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 (1) 한민족의 어원 | 39 |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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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晉·陳壽) 烏丸鮮卑東夷傳 | R
환제·영재 말기에는 한(韓)과 예(濊)가 강성하여 군·현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많은 백성들이 한국(韓國)으로 유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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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晉·陳壽) 烏丸鮮卑東夷傳 | R
경초 연간에 명제가 몰래 대방군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두 군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여러 한국(韓國)의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더해 주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읍장을 주었다. ...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韓國)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진한(辰韓)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그 때 통역하는 관리가 말을 옮기면서 틀리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신지와 한이(韓人)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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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晉·陳壽) 烏丸鮮卑東夷傳 | R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노인들은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나라의 고역을 피하여 한국(韓國)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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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晉·陳壽) 烏丸鮮卑東夷傳 | R
한(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倭)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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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1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414) | R
‘선조(先祖) 왕들이 다만 원근(遠近)에 사는 구민(舊民)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지키며 소제를 맡게 하였는데, 나는 이들 구민들이 점점 몰락하게 될 것이 염려된다. 만일 내가 죽은 뒤 나의 무덤을 편안히 수묘하는 일에는,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略取)해 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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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양서(梁書 唐·姚思廉) 諸夷 | R
백제는 그 시초가 동이의 삼한국(三韓國)인데 하나는 마한(馬韓)이요, 다른 하나는 진한(辰韓)이요, 또 하나는 번한(弁韓)이었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12국이 있었고 마한은 54국이 있었다. 대국은 1만여가, 소국은 수천가로서 모두 10여만호가 되었는데, 백제는 곧 그 중의 한 나라였다. 뒤에 점점 강대하여져서 여러 작은 나라들을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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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9 남사(南史 唐·李延壽) 夷貊 | R
백제는 그 시초가 동이의 삼한국(三韓國)인데, 하나는 마한(馬韓)이요, 다른 하나는 진한(辰韓)이요, 또 하나는 변한(弁韓)이었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12국이 있었고, 마한은 54국이 있었다. 대국은 1만여가, 소국은 수천가로서 모두 10만여호가 되었는데, 백제는 곧 그 중의 한 나라였다. 뒤에 점차 강대하여져서 여러 작은 나라들를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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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320 | R
이 때 고려와 백제의 두 나라 국왕이 신라가 도적을 거두어 일본국에 항복하였다는 것을 듣고 몰래 그 군세를 살피도록 하였다.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군영 밖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서약하여 “지금 이후로는 길이 서쪽 번국이 되어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내관가둔창으로 정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삼한(三韓)이다. 황후가 신라로부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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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390 | R
처음 천황이 뱃속에 있을 때, 하늘과 땅의 신이 삼한(三韓)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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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396 | R
고려인, 백제인, 임나인 그리고 신라인이 함께 내조하였다. 이때 무내숙녜에게 명하여 여러 한인(韓人)을 거느리고 연못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 연못을 한인지(韓人池)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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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398 | R
“무내숙니는 항상 천하를 엿보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들으니 축자에 있으면서 비밀리에 모의하여, ‘홀로 축자를 나누고 삼한(三韓)을 불러들여 나에게 조회하도록 한 다음 장차 천하를 지배하겠다’고 말하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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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443 | R
오자롱은 한국(韓國)에 파견되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초료존은 어우에게 "네가 직접 한국(韓國)에 가서 오자롱을 불러 오너라. 밤낮을 가리지 말고 급히 가거라."라고 말하였다. 곧 담로의 해인 80명을 뽑아 수부로 삼았다. 이에 어우가 바로 한국(韓國)으로 가서 오자롱을 데리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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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463 | R
