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동 고분이 부여인의 무덤이라는 전제 하에, 대성동 고분과 라마동 고분이 고고학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점을 들어 남가라의 지배 세력이 부여의 유민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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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7~0534 선비 왕조
가라와 신라에 금동관, 적석목곽분, 순장 등이 성행하던 시기에 초원길 끝에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이어지고 있었다.
모용 선비는 前燕(0337~0370), 後燕(0384~0407) 그리고 北燕(0407~0436)으로 이어가며 요서 지역을 차지하였고 탁발 선비는 北魏(0386~0534)를 세워 모용 선비에 이어 요서 지역을 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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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7~0534 선비 왕조
● 서진이 망하면서 남가라에 선진 문물을 제공하는 역할은 연나라가 맡게 된 것이 아닐까? 남가라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유목 민족의 문화는 이때 연나라로부터 수입된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연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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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KBS역사스페셜 - 대성동 고분
라마동 고분은 부여인의 무덤이라는 전제 하에, 대성동 고분과 라마동 고분이 고고학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점을 들어 남가라의 지배 세력이 부여의 유민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 주장은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❶ 부여에서 남가라까지 유민이 흘러가는 게 가능한가?
❷ 왜 기록에 전혀 흔적이 남지 않았나?
❸ 남가라 왕조는 왜 백제처럼 부여 출자를 내세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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