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시대 연대기 > 290년에서 390년 사이 > 0308 오주갑인상
 
 0238 - 0245
漢 왕조를 이은 위(曹魏)는 238년에 요동의 공손씨를 토벌하고 낙랑과 대방에 대한 통치도 회복하였다. 이어 위는 부여의 지원을 받으며 244년과 245년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고 도주하는 동천왕을 쫓아 옥저까지 파괴하였다. 낙랑과 대방도 고려에 복속했던 濊를 침공하여 다시 복종을 받아내고 韓도 침공하여 복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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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ᑀ 삼국지(289) 韓
산과 바다 사이에 흩어져 살았으며 성곽(城郭)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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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ᑀ 삼국지(289) 韓
그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관가에서 성곽(城郭)을 쌓게 되면,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는 모두 등의 가죽을 뚫고, 큰 밧줄로 그곳에 한 발쯤 되는 나무막대를 매달고 온 종일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하는데,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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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ᑀ 삼국지(289) 韓
마한에 대해 성곽이 없다고 했다가 성곽을 쌓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기술이 정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풍납토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마한에 성곽은 있었다. 그러나 이 정밀하지 않은 기술을 들어 삼국지 기록 전체를 불신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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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ᑀ 삼국지(289) 韓 요약
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서로 바다가 경계이고 남으로 倭와 접한다.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있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伯濟國을 비롯한 54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큰 나라는 만여 집이고 작은 나라는 수 천 집인데 합하면 10여만 집이다.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는데 斯盧國을 비롯한 12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변한도 12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진한과 변한의 큰 나라는 4-5천 집이고 작은 나라는 6-7백 집이어서 합하면 4-5만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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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0 진서(648)
(마한)임금이 사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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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0 진서(648)
(진한)왕이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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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1 진서(648)
(마한)임금이 사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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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1 진서(648)
(진한왕이) 다시 와서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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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6 진서(648)
(마한왕의 조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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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6 진서(648)
(진한왕의 조공이) 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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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7 진서(648)
(마한왕의 조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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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7 진서(648)
마한왕과 진한왕의 조공 기록만 보이고 백제나 신라가 나타나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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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9 삼국지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序
그 뒤 고구려가 배반하므로 또 다시 약간의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면서 지극히 먼 지방까지 추격하니, 오환과 골도를 넘고 옥저를 거쳐 숙신의 왕정을 짓밟고 동쪽으로 대해에까지 이르렀다. 장로가 ‘얼굴이 이상한 사람이 해가 돋는 근처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드디어 여러 나라를 두루 관찰하고 그들 나라의 법령과 습속을 수집하여 나라의 크고 작음의 구별과 각국의 명칭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가 있었다. 其後高句麗背叛又遣偏師致討窮追極遠逾烏丸骨都過沃沮踐肅慎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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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9 삼국지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序
삼국지는 동이를 평정할 때 알게 된 동이 여러 나라의 정보를 바탕으로 씌어졌다. 따라서 당대의 기록이면서 또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라 사료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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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75 삼국사기(1145)
古記에는 "백제는 개국 이래 문자로 사적을 기록한 적이 없다가, 이때에 와서 박사 고흥이 처음으로 書記를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흥이라는 이름이 다른 서적에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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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4 광개토왕릉비
