등을 너희 나라 사신에 딸려 唐에 보내려고 한다”고 말하였는데, 新羅가 그 말에 따라 (그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沙門 智達 등이 돌아왔다. 西海使 小花下 阿曇連頰垂, 小山下 津臣傴僂 傴僂는 우리 말로 俱豆磨(くつま)라 한다 가 百濟로부터 돌아와 駱駝 1마리, 당나귀 2마리를 바쳤다.
40692
SHARED
COMMENT
•
0659.07 日本書紀(720)
小錦下 坂合部連石布, 大仙下 津守連吉祥이 唐에 사신으로 갔다. 일을 마친 후 칙지로 ‘국가가 내년에 반드시 해동을 정벌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너희들 왜의 사신들은 동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드디어 서경에 숨겨 특별한 곳에 가두어 두었다. 고통을 겪은 지 해가 지났다”고 하였다.
39767
SHARED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