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이야기 > 1424 세종대왕의 처녀진헌
 
 세종대왕의 처녀 진헌
이씨왕조는 태종 이방원 때부터 명나라에 처녀를 바치기 시작했다. 세종은 태종이 바친 처녀가 순장당하자 그녀의 여동생을 또 진헌녀로 보내기도 했다. 세종이 명나라에 처녀를 바칠 때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건춘문에서 길을 떠나니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이 거리를 막아 울면서 보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또한 모두 눈물을 흘렸다."
http://qindex.info/i.php?f=4909#26771
 
 1408-04-16 조선왕조실록
임금(태종 이방원)이 황제(영락제)의 서신에 절하고 나서 서쪽 섬돌로 올라가 사신 앞에 꿇어앉았다. 황엄이 황제의 뜻을 전하기를, "네가 조선국에 가서 국왕에게 말하여 잘 생긴 여자가 있으면 몇 명을 간택해 데리고 오라." 하였다. 임금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http://qindex.info/i.php?f=4909#40580
 
 1417-04-04 조선왕조실록
전국의 혼인을 금지하니, 새해 인사차 보낸 통역 사신 원민생이 명나라의 서울로부터 돌아와 황제(영락제)가 미녀를 요구한다고 (태종 이방원에게) 넌지시 알린 때문이었다.
http://qindex.info/i.php?f=4909#41006
 
 1417-08-16 조선왕조실록
사신 황엄·해수가 한씨·황씨를 데리고 돌아가는데 한씨의 오빠 부사정 한확, 황씨의 형부 녹사 김덕장, 근수하는 시녀 각 6인, 화자 각 2인이 따랐다. 길 옆에서 보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http://qindex.info/i.php?f=4909#40747
 
 1419-01-19 조선왕조실록
(세종의 왕위계승을 승인하는 영락제의 문서가) 경복궁에 당도하자 상왕(태종)은 궁문 밖에서 영접하고 사신은 절·고를 받들고 근정전에 당도하였다. 임금(세종)은 뜰에 내려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네 번 절하고 면복을 입고 나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멀리 사은하며 네 번 절하고 향을 피우며 또 네 번 절하고 만세를 부르며 춤추고 발구르며 네 번 절하고(山呼舞蹈四拜) 면복을 벗었다.
http://qindex.info/i.php?f=4909#40748
 
 1419-01-19 조선왕조실록
예식이 끝나니 한확은 악차 앞에 와서 네 번 절하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임금(세종)이 사신과 더불어 행례할 적에 한확은 “감히 그럴 수 없다.” 고 사양하는데 임금이 강권하여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한확은 잔치에는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는 본국 사람인데 그 누이가 황제의 후궁으로 뽑혀 들어가서 총애를 받고 있었다.
http://qindex.info/i.php?f=4909#4114

1424 세종 06년
 1424 세종 06년 07월 08일    1424 세종 06년 07월 13일    1424 세종 06년 07월 20일    1424 세종 06년 09월 1일    1424 세종 06년 09월 25일    1424 세종 06년 10월 17일    1424-10-17 조선왕조실록    1424-10-17 조선왕조실록  

1426 세종 08년
• 12월    1426 세종 08년 03월 14일    1426 세종 08년 03월 14일    1426 세종 08년 04월 07일    1426 세종 08년 04월 18일    1426 세종 08년 11월 18일  

1427 세종 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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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8-10-04 조선왕조실록
세 사신이 한씨를 모시고 돌아가니, 임금(세종)이 모화루에서 전별연을 베풀어 보내고, 진헌사 총제 조종생과 한씨의 오라비 광록시 소경 한확이 함께 갔다. 도성 안 사람과 사녀들이 한씨의 행차를 바라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의 형 한씨가 영락 궁인이 되었다가 순장당한 것만도 애석한 일이었는데, 이제 또 가는구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이때 사람들이 이를 생송장이라 하였다.
http://qindex.info/i.php?f=4909#40750
 
 Sejong the Great
Sejong the Great (May 7, 1397 – May 18, 1450, r. 1418 - 1450) was the four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of Korea.
http://qindex.info/i.php?f=4909#26738
 
 Yongle Emperor
The Yongle Emperor (Traditional Chinese: 永樂; Simplified Chinese: 永乐; pinyin: Yǒnglè; Wade-Giles: Yung-lo; IPA: [i̯ʊŋlɤ]) (May 2, 1360 – August 12, 1424), born Zhu Di (Chu Ti) , was the third emperor of the Ming Dynasty of China from 1402 to 1424.
http://qindex.info/i.php?f=4909#26737
 
 번국과 속국에 대한 이런 정의
이시이 아키라(石井明) 도쿄대 명예교수 등도 류큐가 중국의 번속국이라는 의견을 냈다. 번국은 대국의 제후 등이 파견돼 다스리는 변방국가를 뜻하고, 속국은 자체 왕조가 있되 대국에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는 형태를 뜻한다.
http://qindex.info/i.php?f=4909#40581

삼한/신라시대
 0428(308) 일본서기(720)    0453-11 일본서기(720)    0458-07 일본서기(720)    0461-04 일본서기(720)    0466 魏書 - 고려 장수왕 54년    0472 魏書 - 백제 개로왕 18년    0631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0646 삼국사기 고려 보장왕    0722 삼국사기 신라 성덕왕    0791 삼국사기 신라 원성왕  

왕고시대
 1231 고려사절요    1273-03 고려사(1451)    1273-03 고려사(1451)    1275 고려사절요    1276 고려사절요    1288 고려사절요    1290 고려사절요    1292 고려사절요    1293 고려사절요    1294 고려사절요    1300 고려사절요    1301 고려사절요    1302 고려사절요    1305 고려사절요    1307 고려사절요    1308 고려사절요    1309 고려사절요    1310 고려사절요    1331 고려사절요    1335 고려사절요    1338 고려사절요    1343 고려사절요    1353 원사    1362 고려사절요  
 
 일본군위안부 [日本軍慰安婦]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에 의해 군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
http://qindex.info/i.php?f=4909#26741
 
 조선사람의 해외여행
나라가 힘이 없어 중국에 바쳐진 인간 진상품… 貢女(공녀) 잔혹사
http://qindex.info/i.php?f=4909#34259

중국의 공녀
 두산백과: 왕소군    두산백과: 화번공주  
 
 환향녀 [還鄕女]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절개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
http://qindex.info/i.php?f=4909#26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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