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遼黑史 > 0916~1125 遼 > 0918 ●東女眞

黑水는 장백산 동북쪽에 있었다. 이곳에는 靺鞨 이외의 종족은 없었던 듯하며 따라서 黑水人은 黑水靺鞨과 같은 뜻이다. 靺鞨은 女眞이라고도 했는데 장백산 일대의 산악 지형에 의해 동과 서로 갈려 있었다. 따라서 黑水靺鞨은 곧 東女眞이다. 왕고는 이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東蕃이라고도 불렀다. 東女眞이 왕고와 접촉하는 창구는 和州館이었다.
 
0918.08 高麗史(1451)
黑水蕃 鶻巖城 윤선은 염주 사람이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용맹하였고, 군사를 지휘하는 것을 잘했다. 과거에 궁예가 사람 죽이는 데 만족하지 못하자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하였고, 마침내 그의 족당을 이끌고 북쪽 변방으로 달아났다. 2,000여 명의 무리를 모아 골암성에 주둔하여 흑수번의 무리들을 불러 모았고, 시간이 흐르자 변방 군들에 해를 끼쳤다. 태조가 즉위하자 무리를 이끌고 와서 귀부하여 북쪽 변방이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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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08 高麗史(1451)
鶻岩城帥 삭방의 골암성수 윤선이 귀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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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03 高麗史(1451)
北狄 北蕃 鶻岩鎭 태조는 북계의 골암진이 자주 북적의 침입을 받자 명하여 가도록 하니, 유금필은 그날 바로 개정군 3,000명을 거느리고 떠났다. 골암진에 이르러서 東山에 큰 성을 쌓아 웅거하였는데, 북번의 추장 300여 명을 불러 모아 술과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놓고 잔치를 열고 그들이 취한 틈을 타서 위엄을 갖추고 협박하니 추장들이 모두 복종하였다. 이 일이 있고나서 북방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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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02 高麗史(1451)
達姑狄 登州 달고적 171명이 신라를 공격하러 가는데, 길이 등주를 통과하니 장군 견권이 맞아 싸워 크게 패배시켜 말 한 필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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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02 高麗史(1451)
黑水 高子羅 흑수의 추장 고자라가 170인을 거느리고 내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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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04 高麗史(1451)
黑水 阿於閒 흑수의 아어간이 200인을 거느리고 내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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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6 高麗史(1451)
黑水 達姑 대상 유금필과 원윤인 관무·관헌 등에게 흑수·달고·철륵(鐵勒) 등 변방의 정예 기병 9천 5백 명을 지휘하게 하였다. ▐ 921년에 達姑狄 171명이 신라를 치기위해 登州를 지나려던 적이 있었다. 鐵勒은 발해의 鐵利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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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6 골암은 흑수와 접하는 곳이었다
0936 골암은 흑수와 접하는 곳이었다
○ 궁예에게서 떨어져나간 윤선은 2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골암성에 주둔하며 흑수번의 무리를 불러 궁예의 변방 군들에 해를 끼치다 918년에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 920년 골암진이 북적의 침략을 당하자 왕건은 유금필로 하여금 개정군 3천 명을 이끌고 가게 하였다. 유금필은 동산에 큰 성을 쌓고 북번의 추장 300명을 초대하여 복종을 받아냈다. ○ 936년 왕건은 유금필에게 흑수·달고·철륵 등 변방의 정예 기병 9천 5백 명을 지휘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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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8.09 高麗史(1451)
東女眞 大匡 蘇無盖 동여진에서 대광 소무개 등을 보내 말 700필과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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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高麗史(1451)
東女眞 登州 동여진이 등주를 침략하여 주진의 부락 30여 곳을 불태우자 장수를 보내 그들을 막았다. ▐ 登州는 921년에 達姑狄 171명이 신라를 치기위해 지나가려던 곳이다. 이로써 達姑狄은 東女眞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936년에 왕건은 유금필로 하여금 黑水·達姑·鐵勒의 기병을 지휘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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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등주는 흑수를 막는 곳이었다
1005 등주는 흑수를 막는 곳이었다
○ 921년에 달고적 171명이 신라를 침공하러 가다 등주에서 견권에게 패해 말 한 필도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 1005년에 동여진이 등주를 침략하여 주진의 부락 30여 곳을 불태우자 장수를 보내 그들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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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5 高麗史(1451)
東女眞 女眞 和州館 하공진과 유종을 먼 섬으로 유배보냈다. 하공진이 일찍이 동여진을 공격하여 패배를 당하자 유종은 그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였는데, 마침 여진족 95인이 내조하여 화주관에 도착하자 유종이 모두 죽였으므로 함께 연좌되어 유배되었다. 여진족이 거란에 참소하자 거란주가 군신에게 말하기를, “고려의 강조가 임금을 시해한 것은 대역죄이므로 군사를 내어 죄를 묻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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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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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5 高麗史(1451)
▐ 왕고의 실력자 강조는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세웠는데 나중에 목종을 살해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 해에 요나라의 침공을 받았다. 이 기록은 요나라의 침공에 여진의 호소도 한몫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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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05 高麗史(1451)
東北女眞 酋長 鉏乙豆 동북여진의 추장 조을두가 무리 70인을 인솔하고 와서 토산물을 바쳤으므로 각각 의복과 은그릇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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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08 高麗史(1451)
