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遼黑史 > 1115~1234 金 > 1107~1109 윤관의 여진 정벌

개마대산 동쪽의 여진을 정벌하고 공험진에서부터 함주, 영주, 복주, 웅주 그리고 길주까지 성을 쌓았다가 1년만에 물러났다. 여진은 이 지역에 수백년 동안 살아왔었고 이후로도 수백년 동안 살았다.
 
1107.10.20 高麗史(1451)
장차 여진을 정벌하려고 순천관 남문에 나아가 열병하였으며 은과 포, 술과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20666 SHARED
 
1107.10.20+ 金史(1344)
1106년에 고려가 黑歡方石을 사신으로 보내와 직위 계승을 축하하자 康宗은 盃魯로 하여금 보빙하도록 하고 망명한 백성들을 요구하였다. 고려가 허락하면서 “사신을 파견하여 국경에 이르러 인수하여 가라.” 고 하니 康宗은 이를 믿고 完顏部 阿聒·烏林荅部 勝昆 등으로 하여금 국경으로 가 인수하도록 하고 馬紀嶺 乙隻村에서 사냥하면서 기다렸다. 阿聒·勝昆 등이 국경에 도착하자 고려는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살해하고 曷懶甸으로 출병시켜 9성을 쌓았다.
17550 SHARED
 
1107.10.20+ 金史(1344)
▐ 康宗은 阿骨打의 형 吳刺束이다.
23065 SHARED
 
1107.10.20+ 高麗史(1451)
윤관과 오연총이 東界에 이르러 長春驛에 병사를 주둔시켰는데 무릇 17만으로 20만이라고 칭했다. 병마판관 최홍정·황군상을 定州와 長州 2주에 나누어 보내고 여진 추장에게 속여서 말하기를, “나라에서 장차 許貞과 羅弗 등을 돌려보내고자 하니 와서 명령을 들으라.”고 하고 매복하여 기다렸다. 추장들이 그것을 믿어 古羅 등 400여 인이 이르니 술을 마시고 취하게 하여, 매복해 있는 군사를 보내어 그들을 모두 죽였다.
22984 SHARED
 
1107.10.20+ 高麗史(1451)
❶ 윤관이 스스로 53,000명을 이끌고 정주 大和門으로 나가고 ❷ 중군병마사 좌복야 김한충이 36,000명을 이끌고 安陸戍로 나갔으며 ❸ 좌군병마사 좌산기상시 문관이 33,900명을 이끌고 정주 弘化門으로 나갔다. ❹ 우군병마사 병부상서 김덕진이 43,800명을 이끌고 宣德鎭의 安海戍·拒防戍의 2수 사이로 나가고 ❺ 선병별감 이부원외랑 양유송, 원흥도부서사 정숭용, 진명도부서부사 견응도 등이 선병 2,600명을 이끌고 道鱗浦로 나갔다.
23387 SHARED
 
1107.10.20+ 高麗史(1451)
大乃巴只村을 지나 한나절을 행군하였다. 文乃泥村에 이르러 冬音城을 파괴시켰다. 石城의 남녀노소 모두 섬멸하였다. ❶ 윤관의 군대는 大乃巴只로부터 37개 촌을 격파하여 2,120명의 목을 베고 500명을 사로잡았고 ❷ 중군은 高史漢村 등 35개 촌을 격파하여 380명의 목을 베고 230명을 사로잡았으며 ❸ 좌군은 深昆村 등 31개 촌을 격파하여 950명의 목을 베었고 ❹ 우군은 廣灘村 등 32개 촌을 격파하여 290명의 목을 베고 300명을 사로잡았다.
23388 SHARED
 
1107.10.20+ ┆定州
▐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定平의 옛 이름이 定州라고 되어 있다.
22987 SHARED
 
1107.10.20+┆長州
▐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長谷의 옛 이름이 長州라고 되어 있다. 定平 인근의 金津江이 과거 長溪川이라 불렸으므로 이곳을 長州로 비정한다.
21600 SHARED
 
