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에는 을사조약을 체결한 고종,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한 순조 그리고 일본군 항공사령관을 지낸 영친왕이 빠져있고 만주군 중위였던 박정희가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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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8.22 日韓倂合條約
병합 조약(倂合條約)
한국 황제 폐하 및 일본국 황제 폐하는 양국간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기 위하여,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 만한 것이 없음을 확신하여 이에 양국 간에 병합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위원에 임명한다. 위의 전권위원은 회동하여 협 ...
1775#2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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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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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8.22_ 한일합방의 책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1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우리는 나라를 잃은 민족의 치욕을 둘러싸고 일본의 제국주의를 꾸짖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의 정세, 국내적인 단결, 국력의 약함 등 자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또 1982년 광복절 기념식전에서도 “이민족 지배의 고통과 모욕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한 확실한 보장은, 우리를 지배한 나라보다 살기 좋은 나라, 보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내는 길 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한일합방의 ...
1775#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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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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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8.22_ 한일합방의 책임
한국의 통치를 일본에 넘기기로 한 것은 이씨왕조의 조정에서 결정된 것이고 이완용은 그 실무적인 협상을 했을 뿐이다. 왕국의 주인은 왕이니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완용은 이후 고종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이것도 그가 고종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한일합방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이씨왕조에게 물어야 한다.
일한병합조약문을 읽어보면 그 주요 내용이 이씨왕가의 신분보장과 금전지급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이씨조 ...
1775#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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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만주국군 중위 박정희 등재
박정희는 한일합방되고 7년이 지난 1917년에 태어났다.
구미보통학교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에 문경보통학교의 교사로 취임했다.
어릴 때부터 나폴레옹을 흠모하고 군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나이 제한에 걸리게 된다. 그러자 결연한 의지를 담은 편지와 혈서를 보내며 재차 응모하여 합격하게 된다. 그 편지내용을 보면 박정희는 당시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일본인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4 ...
1775#3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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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친일인명사전 비판 1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4,389명의 인물들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였다.
이 사전에는 일조시대 하급장교부터 각종 사회단체의 주동자까지 광범위한 한국인들을 친일인사로 분류하여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전에서처럼 만주국군 소위를 친일로 규정해 놓으면 그런 장교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도 모두 내면적 친일이 되어 버린다. 또 조선미술가협회와 같은 단체의 간부들을 친일로 규정해 놓으면 그 협회의 나머지 회원들도 모두 미미하나마 친일이 되어 버린 ...
1775#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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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친일인명사전 비판 2
체제교체에 따른 청산작업의 바람직한 원칙을 생각해 본다.
첫째, 구체제의 질서를 주도하고 그로부터 특권을 누린 지배세력에 대해서는 실패한 체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일조시대에 대한 책임도 그 당시의 지배세력이라 할 수 있는 이씨왕족이나 고관들이 져야 한다. 이 책임은 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이다. 일조체제의 질서를 주도하고 그로부터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니 그 체제가 붕괴하였다면 마땅히 자신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둘째, ...
1775#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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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친일인명사전 비판 3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워지게 된 계기를 만든 사람은 임종국이다. 그가 쓴 유명한 ‘친일문학론’에는 저자 자신에 대해 쓴 자화상이란 글이 있는데 거기서 임종국은 자신이 17세였을 때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내용을 소개해 놓고 있다.
하루는 친구 놈한테서 김구 선생님이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 김구 선생이라는 이가 중국 사람이래!"
"그래? 중국 사람이 뭘 하러 조선엘 오지?"
"임마 것두 몰라! 정치하러 온대."
"정치? 그럼 우린 중국한테 멕히니?"
한국 ...
1775#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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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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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을 좋아했던 고종과 민비 - 매천야록
조선말기에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이씨조선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당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왕과 왕비가 직접 돈을 받고 관직을 파는 모습은 이씨왕조가 거의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매천야록에는 그러한 매관매직이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후 고종과 민비가 돈 쓰는 것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매관매직의 발단
원자가 탄생한 이후 궁중의 기양은 ...
1775#6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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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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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비판 1
일본 통치에 대해서는 충분한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건국전후에 있었던 민중학살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실상 파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월남자 수가 월북자 수를 압도하는 지금, 남북간의 국가정당성 경쟁은 끝이 났고 괴뢰반동학살이라는 대한민국 건국의 원죄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사의 지층에 피의 한 겹을 쌓은 이 비극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고 아무런 연구도 하지 않았다.
1775#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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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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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비판 2
현재 한민족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미군의 주둔이다. 일본의 통치는 지나간 과거라 돌이킬 수 없지만 미군의 주둔은 냉전의 해체 이후 우리의 의지로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보다 미래의 출발이 되는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민족문제연구소가 미군철수 자주화를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과거의 모순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돌려 현재의 모순을 덮는 결과만 낳고 있다.
1775#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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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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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훈기장
일제 강점기의 훈기장은 러일 전쟁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이 조선인에게 수여한 훈장과 기장이다. 일본의 훈장은 최고 등급의 훈장인 국화장(菊花章 ), 남자에게 주는 욱일장(旭日章), 여자에게 주는 보관장(寶冠章), 남녀 모두가 받을 수 있는 서보장(瑞寶章), 무공훈장 금치훈장(金鵄勳章), 일반인에게 수여되는 문화훈장(文化勳章) 등이 있다. 욱일장, 보관장, 서보장은 등급을 나누어 훈등을 매겼다.
1775#3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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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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