東女眞 동여진의 배 1백여 척이 경주를 침략하였다. ▐ 921년에 達姑狄 171명이 신라를 치기위해 登州를 지나려던 적이 있었고 1005년에는 東女眞이 登州를 침략하여 주진의 부락 30여 곳을 불태운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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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02 高麗史(1451)
女眞 酋長 麻尸底 여진의 추장 마시저가 30개 성씨 부락의 자제를 인솔하고 와서 토종말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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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02 高麗史(1451)
30개 성씨는 아간돈(阿干頓), 니홀(尼忽), 니방고(尼方固), 문질로(門質老), 불차리(弗遮利), 거질아(居質阿), 점한일(黏閒逸), 니질아(尼質阿), 야라다(耶邏多), 요게라(邀揭囉) 요열일(要悅逸), 울언(鬱唁), 오림대(烏臨大), 몽골예(蒙骨拽), 훈저헌(暈底憲), 도태(徒怠), 야올일(耶兀逸), 나을신(拏乙信), 나을안(拏乙晏), 동골일(冬骨逸), 지도일(支闍逸), 어슬은(魚瑟殷), 마을일(麽乙逸), 도몰니(塗沒尼), 운돌리(云突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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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02 高麗史(1451)
, 압한이(押閒伊), 뇌일이(惱一伊), 배문이(排門異), 불서일(佛徐逸), 만윤이(滿尹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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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05 高麗史(1451)
東女眞 동여진이 청하현·영일현·장기현을 침략하였다. 도부서의 문연·강민첨·이인택·조자기를 보내 주군의 군사를 독려하고 공격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 1011년에도 東女眞의 배 1백여 척이 경주를 침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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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10 高麗史(1451)
女眞 毛逸羅 鉏乙豆 여진의 모일라와 조을두가 부락 30개 성씨를 인솔하여 화주에 와서 화맹을 간청하므로 이를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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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10 高麗史(1451)
▐ 1011년에 東北女眞의 추장 鉏乙豆가 무리 70인을 인솔하고 와서 토산물을 바친 바 있고 1912년에는 女眞 추장 麻尸底가 30개 성씨 부락의 자제를 인솔하고 와서 토종말을 바친 바 있다. 이로써 東北女眞의 鉏乙豆, 麻尸底 그리고 毛逸羅는 30개 성씨 부락이라는 동일 세력에 소속된 추장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011년과 1012년에 경주 일대를 침략했던 東女眞과는 다른 갈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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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02 高麗史(1451)
女眞 萬豆 철리국주 나사가 여진의 만두를 사신으로 보내 말과 담비의 초서피와 날다람쥐의 청서피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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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03 高麗史(1451)
女眞 狗頭浦 여진이 배 20척으로 구두포를 노략하자 진명도도부서가 격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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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03 高麗史(1451)
▐ 1011년에 東女眞의 배 1백여 척이 경주를 침략한 바 있고 1012년에도 東女眞이 청하현·영일현·장기현을 침략한 바 있다. 이 당시 왕고에 조공을 왔던 30개 성씨 女眞 부락과는 다른 세력으로 보이며 삼국지(289)에 배를 타고 다니면서 노략질을 잘 해서 이웃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하는 挹婁를 연상시킨다. 발해는 옛 挹婁 지역에 定理府를 설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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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高麗史(1451)
東女眞 盖多弗 동여진의 개다불 등 4인이 내투하여 변방을 지킨 공을 본받을 것을 요청하자, 이를 허락하여 우대해서 예우하고 물품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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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08 高麗史(1451)
黑水靺鞨 阿離弗 흑수말갈의 아리불 등 6인이 내투하자 강남의 주현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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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01 高麗史(1451)
東女眞 鋤栗弗 西女眞 阿主 동여진의 서율불과 서여진의 아주 등 40여 인이 와서 말과 갑옷 및 투구, 깃발, 초서피와 청서피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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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04 高麗史(1451)
東女眞 仇陁囉 西女眞 渠逸 西女眞 木史 木開 동여진의 구타라, 서여진의 거일 등 20여 인이 와서 토종말과 무기를 바치자 의복과 허리띠, 화폐와 물품을 하사하였고, 서여진의 목사와 목개 등 2백 호가 내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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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12 高麗史(1451)
東黑水國 酋長 仇突羅 동흑수국의 추장 구돌라가 와서 토종말과 무기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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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01 高麗史(1451)
黑水靺鞨 閼尸頃 高之問 흑수말갈의 알시경과 고지문 등 24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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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05 高麗史(1451)
黑水靺鞨 烏頭那 흑수말갈의 오두나 등 70여 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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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1 高麗史(1451)
黑水靺鞨 酋長 阿頭 陁弗 흑수말갈의 추장 아두와 타불 등이 와서 말과 활, 화살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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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7 高麗史(1451)
東女眞 黑水 酋長 居蔚摩頭蓋 동여진 흑수의 추장 거울마두개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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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9 高麗史(1451)