百殘, 新羅는 옛부터 고구려 속민으로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건너와 百殘을 파하고 ... 新羅 ... 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任那加羅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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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4 광개토왕릉비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안라 등이 나타난다. 이들 나라의 존재는 일본서기(720)의 기록과 일치한다. 이들 나라들은 삼국지(289) 이후 성장하여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을 대체한 것이다. 중국 대륙의 변화가 한반도의 변화로 이어지는 경향을 생각해 볼 때, 晉이 316년에 망한 상황이 삼한의 재편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높다. 낙랑과 대방이 각각 313년과 314년에 고려에 병합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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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5 후한서 東夷
동이열전에 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예(濊), 한(韓), 왜(倭)에 대한 설명이 있다. -- 백제와 신라가 나타나지 않고 삼국지(289)와 내용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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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88 송서 夷蠻
이만열전에 고구려, 백제, 왜(倭)를 동이로 분류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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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37 남제서 列傳
열전 제39에 고려국, 가라국 그리고 왜국을 동이로 분류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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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37 남제서 列傳
加羅國은 三韓의 한 종족이다. 건원 원년(479) 국왕 하지가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 이에 조서를 내렸다. “널리 헤아려 비로소 올라오니, 멀리 있는 夷가 두루 덕에 감화됨이라. 가라왕 하지는 먼 동쪽 바다 밖에서 폐백을 받들고 관문을 두드렸으니, 輔國將軍 本國王의 벼슬을 제수함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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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45 삼국사기(1145)
이찬 이사부가 아뢰기를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포폄을 만대에 보이는 것이니, 편찬하지 않으면 후대에 무엇을 보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진실로 그렇다고 여겨서 대아찬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널리 선비들을 모아서 편찬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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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6 수서 東夷
동이열전에 고려, 백제, 신라, 말갈, 유구국 그리고 왜국에 대한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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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論曰
新羅古事에는 “하늘이 금궤를 내려 보냈기에 姓을 金氏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 없으나, 내가 역사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 말이 전해 내려온 지 오래되니 없앨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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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論曰
삼국사기는 한국에 전해 내려오던 古記, 本國古記, 三韓古記, 新羅古事, 海東古記 등의 기록들을 참고로 하여 편찬되었다. 삼국사기의 편찬 작업에는 모두 11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대표자인 김부식이 김알지 설화에 대해 언급한 말을 보면, 그런 전래 기록에 매우 충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의 전래 기록이 신뢰성이 있는지가 문제다. 한국에서 사서를 편찬했다는 기록은 백제에서 375년 기록에 처음 나타나고 신라에서는 545년 기록에 처음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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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韓 요약
서라벌 산곡 사이에 조선의 유민들이 6촌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훗날 진한 6부로 발전하였다. 기원전 57년 6부 사람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나라를 세웠다. 기원전 39년에는 변한이 나라를 바쳐왔고 기원전 20년에는 호공을 마한에 보내 독립을 통고하였다. 기원전 5년에는 동옥저가 말 20필을 바쳐왔고 37년에는 낙랑이 고려에 망하고 그 유민 5천 명이 망명해 오자 6부에 나뉘어 살게 하였다. 61년에는 마한 장군이 복암성을 들어 항복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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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오주갑인상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삼국지의 정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기록을 300년 뒤로 물려보았다. 그랬더니 삼국지와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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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갑인상 전
 BC 0039 삼국사기(1145)    BC 0020 삼국사기(1145)    BC 0006 삼국사기(1145)    0008 삼국사기(1145)    0009 삼국사기(1145)    0016 삼국사기(1145)    0061 삼국사기(1145)    0238 - 0245    0245 ᑀ 삼국지(289) 韓 요약    0280 진서(648)    0280 진서(648)    0281 진서(648)    0281 진서(648)    0286 진서(648)    0286 진서(648)    0287 진서(648)    0313 자치통감(1084)    0316 晉(西晉) 멸망  

오주갑인상 후
 0238 - 0245    0245 ᑀ 삼국지(289) 韓 요약    0261(<BC 0039) 삼국사기(1145)    0280 진서(648)    0280 진서(648)    0280(<BC 0020) 삼국사기(1145)    0281 진서(648)    0281 진서(648)    0286 진서(648)    0286 진서(648)    0287 진서(648)    0290-0390 三韓의 재편    0294(<BC 0006) 삼국사기(1145)    0308(<0008) 삼국사기(1145)    0309(<0009) 삼국사기(1145)    0313 자치통감(1084)    0316 晉(西晉) 멸망    0316(<0016) 삼국사기(1145)    0361(<0061) 삼국사기(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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