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시대 연대기 > 290년에서 390년 사이 > 0309 우로의 피살
 
 倭가 신라왕의 항복을 받는 장면
Stories of the Shinto Hachiman and shrines dedicated to him,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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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0 일본서기(720)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宇流助富利智干)을 사로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서 왕의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하였다. 조금 있다가 목을 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머물게 하여 신라의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다. 그 후 신라왕의 처가 남편의 주검을 묻은 곳을 몰라서 혼자 재상을 꾀일 생각을 하였다. 곧 재상을 유인하여 “당신이 왕의 주검을 묻은 곳을 가르쳐 준다면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고 또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재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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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0-04 일본서기(720)
여름 4월 초하루 북으로 화전국 송포현에 이르러 옥도리의 작은 냇가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 때 황후가 바늘을 구부려 낚싯바늘을 만들어 밥알을 미끼로 하고 치마의 실을 풀어서 낚싯줄로 하여 물 가운데의 돌 위로 올라가 낚시를 던지고 “짐은 서쪽의 부자 나라를 얻고자 합니다. 만약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면 물고기가 낚시를 물게 하소서.”라고 빌었다. 인하여 낚싯대를 드니 비늘이 촘촘한 고기가 걸려 있었다. 이 때 황후가 말하기를 “보기 드문 것이다.”라고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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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0-10 일본서기(720)
화이진으로부터 출발했다. 신라왕은 흰 끈을 목에 걸어 항복하고 토지의 도면과 백성의 호적을 봉인하여 왕의 배 앞에 와서 항복하였다. 백제와 고려는 스스로 군영 밖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서약하기를 “지금 이후로는 길이 서쪽 번국이 되어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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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9-07 삼국사기(1145)
포상의 여덟 나라가 가라를 침입하려고 하자 가라 왕자가 와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이 태자 우로와 이벌찬 이음에게 명해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해주어 여덟 나라의 장군을 공격해 죽이고 포로로 잡혔던 6천 명을 빼앗아 돌려주었다. --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에는 왕손 또는 태자 날음이 군대를 이끌었다고 되어 있다. 우로는 249년 또는 253년에 죽었다고 하고 310년에는 그의 어린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고 하므로 이 기록의 우로와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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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3 삼국사기(1145)
왜인이 침입해 왔으므로 우로가 사도(沙道)에서 추격하여 싸웠는데,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서 적의 전함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다 물에 빠져 죽었다. -- 293년에도 왜인이 사도성을 공격해와 장수를 보내 지키게 했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을 60년 뒤로 물리면 해를 이어 왜인과 싸웠다는 이야기가 되어 자연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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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7-239 삼국지(289)
명제가 대방군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두 군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여러 한국의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더해 주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읍장을 주었다.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신지과 한인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이 때 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정벌하였는데, 준은 전사하였으나 두 군은 마침내 韓을 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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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삼국사기(1145)
고구려가 북쪽 변경에 침입하자 나가서 쳤다.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을 지켰다. 밤이 되어 군사들이 추위로 괴로워하자, 우로는 몸소 다니며 위로하고 손수 땔나무에 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 245년은 위(曺魏)의 공격을 받아 고려왕이 옥저까지 쫓겨가던 시기였다. 당시는 낙랑과 대방이 강성해서 고려와 신라는 국경을 접하지도 않았다. 기록의 시기를 60년 뒤로 물리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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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9 삼국사기(1145)
왜인이 서불한 우로를 죽였다. -- 310년에 우로의 아들 흘해가 어리지만 노성한 덕이 있어 왕으로 세웠다는 기록과 모순된다. 시기를 60년 뒤로 물리면 자연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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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3 삼국사기(1145)
계유에 왜국의 사신 갈나고가 객관에 와 있었는데 우로(于老)가 대접을 맡았다. 손과 희롱하여 말하기를 “조만간에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만들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하였다. 왜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을 보내 우리를 치니, 대왕이 우유촌으로 나가 있게 되었다. 우로가 말하기를 “지금 이 환난은 내가 말을 조심하지 않은 데서 생긴 것이니, 내가 당해내겠다.” 하고 왜군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전일의 말은 희롱이었을 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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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2-06 삼국사기(1145)