1107.12.15 高麗史(1451)
윤관이 여진을 쳐서 크게 패배시키자, 여러 장수를 보내 경계를 정하고 雄州·英州·福州·吉州의 4주에 성을 쌓았다.
20667 SHARED
 
1107.12.15 高麗史(1451)
윤관이 蒙羅骨嶺 아래에 성랑 950칸을 쌓아 英州라 하고, 火串山 아래에 992칸을 쌓아 雄州라 하였다. 吳林金村에 774칸을 쌓아 福州라 하였다. 弓漢伊村에 670칸을 쌓아 吉州라 하였다.
21323 SHARED
 
1107.12.15┆ 英州
▐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北靑의 옛 이름이 英州라고 되어 있다. 蒙羅骨嶺은 압록강 유역에서 북청으로 오기 위해 넘어야 하는 厚致嶺 또는 香嶺으로 추정된다.
21331 SHARED
 
1107.12.15┆ 福州
▐ 福州→端州→端川.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端川의 옛 이름이 福州라고 되어 있다.
21318 SHARED
 
1107.12.15┆ 雄州
▐ 윤관은 동쪽으로 火串嶺에 이르고 북쪽으로 弓漢伊嶺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하고 火串嶺 아래에 雄州를 설치하고 弓漢伊村에 吉州를 설치하였다가 이내 모두 돌려주었다. 250여년 후 다시 이 지역을 차지하였을 때는, 吉州를 옛 雄州 북쪽에 설치하고 옛 雄州까지 관할하였다.
23053 SHARED
 
1107.12.15┆ 吉州
23269 SHARED
 
1107.12.24 高麗史(1451)
東女眞의 裊乙乃 등 3,230인이 내부하였다.
20759 SHARED
 
1108.02 高麗史(1451)
咸州 및 公嶮鎭에 성을 쌓았다. ▐ 雄州·英州·福州·吉州 4주에 성을 먼저 쌓고 이때 咸州·公嶮鎭에 성을 쌓아 6성이 되었다.
23052 SHARED
 
1108.02 咸州
▐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咸興의 옛 이름이 咸州였다고 되어 있다.
23007 SHARED
 
1108.02.11 高麗史(1451)
여진이 雄州를 포위하자 최홍정이 성문을 열고 나가 격파하여 그들을 크게 물리쳤다. 포로로 잡은 80명의 머리를 베고 수레와 말과 무기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획득하였다.
20763 SHARED
 
1108.02.13 高麗史(1451)
상서 유택을 咸州대도독부사로 임명하고 英州·福州·雄州·吉州 4개 주와 公嶮鎭에 방어사를 설치하였다.
20764 SHARED
 
1108.02.27 高麗史(1451)
윤관이 여진을 평정하고 새로 6성을 쌓았으므로 표문을 받들어 하례하였다. 公嶮鎭에 비를 세워 경계로 삼았다.
20765 SHARED
 
1108.02.27 高麗史(1451)
윤관이 여러 장수를 나누어 보내 지계를 획정하였는데, 동쪽으로는 火串嶺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弓漢伊嶺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는 蒙羅骨嶺에 이르렀다. 또 일관 최자호을 보내어 몽라골령 아래의 땅을 살펴 성랑 950칸을 짓고 英州라고 불렀고 火串嶺 아래에 992칸을 짓고 雄州라 불렀으며 吳林金村에 774칸을 짓고 福州라고 불렀고 弓漢伊村에 670칸을 짓고 吉州라고 불렀다. 또 護國仁王寺와 鎭東普濟寺 두 절을 英州城 안에 창건하였다.
22973 SHARED
 
1108.02.27 高麗史(1451)
6성을 새로 설치하였으니, 첫 번째는 鎭東軍 咸州大都督府로, 병민이 1,948정호이다. 두 번째는 安嶺軍 英州防禦使로 병민이 1,238정호이다. 세 번째는 寧海軍 雄州防禦使로 병민이 1,436정호이다. 네 번째는 吉州防禦使로 병민이 680정호이다. 다섯 번째로 福州防禦使로 병민이 632정호이다. 여섯 번째는 公嶮鎭防禦使로 병민이 532정호이다.
21325 SHARED
 
