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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廣開土王陵碑 守墓 韓穢二百廿家
❷比利城三家爲看烟
비리성의 3가구는 간연이다.
▐ 광개토왕릉의 수묘를 맡은 韓穢二百廿家 중 韓家는 396년에 백제에서 끌고온 男女生口一千人이었을 듯하다. 이들은 牟婁城二家, 比利城三家 등 각 지역에서 고루 끌려갔다. 牟婁城과 比利城은 각각 청주와 전주로 추정된다.
8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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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5 南齊書(537)
녕삭장군 面中王 저근은 정치를 두루 잘 보좌하였고 무공 또한 뛰어났으니 이제 가행관장군 도장군 都漢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 八中侯 여고는 젊을 때부터 임금을 도와 충성과 공로가 진작 드러났으므로 이제 가행녕삭장군 阿錯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 여력은 천성이 충성되고 정성스러워 문무가 함께 두드러졌으므로 이제 가행용양장군 邁盧王이라 하였으며, 광무장군 여고는 정치에 공로가 있고 국정을 빛내고 드날렸으므로 이제 가행건위장군 弗斯侯라 하였습니다.
8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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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1 昌寧新羅碑
四方軍主로서 ❶比子伐軍主는 사훼의 등▨▨ 사척간이고, 漢城軍主는 훼의 죽부지 사척간이고, 碑利城軍主는 훼의 복등지 사척간이고, 甘文軍主는 사훼의 심맥부지 급척간이다. 上州行使大等은 사훼의 숙흔지 급척간, 훼의 차질지 내말이고, 下州行使大等은 사훼의 춘부지 대내말, 훼의 취순지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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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1 昌寧新羅碑
▐ 벌은 들이라는 뜻의 우리말이고 伐은 그 발음을 표기한 것이다. 일본서기(720)에 나오는 比自㶱의 㶱 또한 벌의 발음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창녕신라비의 比子伐은 일본서기의 比自㶱이 된다.
8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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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 三國史記(1145)
백제는 원래 5부 37군 2백 성 76만 호로 되어 있었는데, 이때에 와서 지역을 나누어 熊津, 馬韓, 東明, 金漣, 德安 등 5개의 도독부를 두어 각각 주·현들을 통할하게 하고, 우두머리를 뽑아서 도독·자사·현령을 삼아 관리하게 하고, 낭장 유인원에게 명령하여 도성을 지키게 하였다.
8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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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 百濟 完山州
完山一云比斯伐一云比自火
완산은 비사벌이라고도 하고 비자화라고도 한다.
▐ 熊川州一云熊津과 武珍州一云奴只과 비교해서 州가 빠져있다. 555년에 完山州를 설치했다는 比斯伐은 화왕군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完山州와 구별하기 위해 完山이라고만 한 것이 아닐까?
24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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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全州
全州 夲百濟完山 真興王十六年爲州 二十六年州癈 神文王五年復置完山州 景徳王十六年改名 今因之 전주는 본래 백제의 완산이었다. 555년에 주를 삼았다. 565년에 주를 폐했다가 685년에 다시 완산주를 설치했다. 757년에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 이름이다.
▐ 完山州라 하지 않고 完山 또는 州라고만 하다 신문왕 5년에 와서야 完山州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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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全州
▐ 完山 → □□ → 全州┆백제의 完山은 웅진도독부에서 후속 지명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장소이므로 빠진 게 아니고 다른 지명으로 표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웅진도독부의 노산주에서 전후의 지명이 연결되지 않는 것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서 完山의 후속 지명으로는 阿錯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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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火王郡
火王郡本比自火郡一云比斯伐 眞興王十六年置州名下州 二十六年州廢 景徳王攺名 화왕군은 본래 비자화군이다. 비사벌이라고도 한다. 555년에 주를 두고 하주로 이름하였다가 565년에 주를 폐했다.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었다.
▐ 火王郡의 지명 이칭이 백제의 完山(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과 같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착오로 보아야 한다.
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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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원래 比斯가 完山의 다른 이름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1145)는 이 比斯를 比自火와 혼동하였고 그래서 比斯伐로 인식했을 수 있다.
이런 가정으로 삼국사기를 교정하면 아래와 같다.
8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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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三國史記(1145)
置完山州於比斯伐 비사벌에 완산주를 설치하였다. ➔ 置下州於❶比自火 비자화에 하주를 설치하였다.
▐ 555년에 진흥왕이 火王郡에 州를 설치했다면 이는 당시의 정황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삼국사기가 참고한 기록에 州를 설치한 곳이 比自火로 되어 있어 그것을 完山으로 오인하고 比斯伐에 州를 설치한 것으로 기술한 듯하다.
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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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三國史記(1145)
▐ 565년에 진흥왕이 火王郡에 설치된 州를 폐지하고 大耶州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로 인정된다. 562년에 加耶를 멸망시켰는데, 그 후속 조치로 취한 설치로 보이기 때문이다. 加耶는 火王郡의 낙동강 건너편에 있었다.
그런데 역시 참고한 기록에는 比自火에 설치했다고 되어 있어 完山에 설치한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完山에는 555년에 完山州를 설치했다고 오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565년에 完山州를 폐지한 것으로 오기한 것이다.
8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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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 百濟 完山州
完山(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 완산은 비사벌이라고도 하고 비자화라고도 한다. ➔ 完山(一云❷比斯) 완산은 비사라고도 한다.
▐ 伐·弗·火는 주로 죽령 이남의 지명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차현 이남에 있는 완산의 별칭으로는 比斯伐이 어울리지 않는다.
8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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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九州五小京 全州
全州 夲百濟完山 真興王十六年爲州 二十六年州癈 神文王五年復置完山州 景徳王十六年改名 今因之 전주는 본래 백제의 완산이었다. 555년에 주를 삼았다. 565년에 주를 폐했다가 685년에 다시 완산주를 설치했다. 757년에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 이름이다. ➔ 全州夲百濟完山 神文王五年爲完山州 景徳王十年改名 今因之 전주는 본래 백제의 완산이었다. 685년에 완산주로 삼았는데 757년에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 이름이다.
8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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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九州五小京 全州
▐ 685년에 신라가 완산주를 설치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역사적 사실로 인정된다.
신문왕(681~692) 시기에 웅천주, 완산주 그리고 무진주를 설치하였는데, 이는 당나라가 설치한 웅진도독부를 대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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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九州五小京 火王郡
火王郡本比自火郡一云比斯伐 眞興王十六年置州名下州 二十六年州廢 화왕군은 본래 비자화군이다. 비사벌이라고도 한다. 555년에 주를 두고 하주로 이름하였다가 565년에 주를 폐했다. ➔
火王郡本❶比自火郡 眞興王十六年置州名下州 二十六年州廢
화왕군은 본래 비자화군이다. 555년에 주를 두고 하주로 이름하였다가 565년에 주를 폐했다.
▐ 완산의 별칭에서는 比自火가 빠져야 하고 화왕군의 별칭에서는 比斯伐이 빠져야 한다.
8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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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錯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의 주군현을 웅진도독부 주현으로 개편했다. 이때 만경강 상류 지역에는 노산주를 설치했는데 거기에는 노산현, 당산현, 순지현, 지모현, 오잠현 그리고 阿錯縣이 들어가 있다.
노산현은 지금의 함열읍으로 비정되고 당산현과 순지현은 각각 지금의 금구면과 이서면으로 비정된다. 지모현과 오잠현은 서로 인접한 곳으로 지금의 익산으로 추정된다. 모두 만경강 상류다.
그러나 阿錯縣은 관련된 기록이 거의 없어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
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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