왜의 군사가 사도성(沙道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므로, 일길찬 대곡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고 지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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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0 삼국사기(1145)
흘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나해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각간 우로이고 어머니는 명원부인인데 조분왕의 딸이다. 이때 이르러 기림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의논하기를 '흘해는 어리지만 노성한 덕이 있다'하고는 받들어 그를 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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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 미질허지벌한(微叱許智伐旱)
신라왕이 오례사벌, 모마리질지, 부라모지 등을 보내 조공하였는데 볼모로 와 있던 미질허지벌한을 데려가려는 생각이 있었다. 허질벌한으로 하여금 “우리 왕이 제 처자를 모두 종으로 삼았다고 하니 돌아가 알아보게 해주십시오”라 속이게 하니 황태후가 갈성습진언을 딸려 보내주었다. 대마에 이르러 서해의 수문에 머물 때 모마리질지 등이 사공으로 하여금 미질한기를 태우고 신라로 도망가게 하였다. 습진언이 속은 걸 알고 신라 사신들을 잡아 우리 속에 넣고 태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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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말(毛末)
박제상(혹은 毛末이라고 한다)은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고 파사이사금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 갈문왕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이다. 제상은 삽량주간으로 임금을 섬겼다. -- 일본서기에는 모마리질지라고 되어 있는데 질지(叱智)는 존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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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흔(未斯欣)
3월에 왜국과 우호를 통하고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았다. -- 삼국유사에는 미질희(未叱希), 미흔(未欣),미해(美海), 미토희(未吐喜)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서기에는 미질기지(微叱己知), 미질허지(微叱許智)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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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于老)
우로가 왜국의 사신 갈나고를 접대하며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만들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하였다. 왜왕이 이를 듣고 장군 우도주군을 보내 치니 우로가 "내가 당해내겠다"하고 왜군에게로 갔다. 왜인이 잡아서 불태워 죽인 다음 돌아갔다. 미추왕 때에 왜국의 대신이 왔는데 우로의 아내가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가 취하자 장사를 시켜 마당에 끌어 내 불태워 죽였다. 왜인이 분하여 금성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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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류조부리지간(宇流助富利智干)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을 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서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한 다음, 목을 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두어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다. 신라왕의 처가 재상을 유인하여 “왕의 주검을 묻은 곳을 가르쳐 준다면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재상이 알려 주자, 나라 사람들과 재상을 죽였다. 천황이 이를 듣고 군대를 일으켜 신라를 멸망시키려 하였다. 그러자 신라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여 왕의 처를 죽이고 사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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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망이 죽인 추(騶)는 누구인가?
왕망(8-23)의 초기에 있었던 중국과 고려의 갈등은 한서(82), 삼국지(289), 후한서(445) 그리고 삼국사기(1145)에 실려있는데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왕망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물이 한서와 후한서에는 고려왕 추(騶)로 되어 있고 삼국지에는 고려왕 도(騊)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고려 장수 연비(延丕)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개토왕릉비(414)에는 추모왕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되어있어 중국의 기록과 정황이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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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가 죽인 우로는 누구인가?
왜가 신라를 침공하여 살해한 인물에 대해 일본서기(720)는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이라 하고 삼국사기(1145)는 신라 장수 우로라 했다. 가라가 포상8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신라는 원병을 보내주었는데, 이때 군대를 인솔해간 장수를 삼국사기는 태자 우로라 소개해 놓았다. 태자는 왕위를 이을 왕자를 말한다. 우로의 아들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는데, 굳이 어린 사람을 왕으로 앉힌 이유로는 왕자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자연스럽다.
http://qindex.info/i.php?f=552#2074
 
 ¦우로 피살 사건 재구성
일본서기에는 한국인들이 볼 때 매우 불쾌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을 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서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한 다음, 목을 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두어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다. 신라왕의 처가 재상을 유인하여 “왕의 주검을 묻은 곳을 가르쳐 준다면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재상이 알려 주자, 나라 사람들과 재상을 죽였다. 천황이 이를 듣고 군대를 일으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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