1108.02.27 世宗實錄地理志
1107년에 윤관과 오연총이 군사 17만 명을 거느리고 여진을 몰아내고 장군을 나누어 보내 경계를 획정하였다. 동쪽으로 火串嶺까지 북쪽으로 弓漢嶺까지 서쪽으로 蒙羅骨嶺까지를 우리 강토로 삼았는데 火串山 아래에 성곽 9백 52간을 쌓고 이름을 雄州라 하고 吳林金村에 7백 74간을 쌓고 이름을 福州라고 하고 蒙羅骨嶺 아래에 9백 52간을 쌓고 이름을 英州라 하고 弓漢村에 6백 74간을 쌓고 이름을 吉州라고 하였다. 길주가 북쪽에 있고 웅주가 남쪽에 있다.
21319 SHARED
 
1108.02.27± 윤관의 옥저인 학살
여진은 본디 高麗의 부락으로서 盖馬山 동쪽에 모여 살았다. 그 땅은 사방 300리로 동쪽은 대해에 이르렀고 서북의 경계는 盖馬山이며 남쪽으로는 長州·定州의 2주에 닿았는데, 산천은 수려하고 토지는 기름져서 우리 백성들이 살만하였다. 본디 高麗의 소유로 옛 비석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삼국지(289)에 나오는 東沃沮와 묘사가 비슷하므로 沃沮가 女眞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20656#23058 SHARED
 
1108.03.29 高麗史(1451)
여진이 英州城 밖에 진을 치자 관군이 나아가 싸워 그들을 격퇴하였다. 20명의 목을 베고 무기와 말 8필을 노획하였다.
20766 SHARED
 
1108.03.30 高麗史(1451)
윤관이 宜州·通泰·平戎에 세 성을 쌓고 남계의 백성을 이주시켜 새로 쌓은 9성을 채웠다. ▐ 咸·英·雄·福·吉·宜六州 及公嶮·通泰·平戎三鎭 함주·영주·웅주·복주·길주·의주의 6주 및 공험진·통태진·평융진의 3진이 9성이다.
20907 SHARED
 
1108.03.30┆宜州
▐ 宜州는 새로 점령한 지역이 아니다.
22959 SHARED
 
1108.04.02 高麗史(1451)
윤관을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 지군국중사로, 오연총을 상서좌복야 참지정사로 임명하였다. 내시낭중 한교여를 보내 조서와 고신, 자주색으로 수를 놓은 안장과 구마 2필을 가지고 雄州에 이르러 그것을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20909 SHARED
 
1108.04.08 高麗史(1451)
여진이 목책을 설치하고 雄州城을 포위하였다.
20963 SHARED
 
1108.04.08┆金史(1344)
강종이 돌아오자 여러 사람들은 모두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합니다. 요나라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를 탓할까 두렵습니다.” 하였으나 태조만이 홀로 “만약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찌 曷懶甸만 잃어버릴 뿐이겠는가? 여러 부가 모두 우리 소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강종도 그렇게 여기고 마침내 斡塞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도록 하여 고려군을 크게 쳐부수었다.
23068 SHARED
 
1108.04.09 高麗史(1451)
윤관과 오연총이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왔다. 왕이 고취와 군위를 갖추어 그들을 맞이하도록 명령하였다. 帶方侯 왕보와 齊安侯 왕서를 보내 동교에서 위로연을 베풀었다. 윤관과 오연총이 경령전에 이르러 복명하고 부월을 반환하여 바치자, 왕이 문덕전에 나아가 윤관과 오연총, 여러 재추를 불러 전각 위로 오르게 하고 친히 변방의 일을 물었는데,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20971 SHARED
 
1108.04.23 高麗史(1451)
병마부원수 오연총을 보내 부월을 주고 가서 雄州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20972 SHARED
 