천황이 전협신의 아들 제군과 길비해부직적미에게 명하여 “너희들은 마땅히 가서 신라를 징벌하라”고 하였다. 이 때 서한 재기 환인지리가 옆에 있다가 나아가 “저희들보다 뛰어난 자가 한국(韓國)에 많이 있으니 불러서 부릴만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천황이 여러 신하들에게 “그러면 마땅히 환인지리를 제군 등에게 딸려 보내 백제 길을 취하고 아울러 칙서를 내려 재주가 뛰어난 자를 바치게 하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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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465 | R
몸은 만 리 밖에서 수고로웠고 목숨이 삼한(三韓)에서 떨어졌으니, 매우 불쌍히 여겨 장례를 담당할 사람을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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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487 | R
紀生磐宿禰가 임나를 점거하고 고려와 교통하였으며, 서쪽에서 장차 삼한(三韓)의 왕노릇하려고 관부를 정비하고 스스로 신성이라고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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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530 | R
모야신이 부름을 받아 대마에 이르러 병에 걸려 죽었다. 장송을 위한 배는 강을 거슬러 올라 근강에 이르렀다. 그 처가 노래하였다. "매방을 거쳐 피리를 불며 배가 올라오네. 근강의 모야라는 젊은 서방님이 피리를 불며 올라오네." 한편 목협자가 처음 임나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 있는 일본인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가라구이(柯羅屨儞 からくに)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목협자는 왔는가. 저 멀리 일기로부터 목협자가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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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537 | R
천황은 신라가 임나를 침략하였으므로 大伴金村大連에게 명령하여 그 아들 磐과 狹手彦을 보내어 임나를 돕게 했다. 이 때 磐은 축자에 머물며 국정을 잡고 삼한(三韓)에 대비하고 있었다. 狹手彦은 가서 임나를 평정하고 또 백제를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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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552 | R
멀리 天竺으로부터 삼한(三韓)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에 따르고 받들어 지녀 존경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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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556 | R
소아대신도목숙녜 등을 왜국의 고시군에 보내어 韓人대신협둔창(여기에서 韓人이란 백제를 이른다), 高麗人소신협둔창을 두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국에 해부둔창을 두도록 하였다. (어떤 책에서는 '각지의 韓人을 대신협둔창의 전부로 삼았다. 고려인을 소신협둔창의 전부로 삼았다. 韓人, 高麗人을 전부로 삼은 것을 가지고 둔창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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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562 | R
그의 아내 대엽자도 함께 잡혔는데 비통하게 노래하기를 “가라구이(柯羅俱爾 からくに)의 성 위에 서서 대엽자는 머리에 쓰는 천을 흔드네. 일본을 향해서.”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화답하기를 “가라구이(柯羅俱爾 からくに)의 성위에 서서 대엽자가 머리에 쓰는 천을 흔드는 것이 보이네. 난파를 향하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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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577 | R
大別王과 小黑吉士를 보내어 백제국의 宰로 삼았다王의 신하로서 명을 받들어 삼한(三韓)에 사신으로 갈 때 스스로 宰라고 칭한다. 한(韓)의 宰가 된다고 하는 말은 대개 옛날의 典範인 듯하다. 지금은 使라고 하는데 나머지는 모두 이를 따른다. 大別王은 어디 출신인지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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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630 | R
난파의 대군과 삼한관(三韓館)을 고치고 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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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645 | R
倉山田麻呂臣이 나아가 삼한(三韓)의 표문을 낭독했다. ... 고인대형은 이 상황을 보고 자기 궁으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한인(韓人)이 안작신을 죽였다(韓政으로 인해 주살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나의 마음은 비통하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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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645 | R
中大兄이 倉山田麻呂臣에게 몰래 이르기를 “三韓이 調를 바치는 날에 반드시 卿으로 하여금 그 표문을 낭독하도록 하겠다”고 하여 마침내 入鹿을 목베고자 하는 모의를 드러내 말하였다. 麻呂臣이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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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648 | R
삼한(三韓, 고려·백제·신라를 이른다)에 학문승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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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662 | R
꽃과 열매가 있는 나무에서 얻는 토산물은 삼한(三韓)에서 가장 기름질 것이며, 옷과 음식의 근원은 천지 사이에 숨어 있는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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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682 | R
삼한(三韓)의 사람들에게 조를 내려 “과거에 10년간의 조세를 면제해 주었는데, 이미 끝났다. 또 더하여 귀화한 첫 해에 함께 온 자손도 아울러 역의 부과를 모두 면제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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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790 | R
