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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誤記」 尚州
(沽解王→)沾解王時 取沙伐國爲(州→)郡 첨해왕 때 沙伐國을 취하여 군으로 삼았다.┆法興王十一年 梁普通六年 初置軍主爲上州 525년 처음으로 軍主를 설치하여 上州로 삼았다.┆真興王十八年 州廢 557년 州를 폐했다.┆神文王七年 唐垂拱三年 復置 築城 周一千一百九歩 687년 다시 설치하고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1109보였다.┆景徳王十六年 攺名尚州 757년 이름을 尚州로 고쳤다.
30103#26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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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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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上·下州
신라는 525년에 沙伐郡에 上州를 설치하고 555년에 火王郡에 下州를 설치하였다.
이 上·下州의 이름은 '동쪽 끝은 黃山江, 서남쪽 끝은 滄海, 서북쪽 끝은 地理山, 동북쪽 끝은 伽耶山 그리고 남쪽 끝은 바다'라는 여섯 駕洛의 바깥에 있다. 따라서 駕洛과는 상관이 없다.
서라벌에서 서쪽으로 금호강을 따라 내려가면 낙동강을 만나는데, 거기서 상류로 올라가면 沙伐郡이고 하류로 내려가면 火王郡이다.
그런 관점에서 上·下州의 이름을 붙인 듯하다.
30103#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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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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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駕洛
삼국지(289)에는 狗邪만 나오는데 일본서기(720)에는 加羅와 南加羅가 나오며 삼국사기(1145)에는 大·南·阿那·古寧加耶로 불어났고 삼국유사(1281)에서는 大·小·金官·古寧·阿羅·星山(碧珎)伽耶로 더욱 불어났다. 뿌리도 삼국사기에서는 大·南加耶가 별개로 분리되어 있으나, 釋利貞傳에서는 두 시조가 형제로 나오며, 駕洛國記에서는 여섯 伽耶가 하나의 뿌리로 묶여 있다. 이는 加羅와 南加羅가 이름이 같은 데서 비롯된 착각이 점점 증폭된 결과다.
30103#3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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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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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高麗史 尙州牧
眞興王 廢州 爲上洛郡 진흥왕 때 주를 폐지하고 상락군이 되었다.┆惠恭王 復爲沙伐州 혜공왕 때 다시 사벌주가 되었다.┆太祖二十三年 復改爲尙州┆其後 又改爲安東都督府┆成宗二年 初置十二牧 尙州 卽其一也┆十四年 置十二州節度使 號歸德軍 屬嶺南道┆顯宗三年, 廢節度使 復爲安東大都護府┆五年 改爲尙州安撫使┆九年 定爲牧 爲八牧之一┆別號上洛(成廟所定) 又號商山┆有洛東江
30103#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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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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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上洛
금호강을 따라 내려가 만나는 낙동강에서 상류로 올라가 닿는다고 해서 沙伐郡을 上州라 하고 하류로 내려가 닿는다고 해서 火王郡을 下州라 했다면, 上州의 개칭인 上洛郡의 洛도 그런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上州가 洛의 위쪽이라면 下州는 洛의 아래쪽일 것이니 洛은 沙伐郡에서 火王郡에 이르는 범위를 갖는다.
30103#1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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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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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 靑邱圖(1834)
▐ 尙州는 신라 때 130년 동안 上洛郡이었고 990~994년 이후에는 별칭으로 上洛이라 불려 왔다. 尙州 주변의 洛西, 洛陽, 洛平, 洛源 그리고 洛東이라는 역 이름과 洛東江이라는 강 이름은 이 上洛에서 나왔다. 洛東江은 '上洛의 東쪽을 흐르는 江'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이야기다.
@낙양역 @낙원역 @낙평역 @낙동역 @낙동강
30103#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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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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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9 暎湖樓重新記
映湖는 永嘉에서의 이름 높은 다락이었다. 그 강산의 기괴하고 거룩한 구경은 비록 진주의 촉석이나 밀양의 영남에 양보할 듯 싶었으나, 함께 洛水의 언덕을 웅거하고서는 商山에 있는 것은 觀水樓라 하고, 一善에 있는 것을 月波亭이라 일렀으나 모두들 다락으로 갑을을 다투기에는 어려울 것이었다.