1108.07.07 高麗史(1451)
행영병마원수 문하시중 윤관에게 다시 여진을 정벌하라고 명령하였다.
20998 SHARED
 
1108.07.25 高麗史(1451)
행영병마판관 어사 신현 등이 수군으로 寧仁鎭에서 적을 물리치고 20명의 머리를 베었다.
21046 SHARED
 
1108.08.10 高麗史(1451)
오연총이 돌아왔다. 왕이 문덕전에서 불러 보고 친히 변방의 일을 물었으며 잔치를 베풀어 그를 위로하였다.
21264 SHARED
 
1108.08.11 高麗史(1451)
병마판관 왕자지와 척준경이 咸州와 英州에서 여진과 싸워서 33명의 머리를 베었다.
21265 SHARED
 
1108.08.16 高麗史(1451)
병마판관 유익과 장군 송충, 신기군 박회절 등이 여진과 吉州에서 싸우다가 죽자, 유익에게는 병부시랑 지어사대사를, 송충에게는 상장군 병부상서를 추증하였다.
21271 SHARED
 
1108.09.16 高麗史(1451)
행영병마판관 왕자지와 척준경이 沙至嶺에서 여진을 공격하여 27명의 머리를 베고 3명을 사로잡았다.
21274 SHARED
 
1109.01.04 高麗史(1451)
동계행영병마녹사 왕사근과 하경택 등이 咸州에서 여진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21275 SHARED
 
1109.03.11 高麗史(1451)
행영병마판관 허재와 김의원 등이 吉州의 관문 밖에서 여진과 싸워 30급을 베고 철갑과 소와 말을 포획하였다.
21281 SHARED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1109.04.30 高麗史(1451)
東女眞이 다시 史顯을 우리의 국경으로 보내 화친을 요청하였다.
21282 SHARED
 
1109.05.06 高麗史(1451)
행영병마에서 아뢰기를, “여진이 宣德鎭을 침략하여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해 갔습니다.”라고 하였다.
21283 SHARED
 
1109.05.06┆宣德鎭
정평군 선덕리.
23117 SHARED
 
1109.05.09 高麗史(1451)
東蕃의 적은 祖宗 이래로 우리나라의 힘에 의지하여 큰 은택을 입어 왔는데도 지금은 배은망덕하게도 멀리 있는 적까지 불러 모아 국경을 침범하였다. 1104년에는 끊임없이 군사를 내어 우리 군사와 백성을 살해하였으며 때로는 생포하여 노예로 삼은 자들도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 선왕의 뜻을 계승하고자 군사를 일으키고 고을을 설치하고 성을 쌓았다. 그러나 적의 잔당은 場寨를 설치하고 吉州를 공격해 왔기에 다시 군사를 독려해 공격하고자 한다.
21285 SHARED
 
1109.05.16 高麗史(1451)
여진이 吉州를 포위하니 오연총이 군사를 이끌고 구하려 하였으나 크게 패하였다.
21284 SHARED
 
1109.05.16ꜛ 金史(1344)
6월에 고려가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와 도전하자 斜塞이 패전시키고 진격하여 그 성을 포위하였다.
23066 SHARED
 
1109.05.16ꜛ 高麗史(1451)
여진이 다시 여러 부족을 모아 吉州를 수개월 포위하고 성에서 10리 거리에 작은 성을 쌓아 6개의 목책을 세우고 매우 급하게 성을 공격하였다. 오연총이 그것을 듣고 분개하여 나가려고 하니 왕이 다시 부월을 주어 보냈다. 행렬이 公嶮鎭에 이르니 적이 길을 막고 갑자기 공격하여 우리 군사들이 크게 패하였으며 장졸들이 갑옷을 벗어 던지고 여러 성으로 흩어져 들어가니 성이 함락될 때 사상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23056 SHARED
 
1109.05.16¦公嶮鎭
公嶮鎭의 위치를 추정하는 데는 두 가지 기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는 그곳에 경계비를 세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吉州를 구원하러 가다 그곳에서 적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경계비를 세울 곳으로는 동쪽 경계인 火串嶺이 최적이고 吉州를 구원하는 군대는 雄州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雄州 북쪽이자 火串嶺 아래인 夫瑞坪 남쪽을 公嶮鎭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수백년 후 다시 설치된 吉州의 치소가 있던 곳으로 지금의 吉州다.
22965 SHARED
 
