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676 ⏍ 新羅 > (2) 다종족 상태 > 유민 > 초원에서 오지 않았다 > 남가라 부여유래설

라마동 고분이 부여인의 무덤이라는 전제 하에, 대성동 고분과 라마동 고분이 고고학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점을 들어 남가라의 지배 세력이 부여의 유민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Steppe route
Steppe route
10697#10707 SIBLINGS CHILDREN 10707
 
0008.0289 三韓의 등장
0008.0289 三韓의 등장
10697#10713 SIBLINGS CHILDREN 10713
 
0285 진서(648)
태강 6년에 이르러 모용외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부여왕 의려는 자살하고, 그의 자제들은 옥저로 달아나 목숨을 보전하였다. ● 부여의 유민은 옥저를 거쳐 해안을 따라 내려가 남가라에 이르게 된 것일까?
10697#10709 SIBLINGS CHILDREN 10709
 
0289 三國志(三國志 晉·陳壽)
대방군을 떠나 왜에 가려면 해안을 따라 한국을 지나 남쪽으로 간 뒤 다시 동쪽으로 7천여 리를 가면 북쪽 해안에 구야(狗邪)한국이 있다. 여기서 바다를 건너 천여 리를 가면 대마국에 이른다. ● 이 구야가 사서에 따라 가라라고도 표기되었으므로 남가라 부여유래설이 맞다면 가라라는 이름은 바뀌지 않은 채 지배 세력만 바뀐 것이 된다.
10697#10714 SIBLINGS CHILDREN 10714
 
0290.0390 三韓의 재편
0290.0390 三韓의 재편
중국에서 서진이 망해가면서 요동과 한국은 재편되었다. ●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는 지배 세력의 교체도 쉬워진다.
10697#10708 SIBLINGS CHILDREN 10708
 
0337~0534 선비 왕조
0337~0534 선비 왕조
가라와 신라에 금동관, 적석목곽분, 순장 등이 성행하던 시기에 초원길 끝에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이어지고 있었다. 모용 선비는 前燕(0337~0370), 後燕(0384~0407) 그리고 北燕(0407~0436)으로 이어가며 요서 지역을 차지하였고 탁발 선비는 北魏(0386~0534)를 세워 모용 선비에 이어 요서 지역을 점유하였다.
10697#10706 SIBLINGS CHILDREN 10706
 
0337~0534 선비 왕조
● 서진이 망하면서 남가라에 선진 문물을 제공하는 역할은 연나라가 맡게 된 것이 아닐까? 남가라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유목 민족의 문화는 이때 연나라로부터 수입된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연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10697#10751 SIBLINGS CHILDREN 10751
 
0340± 대성동 91호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에서 유리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출토 유리조각의 화학조성이 로만글라스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로마의 유리 용기가 들어올 정도면 선비족의 문화가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았을까?
10697#10704 SIBLINGS CHILDREN 10704
 
0340± 대성동 91호분
○ 사슴뿔은 초원의 무속 신앙과 관련이 있고 나뭇가지형 금동관의 뿌리로 추정되고 있다. ○ 금동관이나 청동솥은 문물의 전파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사슴뿔 장식은 무속인이나 주민의 이동으로 설명해야 자연스럽다. 여러 사람의 신앙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 사슴뿔 장식은 청동 방울처럼 이전부터 있었을지 모른다.
10697#10711 SIBLINGS CHILDREN 10711
 
0343 양서(636)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 고국원왕)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晃)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환도(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왔다.
10697#10710 SIBLINGS CHILDREN 10710
 
0350~0375 김해 대성동 68호
0350~0375 김해 대성동 68호
앞뒤 말안장의 윤곽이 둥글다.
10697#10705 SIBLINGS CHILDREN 10705
 
0369 왜의 7국 4읍 정복
0369 왜의 7국 4읍 정복
10697#10715 SIBLINGS CHILDREN 10715
 
0450± 황남대총 남분
10697#10703 SIBLINGS CHILDREN 10703
 
0551~0571 ふじのき(藤ノ木)
10697#10699 SIBLINGS CHILDREN 10699
 
0551~0571 ふじのき(藤ノ木)
金銅製冠・履・馬具、飾り大刀・剣など
10697#10700 SIBLINGS CHILDREN 10700
 
0551~0571 ふじのき(藤ノ木)
金銅鞍金具前輪(まえわ)
10697#10701 SIBLINGS CHILDREN 10701
 
0551~0571 ふじのき(藤ノ木)
金銅鞍金具後輪(しずわ)
10697#10702 SIBLINGS CHILDREN 10702
 
2012 KBS역사스페셜 - 대성동 고분
라마동 고분은 부여인의 무덤이라는 전제 하에, 대성동 고분과 라마동 고분이 고고학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점을 들어 남가라의 지배 세력이 부여의 유민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 주장은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❶ 부여에서 남가라까지 유민이 흘러가는 게 가능한가? ❷ 왜 기록에 전혀 흔적이 남지 않았나? ❸ 남가라 왕조는 왜 백제처럼 부여 출자를 내세우지 않았나?
10697#10698 SIBLINGS CHILDREN 106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