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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la > 0562~0659 ❺ 新羅의 加羅 倂合 |
三韓³=百濟+新羅+髙麗┆任那의 낙동강 서쪽은 新羅가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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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新羅, 임나 병합
일본서기에는 562년에 신라가 임나관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고 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562년에 가라가 반란을 일으키자 신라가 이를 토벌하였다고만 되어 있다. 임나 10국 중 중심이었던 가라가 신라에 병합됨으로써 임나가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격분한 왜는 군사를 보내어 치리와 거증산으로부터 나아가 신라를 치도록 했으나 임나를 복구하지는 못했다.
152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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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8.09 三國史記(1145) 百濟
위덕왕이 수나라가 요동 전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바치고 군도(軍道)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년에 고구려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신하로서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기에 장군들로 하여금 그들을 토벌케 하였는데, 고원의 신하들이 겁을 내며 잘못을 시인하기에 내가 이미 용서하였으니 그들을 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우리 사신을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그 일을 모두 알고 군사를 보내 우리 국경을 침략하였다.
1520#3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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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日本書紀(720)
경부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수적신을 부장군으로 삼아 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임나를 위하여 신라를 치도록 명하였다.
신라왕이 두려워하여 흰 기를 들고 장군의 깃발 아래에 이르러 서서 多多羅·素奈羅·弗知鬼·委陀·南迦羅·阿羅羅 6城을 떼어 주며 항복을 청하였다.
장군들이 신라로부터 이르자 신라가 또 임나를 침략하였다.
1520#7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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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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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수서(636)
왜왕 다리사북호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아뢰길 "듣자오니 바다 서쪽 보살천자께서 불법을 다시 일으키신다 하니 사신을 보내 조배드립니다. 아울러 중 수십 명이 여기 와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 국서에는 '해 뜨는 곳 천자가 해 지는 곳 천자에게 글을 보내오. 별일 없으신가?' 어쩌고 저쩌고 하였다. 황제가 글을 보고 언짢아 홍려경에게 "오랑캐가 보낸 글이 무례하구나. 다시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게 하라." 하였다.
1520#9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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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03 수서(636)
璋遣使者燕文進朝貢 其年 又遣使者王孝鄰入獻 請討高麗 煬帝許之 令覘高麗動靜 然璋內與高麗通和 挾詐以窺中國
장(무왕)이 사자 연문진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그해에 또 사자 왕효린을 보내어 공물을 바치면서 고려의 토벌을 청하였다. 양제는 이를 허락하고, 고려의 동정을 엿보게 하였다. 그러나 장은 안으로는 고려와 통화를 하면서 간사한 마음을 가지고 중국을 엿본 것이었다.
● 백제는 전후로 계속 고려와 충돌하고 있었으므로 고려와 화통했다는 추정은 잘못된 것이다.
1520#1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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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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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 수서(636)
六軍渡遼 璋亦嚴兵於境 聲言助軍 實持兩端 尋與新羅有隙 每相戰爭
6군이 요수를 건너니, 장도 군사를 국경에 엄중히 배치하고, 수나라 군을 돕는다고 공공연히 말만 하면서 실제로는 양단책을 쓰고 있었다. 얼마 안되어 신라와 틈이 생겨 자주 전쟁을 하였다.
▐ 백제의 군사적 활동이 수나라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을 것은 짐작이 되나 이 시기에 백제가 양다리를 걸친 흔적은 없다. 수서를 편찬한 당나라의 편견이 들어간 듯하다.
1520#1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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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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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07~0644.01 구당서(945) 百濟
義慈興兵伐新羅四十餘城 又發兵以守之 與高麗和親通好 謀欲取黨項城以絶新羅入朝之路 新羅遣使告急請救 太宗遣司農丞相里玄獎齎書告諭兩蕃 示以禍福
의자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군대를 보내어 지키는 한편, 고려와 화친을 맺어 통호하고, 당항성을 탈취하여 신라의 조공길을 끊고자 하였다. 이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을 청하니, 태종은 사농승 상리현장에게 조서를 보내어 화복으로 양번을 설득하였다.
