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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전후의 민중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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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유족회
학살지가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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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10-17 윤보선
"부산과 대구는 6.25당시 후퇴하지 않은 곳으로 빨갱이가 많고 인민군이 침입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 6.25당시 후퇴하지 않은 곳인데 왜 빨갱이가 많고 인민군이 침입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사람이 많을까? 이것은 보도연맹 학살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후퇴하지 않은 곳에서 보도연맹 학살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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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10-17 윤보선
"간첩 황태성의 자금 20만불을 정치자금으로 써서 공화당을 조직하였다. 박정희가 물러나야 미국의 원조도 증가된다. 박정희의 친형이 10.1폭동사건에 좌익분자로 총살당하였다. 박정희도 여수순천 반란사건에 관련이 있었다." -- 그러나 국민들은 빨갱이일지도 모르는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당시 이북은 지상낙원을 자처할 만큼 잘 살았는데 반해 이남은 거지와 미군위안부가 우글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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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 Tomb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구자환 감독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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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창 골짜기
가창댐 아래가 학살현장이다. '골로 간다'는 표현은 이 학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가창댐 공사를 할 때 인골이 너무 많이 나오자 굴착기 기사가 일을 그만두었다는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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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창 대한중석 달성광산
트럭으로 사람을 실어와 화약창고에서 죽였다고 한다. 이곳도 가창 골짜기로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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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박산골
1951년 2월 11일에 수용된 주민들 중 군경가족, 공무원가족, 우익청년단 가족 등을 빼고 남은 주민 533명을 박산골 계곡, 홍동골 골짜기로 끌고 갔다. 이중 12명을 남겨 두고 기관총과 소총으로 모두 학살하였으며 남은 12명에게 희생자들의 사망여부를 확인시킨 후 다시 이들도 사살했다. 당시 1명이 살려달라고 필사적으로 애원하자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위협한 뒤 살려두고 그대로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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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북상 위천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과 연결되었다고 의심하고 사람들을 죽였다. 때로는 공비에 의한 희생으로 날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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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 코발트광산
파티마재활요양병원과 인터불고경산CC 주차장 사이에 갱도 입구가 있다. 이전에는 안경공장이 있었으나 망해서 흉가로 남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정부 추산 2000여 명, 유가족 추산 3500여 명이 학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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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 금산재 회천교
고령지역의 보도연맹원은 200명이 넘었는데 대부분 금산재와 회천교 백사장에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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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위 비호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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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 대뱅이재 돌고개
김천형무소가 소개를 완료한 날이 7월 16일이었다. 그 전에 재소자 349명이 대구형무소로 이송되었으며, 나머지 600여 명의 재소자가 김천지구CIC, 3사단 22연대 헌병대, 경찰에 의해 구성면 송죽리 돌고개, 구성면 광명리 대뱅이재, 대항면 직지사계곡에서 집단희생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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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신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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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앞산빨래터와 학산
앞산빨래터에서는 대구인민봉기때, 학산에서는 한국전쟁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참고로 가까운 상인역에서는 1995년 지하철 공사 중 가스가 폭발하여 백여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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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파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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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곡안리
성주 이씨 제실에 모여 있던 86명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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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괭이바다
마산과 거제 칠천도 사이의 바다. 1681명의 민간인이 총살되거나 바다에 수장되었다. '물 먹는다'는 말은 이 사건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참고로 인접한 거제도에서는 이씨조선이 건국될 때 왕씨들이 집단으로 수장되었다고 한다.
http://qindex.info/i.php?f=2019#2025
 
 마산 여양리
광주사태, 용산참사 그리고 세월호 침몰은 건국전후의 괴뢰반동학살과 맥락이 다른데 왜 끼워넣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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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 비금도 바다
목포형무소에 수용되었던 재소자 1000여명과 국민보도연맹원 400여명이 경찰 후퇴 전날인 1950년 7월 23일 전남도경 경비선 ‘금강호’에 실려 신안군 비금면 인근 해상에서 수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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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 아작골
예비검속된 영천지역 주민 400여명이 국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당시 영천향교에는 서북청년단 출신으로 구성된 호림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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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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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의료원 뒷산
보도연맹원들을 소집해놓고 명단을 비교해가면서 사람들을 트럭에 실어서 보냈다. 트럭에는 최대한 많은 인원을 싣기 위해 바닥에 차례로 사람들을 눕게 한 후 그 위에 가마니를 하나 깔고 다시 사람들을 눕게 하는 식으로 여러 겹으로 쌓아서 실었다. 이렇게 트럭에 실린 사람들은 포항의료원 뒷산에 길게 구덩이를 파고 죽 세워 총살했다고 한다. 희생된 수는 최대 2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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