▐ 暎湖樓重新이 이루어진 戊申 이듬해에 부탁을 받아 글을 썼으니 1489년이다.
30103#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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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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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新增東國輿地勝覽 尙州牧
洛東江 在州東三十六里 聞慶龍淵及軍威幷川諸水至州之東北 合于龍宮河豐津 南流爲洛東江 入善山府界 自此至入海 雖隨地異名 而摠稱洛東江 又稱伽倻津
낙동강은 주 동쪽 36리에 있다. 문경의 용연과 군위의 병천 등 여러 물이 주의 동북쪽 용궁 하풍진에서 합하여 남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어, 선산부 경계로 들어간다. 여기로부터 바다에 들어가기까지 비록 땅에 따라 이름은 다르나 총칭 낙동강이라 하고 가야진이라고 일컫는다.
30103#7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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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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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河豐津┆甘物倉津
洛의 범위가 沙伐郡에서 火王郡까지라면 河豐津에서 시작되어 甘物倉津에 이르러 하류가 된다는 1530년 시기의 洛東江과 일치한다.
서라벌에서 양산단층을 따라 내려가 만나게 되는 낙동강을 黄山河라 불렀는데, 금호강을 따라 내려가 만나게 되는 낙동강은 뭐라 불렀는지 기록에 없다. 駕洛이 장악하고 있었을 이 강을 洛水라 불렀다고 가정하면 上州를 上洛郡으로 바꾼 이유가 잘 설명된다.
┆駕洛 → 洛水 → 上洛 → 洛東 → 洛東江
30103#1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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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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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 不知巖精舍記
堂下之江 卽洛之下流也 당 아래에 흐르는 강은 바로 洛水의 하류인데 伊水와 洛水는 宋 나라 제현들이 일어나신 지역이다. 江名偶與之同 강의 이름이 우연히 그와 같으니, 정맥이 흐르는 물줄기를 생각하여 洙水와 泗水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서쪽은 金烏山인데 바로 길야은이 은둔하신 곳으로 깨끗한 풍도와 높은 절개가 곧바로 首陽山의 孤竹과 서로 비추니, 이에 우러러보면 참으로 늠름함이 있다.
30103#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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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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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 ◾孤竹┆首陽山
孤竹國의 묵태초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묵태초는 셋째 叔齊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죽었다. 그러나 叔齊는 첫째 伯夷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하였는데 그러자 伯夷는 이를 거부하고 나라를 떠나 버렸다. 그러자 叔齊마저 나라를 떠나 伯夷와 함께 주나라가 상나라를 범하는 것을 막다 실패하자 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살았다.
30103#13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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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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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 東槎錄
洛陽天下之中土 낙양은 중국 땅에 있거늘 海外緣何竊此名 바다 밖에서 뭣 때문에 이 이름 훔쳐 왔나
▐ 한국고전번역원: 당시 일본의 서울이던 京都를 洛陽이라 부른 데 대한 언급이다. 일본에서 洛陽은 京都의 별명으로 일컬어진다. 중국의 洛陽은 洛水의 북쪽에 발달한 도시인데, 京都에서는 賀茂川이 洛水에 해당되는 하천이 된다. 京都를 洛陽으로 간주하는 이런 명칭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洛中(교토 시내), 洛東(교토 동쪽) 등의 말이 쓰이게 되었다.
30103#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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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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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1861 東輿圖
▐ 이조의 洛水가 磊津 하류의 낙동강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 예는 없다.
신라의 黄山河나 왕고 이후의 黃山江이 磊津 상류의 낙동강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 예도 없다.
그렇다면 삼한 시대에도 낙동강은 洛水와 黃山河로 분리되어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신라에서 금호강을 따라 내려가 만나는 강을 洛水라 했고 양산 단층을 따라가 만나는 강을 黃山河라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尙州는 洛水의 上流에 있었기 때문에 上洛이라 불렸을 듯하다.
@뇌진 @옥지연 @황산강
30103#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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