1520#1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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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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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2.11 신당서(1060)
여러 대신이 건무(영류왕)와 상의하여 죽이기로 하였다. 개소문이 알아차리고 제부의 병사들을 불러 모아 거짓으로 크게 열병을 한다고 말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신들의 참석을 청하였다. 손님이 이르자, 다 죽여버리니 무려 백여명이나 되었다. 또 왕궁으로 달려 들어가 건무를 죽여서 시체를 찢어 도랑에 던져 버렸다. 이어 건무 아우의 아들인 장(藏 보장왕)을 세워 왕으로 삼고 자신은 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마음대로 하였다.
1520#3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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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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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고려와 百濟의 연합
● 641년 3월에 백제의 무왕이 죽자 의자왕이 즉위하였는데, 그는 신라와 전쟁을 벌여 642년 8월에 대야성을 빼앗았다. 그 과정에서 신라 김춘추의 딸이 살해되었다. 고려에서는 642년 11월에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웠다. 이 일은 당나라를 크게 분노시켰다. 김춘추는 고려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가 오히려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고 도망쳐 나왔다. 643년 마침내 백제와 고려가 손을 잡아 동북아는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1520#1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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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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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3.09 고려와 百濟의 연합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려와 백제가 저희 나라를 침범하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십 개의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군대를 연합하여 기필코 그것을 빼앗고자 장차 이번 9월에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이 사신을 보내 고려에 말하기를 “너희와 백제는 즉시 군사를 거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일 또다시 그를 공격한다면 내년에 반드시 군사를 내어서 그대 나라를 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1520#1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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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07 日本書紀(720)
고려·백제·신라가 함께 사신을 보내 조(調)를 바쳤다. 백제의 조사(調使)가 임나의 사신을 겸하여 임나의 조를 바쳤다.
"과거 우리의 먼 조상의 시대에 백제국은 내관가가 되었으니, 비유하자면 세 개로 묶은 그물과 같았다. 중간에 임나국을 백제에 속하도록 주었고, 후에 삼륜률외군동인을 보내 임나국의 경계를 살피게 하였다. 그러므로 백제왕은 칙명에 따라 그 경계를 다 보여주었으나, 조(調)에 빼놓은 것이 있었다."
1520#4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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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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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_ 三國史記(1145)
내가 지금 고구려를 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희 신라가 두 나라 사이에 끌림을 당해서 매번 침략을 당하여 편안할 때가 없음을 가엽게 여기기 때문이다. 산천과 토지는 내가 탐내는 바가 아니고 보배와 사람들은 나도 가지고 있다. 내가 두 나라를 바로 잡으면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은 모두 너희 신라에게 주어 길이 편안하게 하겠다.
1520#1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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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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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1 日本書紀(720)
이 해 신라의 공조사 지만사찬 등이 당나라의 옷을 입고 축자에 이르렀다. 조정에서 함부로 풍속을 바꾼 것을 싫어하여 꾸짖고 돌려 보냈다. 그 때 거세대신이 “지금 신라를 정벌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 정벌하는 상황은 모든 힘을 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난파진으로부터 축자해 가운데까지 서로 이어지도록 배를 가득 띄우고 신라를 불러 그 죄를 묻는다면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청하였다.
1520#4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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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1 구당서(945)
(백제) 사신이 돌아갈 적에 의자에게 새서를 내려 이르기를, "왕은 빼앗은 신라의 성을 모두 본국에 돌려 주시오. 신라도 사로 잡아간 백제의 포로를 모두 왕에게 돌려 보내야 할 것이오. 왕이 만약 나의 처분에 따르지 않는다면 짐은 이미 법민이 청하는대로 왕과 싸우게 놓아 둘 것이오. 또한 고려와 약속하여 멀리서 서로 돕지 못하게 할 것이오. 고려가 만약 이 명을 받들지 않는다면 즉시 글단의 제번을 시켜 요택을 건너 쳐들어 가게 할 것이오."
1520#4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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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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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7 日本書紀(720)
이 해 사신을 新羅에 보내 “沙門 智達, 間人連御廐, 衣網連稚子 등을 너희 나라 사신에 딸려 唐에 보내려고 한다”고 말하였는데, 新羅가 그 말에 따라 (그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沙門 智達 등이 돌아왔다. 西海使 小花下 阿曇連頰垂, 小山下 津臣傴僂 傴僂는 우리 말로 俱豆磨(くつま)라 한다 가 百濟로부터 돌아와 駱駝 1마리, 당나귀 2마리를 바쳤다.
1520#4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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