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제가 죽자 태종이 바친 처녀들은 순장을 당했다. 뜰에서 음식을 먹이고 마루에 끌어 올려 작은 상 위에 서서 올가미에 머리를 넣게 하고 상을 떼어 버리니 모두 목이 매달려 죽었다. 한씨가 죽을 때 "낭아 나는 간다. 낭아 나는 간다." 고 하였는데 말을 마치기 전에 상을 빼내므로 다른 처녀와 함께 죽었다.
한씨의 여동생도 얼굴이 예쁘다고 알려져 1428년에 진헌녀로 명나라에 보내졌다. 그녀는 시집갈 때 쓰려고 준비했던 침구를 다 찢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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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4.16 朝鮮王朝實錄
태종 이방원이 명나라 황제의 서신에 절하고 나서 서쪽 섬돌로 올라가 사신 앞에 꿇어앉았다. 황엄이 황제의 뜻을 전하기를,
"恁去朝鮮國和國王說 有生得好的女子 選揀幾名將來 네가 조선국에 가서 국왕에게 말하여 잘 생긴 여자가 있으면 몇 명을 간택해 데리고 오라."
하였다.
上扣頭曰 임금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敢不盡心承命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 이씨조선이 명나라에 처녀를 바치기 시작한 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4909#4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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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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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07.08 世宗實錄(1454)
명나라를 다녀온 사신이 세종에게 명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였다. 그 내용은 황제가 조공에 대해 불평을 하자 옆에 있던 내관이 황제의 본심을 눈치 채고 이조 사신들에게 처녀를 바치라고 요구하였고 그러자 황제가 매우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세종 또한 황제의 마음을 읽어 황제에게 바칠 처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처녀를 뽑는 과정은 먼저 진헌색을 설치하고 혼인을 금지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4909#9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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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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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10.17 世宗實錄(1454)
황제가 죽자 궁인으로 순장된 자가 30여 인이었다. 죽는 날 모두 뜰에서 음식을 먹이고 마루에 끌어 올리니 곡성이 전각을 진동시켰다. 마루 위에 나무로 만든 작은 평상을 놓아 그 위에 서게 하고 올가미를 만들어 머리를 그 속에 넣게 하고 평상을 떼어 버리니 모두 목이 매어져 죽게 되었다.
한씨가 죽을 때 김흑에게 이르기를,
"낭아 나는 간다. 낭아 나는 간다."
고 하였는데 말을 마치기 전에 곁에 있던 환관이 걸상을 빼내므로 최씨와 함께 죽었다.
4909#4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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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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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03.14¦진헌녀 선발 조건
진헌녀 선발에서 제외된 네 부류는 다음과 같다.
(1) 종실의 친척
(2) 전조 왕씨
(3) 귀화인
(4) 국가에 관계되는 죄인의 딸
그 이유가 뭘까?
(1)은 왕족의 특권으로 해석할 수 있다.
(3)과 (4)는 진헌녀라 하더라도 황제를 모시는 여자인만큼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계층으로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2)는 어떤 배경일까?
이씨왕조는 왕씨고려를 비하하고 그 왕족들을 대부분 살해하는 등 적대적인 태도를 가 ...
4909#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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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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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07.18 世宗實錄(1454)
중궁이 경회루에 나가서 처녀 7인을 불러 보고 전별연을 베풀었는데, 처녀의 어머니와 친족들도 또한 연회에 참예하였다. 집찬비(執饌婢) 10인과 수종(隨從)하는 비(婢) 16인은 루(樓) 아래에서 음식을 먹이었다. 성씨(成氏)·차씨(車氏)에게 따르는 비(婢)는 각기 3인이고 그 나머지는 각기 2인이었다. 밤에 날씨가 맑고 고요한데 슬피 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니, 이를 듣는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4909#9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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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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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07.19 世宗實錄(1454)
홍인을 좌군 동지총제, 김오문을 우군 동지총제, 양질을 사헌 장령, 처녀 차씨의 오라비 차효생을 중군 사정, 안씨의 아버지 안복지, 최씨의 숙부 최지손, 오씨의 아버지 오척을 모두 우군 사정을, 정씨의 아버지 정효충을 호군, 최씨의 외숙 최홍재를 사직, 노씨의 아버지 노종득을 좌군 사직, 숙부 노증을 호군으로 삼고, 진헌사인 지돈녕부사 안수산과 성씨의 아버지 성달생에게 의복과 갓·신을 내리었다.
4909#9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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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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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07.20 世宗實錄(1454)
세 사신이 대궐에 나아가니, 임금이 맞이하여 근정전의 뜰 막차로 들어와 다례를 행하였다. 7명의 처녀들이 상림원으로부터 근정전으로 들어 와서 집이 있는 교자에 나누어 들어갔는데, 성씨만은 한 교자에 혼자 들어가고 그 나머지는 두 사람이 한 교자를 같이 탔다. 사신이 친히 자물쇠를 채우고 집찬비와 수종하는 비도 모두 말을 탔다. 건춘문에서 길을 떠나니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이 거리를 막아 울면서 보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또한 모두 눈물을 흘렸다.
4909#9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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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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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07.21 世宗實錄(1454)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처녀들이 갈 적에 어미와 자식이 서로 이별하게 되니 그 원통한 것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은 국내의 이해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관계되어 조정 신하들의 비교가 아니므로 간할 수도 없고 다만 영만 따를 뿐이다. 만약 일이 본국의 이해에 관계된다면 마지못하여 주달했을 것이다.”
然此事非本國利害所關 且外國 非若廷臣之比 不得諫諍 唯令是從而已 若事關本國利害 則不得已奏達矣
▐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4909#9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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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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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세종은 왜 진헌녀를 보냈나?
세종 자신도 원통해 한 일인데 왜 그는 처녀 진헌을 거부하지 못했을까?
만약 처녀 진헌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처녀를 바치지 않는다고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오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씨왕조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사소한 일 같지만 명나라가 이씨왕조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이씨왕조에게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첫째, 이씨왕조가 왕조를 개창한 지 30여년 밖에 안 된 신생 왕조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직 ...
4909#9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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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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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8.10.04 世宗實錄(1454)
세 사신이 한씨를 모시고 돌아가니 임금이 모화루에서 전별연을 베풀어 보내고 진헌사 총제 조종생과 한씨의 오라비 광록시 소경 한확이 함께 갔다. 도성 안 사람과 사녀들이 한씨의 행차를 바라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의 형 한씨가 영락 궁인이 되었다가 순장당한 것만도 애석한 일이었는데 이제 또 가는구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이때 사람들이 이를 생송장이라 하였다.
● 한씨의 언니는 1417년에 바쳐졌다가 1424년 황제가 죽었을 때 순장당했다.
4909#4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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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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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04.22 청실록
至於朝鮮婦女軍士以力戰得之
今聞我國之婦女沃以熱水拷以酷刑既不容為妾又不留為婢妒忌殘虐莫此為甚
此等婦人朕必懲以從夫殉死之例法無可宥
조선의 부녀자는 병사들이 힘들게 싸워 얻은 것이다.
지금 들으니, 우리 나라 부녀자들이 뜨거운 물을 붇고 때리고 해서 첩이나 계집종으로 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질투와 잔혹함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
이런 부인들은, 짐이 '남편을 따라 죽는 부인'의 예법으로 응징하고 용서치 않겠다.
4909#9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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