1109.05.16¦曷懶
金史에 나오는 사묘아리의 무용담과 가장 비슷한 사건은 1109년에 있었던 공험진 전투다. 그렇다면 그 무용담에 나오는 曷懶水는 공험진 전투가 벌어졌던 吉州를 지나는 浮瑞川이 된다. 1107년에 윤관이 점령지에 명칭을 붙일 때 合懶를 咸州라 한 것을 보면 吉州라는 명칭도 曷懶에서 나온 듯하다.
23365 SHARED
 
1109.06.12 高麗史(1451)
윤관과 오연총이 군대를 이끌고 吉州를 구원하려다가 여진이 화친을 요청한다는 소식을 듣고 定州로 되돌아왔다.
21286 SHARED
 
1109.06.12 高麗史(1451)
오연총이 스스로를 탄핵하는 장계를 갖추어 올리고는 윤관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吉州로 나아가려 하였는데, 마침 적이 사신을 보내 강화를 청하여 결국 돌아왔다.
23057 SHARED
 
1109.06.23 高麗史(1451)
재상과 대간 및 6부 관리를 불러 9성의 반환을 의논하였다. 평장사 최홍사 등 28인은 그렇게 하자고 하였으나 예부낭중 박승중과 호부낭중 한상은 반대하였다.
21287 SHARED
 
1109.06.26 高麗史(1451)
東蕃의 사신 褭弗과 史顯 등이 내조하였다.
21288 SHARED
 
1109.06.27 高麗史(1451)
褭弗과 史顯 등 6인을 접견하고 입조한 연유를 묻자 “옛날 우리 太師인 盈歌가 일찍이 이르기를 ‘우리 조상도 大邦으로부터 나왔으니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귀부하는 것이 의리에 맞는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태사인 烏雅束 역시 대국을 부모의 나라로 삼고 있습니다. 만약 9성을 되돌려주어 우리의 생업을 편안하게 해주시면, 자손대대에 이르기까지 공물을 정성껏 바칠 것이며 감히 기와 조각 하나라도 국경에 던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21289 SHARED
 
1109.07 金史(1344)
7월에 고려가 다시 강화하자고 요청하니 강종은 “조건이 맞으면 강화하라.” 고 하였다. 고려가 도망하여 들어간 백성의 송환을 허락하고 9성의 병사도 철수시키며 침략한 옛 땅도 반환하겠다고 하자 마침내 그들과 강화하였다.
23067 SHARED
 
1109.07 金史(1451)
七月 高麗請和 盡歸前後亡命及所侵故地 退九城之戍 遂與之和 7월에 고려가 화친을 요청하면서 전후에 망명한 자들과 침략한 옛 땅을 모두 돌려주고 9성 방어에서 퇴각함으로써 드디어 고려와 화친하였다.
23087 SHARED
 
1109.07.02 高麗史(1451)
재추 및 대성·제사·지제고·시신·도병마판관 이상과 문무 3품 이상의 관리를 선정전에 모이게 하여 9성의 반환에 대한 가부를 물으니 모두 돌려주는 것을 옳다고 하였다.
21290 SHARED
 
1109.07.03 高麗史(1451)
선정전 남문에 거둥하여 褭弗 등을 접견하고 9성의 반환을 허락하자, 요불이 감격하여 울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왕이 물품을 하사하고 돌려보내면서 내시 김향에게 명령하여 국경까지 호송하게 하였다. 이어서 원수 등에게 조서를 내려 9성을 반환하려는 뜻을 타일렀다.
21291 SHARED
 