대련의 후손이고 곧 일본의 옛 백성인데 지금 한국(韓國)이라 부르고 있으니, 삼한(三韓)에서 새로 도래한 듯하여 부를 때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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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일본서기(日本書紀) 799 | R
천하 신민의 씨족은 많은데, 어떤 것은 근원은 같으면서 따로 갈라져 나오고 또는 근본은 다르나 성은 같은 것이 있다. 족보에 의거한다 해도 바꾼 지가 많이 경과하였고 호적을 조사해 보아도 근본과 줄기를 판별하기가 어려우니 마땅히 천하에 널리 알려 본래의 系帳을 바치게 하라. 삼한(三韓)의 여러 이방인들도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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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7 속일본기 | R
(790년) 壬申 外從5位下 韓國連源 등이, “源 등은 物部大連 등의 후손입니다. 무릇 物部連 등은 각각 사는 지역과 하는 일에 따라 180개의 姓氏로 갈라졌습니다. 이에 源 등의 선조 鹽兒는 父祖가 사신으로 간 나라의 이름으로써 物部連을 고쳐 韓國連이라 하였습니다. 그런 즉 大連의 후손이고 곧 日本의 옛 백성인데 지금 韓國이라 부르고 있으니, 三韓에서 새로 渡來한 듯하여 부를 때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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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5 구당서 | R
(651년 의자왕에게 보내는 당 고종의 조서) 해동의 세 나라는 개국한지 오래이며, 국토가 나란히 있어 실로 개의 이빨처럼 국경이 들쭉날쭉 서로 닿아 있소. 근래에 와서 드디어 국경을 다투고 침공을 하여 조금도 편안할 해가 없었소. 마침내 삼한의 백성(三韓之氓)으로 하여금 목숨이 도마 위에 놓이게 하고, 창을 찾아 분풀이를 하는 것이 아침저녁으로 거듭되니, 짐이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림에 있어 깊이 안타까워하는 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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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 | R
(692년) 우리나라의 선왕 춘추(태종 무열왕)의 시호(諡號)가 우연히 성조(당 태종)의 묘호와 중복되었다. 조칙으로 고치라고 하니, 내 어찌 감히 명령을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생각하건대 선왕 춘추는 매우 훌륭한 덕을 지닌 분이시다. 더구나 살아생전에 김유신이라는 어진 신하를 얻어 한 마음으로 정사에 힘써 삼한(三韓)을 통일하였으니 그가 이룬 업적이 많지 않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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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 | R
엎드려 듣건대 동쪽 바다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 변한, 진한이었습니다. 마한은 고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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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 | R
(673년) 삼한(三韓)이 한 집안을 이루었으니 백성들은 두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비록 태평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또한 세상이 안정되었다고는 할 만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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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삼국유사 | R
삼국지, 견훤과 최치원의 글 그리고 삼국사기 본기의 기록을 종합하여 나름대로 마한의 실체를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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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0-01 조선왕조실록 | R
폐하는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요(堯) 임금, 순(舜) 임금과 같은 성인으로서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의 계통을 이었으니, 오늘날 대황제(大皇帝)의 위호를 올리는 것은 옛 전례에도 맞고 지금의 제도에도 맞는 것으로서, 그 시기를 살펴보아도 옳고 예(禮)에 의거해 보아도 역시 당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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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0-11 조선왕조실록 | R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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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0-13 조선왕조실록 | R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올해 9월 17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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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韓) | 41
BC 1046 - BC 1043 주무왕(周武王) | R    BC 1043 이전 소공(召公) | R    BC 1043 이전 기자(箕子) | R    BC 1043 이전 기자(箕子) | R    BC 1042 - BC 1021 주성왕(周成王) | R    BC 1033 숙우(叔虞) | R    BC 1030 금본죽서기년(今本竹書紀年) | R    BC 0828 - BC 0782 주선왕(周宣王) | R    BC 0828 - BC 0782 詩經/韓奕 | R    BC 0828 - BC 0782 시경/한혁 | R    BC 0828 - BC 0782 詩經/韓奕 | R    BC 0828 - BC 0782 시경/한혁 | R    BC 0828 - BC 0782 詩經/韓奕 | R    BC 0828 - BC 0782 시경/한혁 | R    BC 0828 - BC 0782 잠부론(潛夫論) | R    BC 0824 금본죽서기년(今本竹書紀年) | R    BC 0739 환숙(桓叔) | R    BC 0732 잠부론(潛夫論 85-162) | R    BC 0681 무공(武公) | R    BC 0479 이전 시경/한혁 | R    BC 0479 이전 詩經/韓奕 | R    BC 0403 한(韓), 위(魏), 조(趙)를 제후로 인정 | R    BC 0403 한(韓) | R    BC 0376 진(晉) 멸망 | R    BC 0230 한(韓) 멸망 | R    BC 0222 이전 위략(魏略) | R    BC 0209 위(衛) 멸망 | R    BC 0209 - BC 0206 한광(韓廣) | R    BC 0209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202 이전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195 이후 사기(史記 BC 91) | R    BC 0195 이후 삼국지(三國志 289) | R    BC 0195 이후 위략(魏略) | R    BC 0195 이후 후한서(後漢書 445) | R    BC 0195 이후 잠부론(潛夫論 85-162) | R    BC 0108 한음(韓陰) | R    其後韓西亦姓韓 爲衛滿所伐 遷居海中 | 3    韓 (西周) | R    세 가지 한(韓) | R    우리 나라 한(韓)의 기원 | R    한원(韓原) |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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