黑水靺鞨 蘇勿蓋 高之門 흑수말갈의 소물개와 고지문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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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01 高麗史(1451)
黑水 酋長 沙逸羅 曼投弗 흑수의 추장 사일라와 만투불 등이 내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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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05 高麗史(1451)
黑水靺鞨 踈意 흑수말갈의 소의 등 30여 인이 내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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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08 高麗史(1451)
鐵利國 首領 那沙 黑水 阿夫閒 철리국의 수령 나사가 흑수의 아부한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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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01 高麗史(1451)
黑水靺鞨 烏沙弗 흑수말갈의 오사불 등 80인이 와서 말과 토산물을 바쳐서 각각 베와 비단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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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11 高麗史(1451)
黑水 酋長 耶肹羅 흑수의 추장 야힐라 등이 내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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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04 高麗史(1451)
黑水靺鞨 古刀買 흑수말갈의 고도매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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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09 高麗史(1451)
黑水靺鞨 阿里古 흑수말갈의 아리고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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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02 高麗史(1451)
黑水靺鞨 歸德大將軍 阿骨阿駕 흑수말갈의 귀덕대장군 아골아가가 와서 토종말 및 병기와 의장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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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12 高麗史(1451)
東女眞 沙逸羅 동여진의 사일라 등이 와서 말을 바쳤다. ▐ 1022년에 黑水 酋長 沙逸羅와 曼投弗 등이 내조한 적이 있다. 이로써 黑水는 東女眞으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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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05 高麗史(1451)
東女眞 奉國大將軍 蘇勿蓋 동여진의 봉국대장군 소물개 등이 와서 말 9필, 과선 3척, 호시 58,600개 및 무기와 의장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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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05 高麗史(1451)
▐ 1011년에 東女眞의 배 1백여 척이 경주를 침략하였고 1012년에 東女眞이 청하현·영일현·장기현을 침략하였으며 1015년에 女眞이 배 20척으로 구두포를 노략하였다. 과선을 바친 이 東女眞도 같은 세력으로 추정된다. 黑水靺鞨 蘇勿蓋는 1021년에 高之門과 함께 와서 토산물을 바친 바 있다. 따라서 그 즈음부터 이들은 침략을 멈추고 왕씨고려에 호의적으로 변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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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03 高麗史(1451)
女眞 沙逸羅 여진의 사일라 등 40여 인이 와서 토종말을 바쳤다. ▐ 1022년에 黑水 酋長 沙逸羅와 曼投弗 등이 내조한 적이 있고 1028년에도 東女眞 沙逸羅 등이 와서 말을 바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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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08 高麗史(1451)
女眞 將軍 阿豆閒 東蕃 子項史 제서를 내리기를, “여진의 장군 아두한 등 340호가 내투하자 가주와 철주 땅에 억지로 머물게 하였으나, 아두한은 본래 동번의 자항사 종족이므로 마땅히 동번으로 보내 머물게 하라.” 라고 하였다. ▐ 가주와 철주는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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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10 高麗史(1451)
西女眞 大師 阿角八 東女眞 元甫 烏頭那 서여진의 대사 아각팔 등 14인과 동여진의 원보 오두나 등 63인이 내조하였다. ▐ 1020년에 黑水靺鞨 烏頭那 등 70여 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친 바 있다. 따라서 黑水靺鞨은 東女眞으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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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4.12 高麗史(1451)
黑水 包棄 거란의 고노 등 3인과 흑수의 포기 등 8인이 내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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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05 高麗史(1451)
三山村 中尹 夜西老 東蕃 黑水人 三十徒 지금 원수를 갚으려고 귀화한 삼산촌의 중윤 야서로 등 삼십도의 추장들(동번의 흑수인은 그 종족이 30이므로 삼십도라 부름)에게 알려 주었다. ▐ 1012년에 女眞의 추장 마시저가 30개 성씨 부락의 자제를 인솔하고 와서 토종말을 바친 적이 있다. 東蕃 黑水人도 女眞이라 불리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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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07 高麗史(1451)
黑水譯語 加西老 東蕃 高孟 제서를 내려 이르기를, “흑수역어 가서로는 동번을 회유하여 주현이 되게 하였으므로 감문위산원을 제수하며 이름을 고맹이라고 하사한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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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11 高麗史(1451)
黑水 팔관회를 열고 신봉루에 나아가 풍악을 관람하였다. 다음 날 연등대회에서 대송‧흑수‧탐라‧일본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각각 예물과 명마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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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2 高麗史(1451)
중광전에 거둥하여 東蕃 추장 果下 등 63인을 접견하고, 술과 음식 및 전례에 따른 예물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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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10 高麗史(1451)
東蕃 阿只 선정전의 남문에 거둥하여 동번의 사자 아지 등을 접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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