1109.07.18 高麗史(1451)
최홍정과 문관이 여진 추장 居熨伊 등에게 “너희가 9성의 반환을 요청했으니 마땅히 이전에 했던 약속처럼 하늘에 대해 맹세하라.”라고 하였다. 추장 등은 咸州 성문 밖에 제단을 설치하고 “지금 이후 대대손손까지 악한 마음을 품지 않고 해마다 조공을 바칠 것입니다.”라고 맹세하고 물러갔다. 弘正等始自吉州 以次收入九城戰具資粮于內地 최홍정 등은 길주부터 차례로 9성의 전투 장비와 군량을 내지로 거두어 들였다.
21292 SHARED
 
1109.07.19 高麗史(1451)
東界의 崇寧鎭과 通泰鎭 2진에 축조한 성을 철거하였다.
21293 SHARED
 
1109.07.21 高麗史(1451)
英州·福州의 2주와 眞陽鎭에 축조한 성을 철거하였다.
21294 SHARED
 
1109.07.22 高麗史(1451)
咸州·雄州의 2주와 宣化鎭에 축조한 성을 철거하였다. ▐ 9성에서의 철수는 여진의 호감을 샀고 그들의 협력을 받으며 이루어졌기 때문에 굳이 먼 곳부터 철수할 필요가 없었다.
21310 SHARED
 
1109.08.02 高麗史(1451)
신기군 군사들이 東界에서 돌아왔다. 왕이 중광전 서루에 거둥하여 그들을 위로하며 이르기를, “동계 전투에서의 패배는 장수의 잘못이니 내가 어찌 너희의 노고를 잊겠는가?”라고 하였다.
21312 SHARED
 
1110
1110
22962 SHARED
 
1111 高麗史(1451)
吉州는 1111년에 中城을 쌓았다. ▐ 1109년에 9성을 돌려주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1111년에 중성을 쌓았다는 이야기는 매우 어색하다.
21406 SHARED
 
1111 高麗史(1451)
公嶮鎭은 1111년에 山城을 쌓았다. ▐ 1111년에 吉州에 中城을 쌓았다는 기록과 함께 당시 정황과 맞지 않는다.
23232 SHARED
 
1388 王高 禑王 表
大明欲建鐵嶺衛 禑遣密直提學朴宜中 表請曰 명에서 철령위를 세우고자 하니 우왕이 밀직제학 박의중을 보내어 표문으로 청하였다. "切照鐵嶺迆北 歷文高和定咸等諸州 以至公嶮鎭 自來係是本國之地 철령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고주·화주·정주·함주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21737 SHARED
 
1388┆ 文州
23118 SHARED
 
1388┆ 高州
22969 SHARED
 
1388┆ 和州
21515 SHARED
 
1392 高麗史(1451)
速頻·失的覓·蒙骨·改陽·實憐·八隣·安頓·押蘭·喜剌兀·兀里因·古里罕·魯別·兀的改 땅은 원래 우리나라의 공험진 경내여서 이미 초유를 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귀부하지 않고 있으니 도리에 어긋난다.
23046 SHARED
 
1404 李朝 太宗 奏
遣計稟使藝文館提學金瞻如京師 瞻與可仁偕行 奏本云 계품사 예문관 제학 김첨을 보내어 경사에 가게 하였는데, 첨이 왕가인과 함께 갔다. 주본은 이러하였다. "照得 本國東北地方 自公嶮鎭歷孔州吉州端州英州雄州咸州等州 俱係本國之地 조사해 보건대,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으로부터 공주·길주·단주·영주·웅주·함주 등 고을이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21738 SHARED
 
1404┆ 孔州
23055 SHARED
 
1451 高麗史
1109년에 길주로부터 시작하여 9성의 전투 장비·군량을 내지로 거두어 들였고 마침내 崇寧·通泰·眞陽의 세 진 및 영주·복주의 성을 철거하였다. 또 함주·웅주 및 宣化鎭의 성을 철거하고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함주·영주·웅주·복주·길주·의주의 6주 및 공험진·통태진·평융진의 3진이 9성이다. 성을 철거하고 여진에게 돌려줄 때에 의주 및 공험진·평융진이 없고 숭령진·진양진·선화진이 추가로 보이고 설치한 호의 수가 각기 같지 않다.
23054 SHA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