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신라의 반도 통일로 형성되었다. 이 반도 통일을 완성한 시점의 북방 경계는 임진강이었다. 이후 대동강까지 영역이 확장되었고 왕씨고려 시기에는 압록강까지 그리고 이씨조선 시기에는 두만강까지 영역이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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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4? 三國史記(1145) 열전 강수
▐ 강수가 中原京의 沙梁人이라면 그의 조상은 558년에 신라의 귀족과 6부의 부유한 사람들이 國原으로 사민될 때 포함된 사람일 수 있다. 國原은 원래 고구려였는데 신라가 차지하고 中原으로 바꾸었으며 서라벌의 6부에는 沙梁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수가 뿌리라고 밝힌 任那加良은 南加羅가 된다. 南加羅는 53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지만 加羅는 562년에야 신라에 병합되었기 때문이다.
1724#3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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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고려사절요 태조 원년
왕이 뭇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옛 도읍인 평양이 황폐한 지 이미 오래되어 가시나무가 우거지고 번인(蕃人)들이 그 사이에서 사냥하고 침략하니 마땅히 백성을 평양에 옮겨 살게 하여서 번병(藩屛)을 튼튼하게 하도록 하라." 하였다. 드디어 황주(黃州 황해 황주)ㆍ봉주(鳳州 황해 봉산(鳳山))ㆍ해주(海州)ㆍ백주(白州 황해 배천(白川))ㆍ염주(鹽州 황해 연안(延安)) 여러 고을의 인호(人戶)를 나누어 평양에 살게 하여 대도호(大都護)로 만들고, 당제(堂弟) 식렴
1724#35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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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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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 고려사절요
서희가 다시 아뢰기를, “신이 소손녕과 약속하기를, '여진을 소탕하여 평정하고 옛 땅을 수복한 후에 조빙을 통하겠다.' 하였는데 이제 겨우 압록강 안쪽만 수복하였으니, 청컨대 강 바깥쪽까지 수복하기를 기다렸다가 조빙을 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왕이 말하기를, “오래도록 조빙을 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다." 하고 마침내 박양유를 보내었다.
1724#3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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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 고려사절요
용진현(龍津縣) 사람 조휘(趙暉)와 정주(定州) 사람 탁청(卓靑) 등이 삭방도(朔方道 강원도) 등주와 문주의 여러 성 사람과 꾀를 합하여 몽고병을 이끌고 빈 틈을 타서 집평과 등주부사 박인기(朴仁起)와 화주부사 김선보(金宣甫), 경별초(京別抄) 등을 죽이고, 드디어 고성을 쳐서 집을 불사르고 인민을 죽이고 노략질하여, 마침내 화주 이북의 땅을 몽고에 붙였다. 몽고에서는 이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화주에 설치하여 조휘를 총관으로 삼고, 탁청을 천호로
1724#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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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9.10.28 고려사(1451)
최탄이 서경유수 및 용주·영주·철주·선주·자주 등 5개 주의 수령을 죽이니, 서북지역 여러 고을의 관리가 모두 반적에게 살해되었다. 최탄이 몽고 사신 탈타아에게 거짓말로 말하기를, “고려는 온 나라가 장차 깊은 섬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여러 고을의 수령을 죽이고 원(元)에 들어가서 보고하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의주부사 김효거 등 22인을 붙잡아서 몽고에 투항하였다.
1724#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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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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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 조선왕조실록 세종 20년
지금부터 향원(鄕愿)·토호(土豪)로 혹은 전장(田莊)을 널리 점령하였거나, 혹은 민정(民丁)을 은닉하였거나, 혹은 공사(公私)의 비자(婢子)를 첩으로 삼아서 그 욕망을 마음대로 채우거나, 혹은 여러 사람을 불러 모아 환자 쌀을 받아 내거나, 혹은 곡식을 풀어서 이자놀이를 하여서 백성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이윤을 독차지하는 그런 무리를 찾아내어서, 죄상을 조사하여 밝혀 내고 보낸다면, 가는 자도 죄상을 자복하고 가는 것이므로 원망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고,
1724#3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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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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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 조선왕조실록 성종 11년
“내가 듣건대, 그 도는 본래 토지가 척박(瘠薄)하여서 백성들의 사는 것이 희소(稀少)하므로, 조종조(祖宗朝)부터 부득이 백성을 옮겨 살게 하여서 부성(阜盛)하기를 바랐으나, 백성의 피폐함이 더욱 심하다고 하니, 지금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삼도(下三道)의 부유한 백성을 뽑아서 채우고자 하니, 아무아무 고을이 피폐하여 마땅히 몇 호를 살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경(卿)이 친해 살펴서 아뢰라.”
1724#3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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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 조선왕조실록 성종 14년
“평안도와 황해도 두 도는 나라의 서문(西門)인데, 조종조(祖宗朝)에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으나 사망하여 거의 없어졌으니, ... 하삼도(下三道)에 공사천(公私賤)을 숨기고 부리는 자가 매우 많으니, 이제 공사천을 혹시 2명 이상 여러 해 동안 부리는 자로 공신(功臣)·의친(議親)을 물론하고 3품 이하는 모두 들어가서 살게 하며, 또 삼류(三流)의 죄를 범한 자도 옮기면 몇 해 안에 2, 3천 호(戶)에 이를 것입니다.”
1724#3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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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 조선왕조실록 성종 19년
“경상도(慶尙道)는 땅이 좁고 백성이 많아서 백성이 가진 논에 종자를 뿌리는 수량이 많아도 한 섬에 미치지 못하고 적게는 열 말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한 자, 한 치의 땅을 서로 빼앗기를 다투어 사람을 상해하는 자가 종종 있으니, 이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근래에 한재(旱災)로 인하여 아직 입거(入居)를 정지하였으나, 양계(兩界)는 땅이 넓고 사람이 적으니 미리 대비하지 아니할 수 없으며, 입거하게 하는 일도 늦출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 이미
1724#3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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