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195~0313 朝鮮·樂浪史 > 0307~0436 鮮卑燕 > 0316⁻ 百濟의 요서점유?

송서에는 고려가 요동을 차지하자 백제는 요서를 차지하고 진평군 진평현을 설치했다고 되어 있는데, 서진 말에 고려는 요동을 차지하지 못했고 백제가 요서를 차지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당시 창려, 요동 등 서진의 평주는 모용부 선비가 차지했고 요서, 북평 등 유주는 단부 선비가 차지했었다. 고려의 자리에 모용을 넣고 백제의 자리에 단을 넣어야 자연스럽다. 그리고 진평이란 지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북평군이 있었을 뿐이다.
 
0488 ❶ 宋書
高驪略有遼東┆百濟略有遼西┆百濟所治謂之晋平郡晋平縣
1989#32097 SIBLINGS CHILDREN 32097
 
0495 ① 百濟 表文
庚午年 獫狁弗悛 舉兵深逼 匈梨張惶 崩若海蕩
1989#7365 SIBLINGS CHILDREN 7365
 
0526~0539 ❷ 梁職貢圖
晉末┆駒麗畧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1989#32098 SIBLINGS CHILDREN 32098
 
0537 ② 南齊書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入 襲擊虜軍大破之
1989#10000 SIBLINGS CHILDREN 10000
 
0636 ❸ 梁書
晉世┆句驪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1989#32099 SIBLINGS CHILDREN 32099
 
0659 ❹ 南史
晉世┆句麗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1989#32100 SIBLINGS CHILDREN 32100
 
0801 ❺ 通典
晉時┆句麗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今柳城北平之間
1989#32101 SIBLINGS CHILDREN 32101
 
1084 ③ 資治通鑑
永明六年 魏遣兵擊百濟 為百濟所敗
1989#32110 SIBLINGS CHILDREN 32110
 
1145 ④ 三國史記
東城王 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1989#32112 SIBLINGS CHILDREN 32112
 
1778 ❻ 東史綱目
이와 같은 여러 말은 모두 중국에서 그릇 전문된 것인데 억단하여 의견을 세워 놓은 것이다.
1989#32102 SIBLINGS CHILDREN 32102
 
2003 ❼ 고등학교 교과서
정복 활동을 통하여 축적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백제는 수군을 정비하여 중국의 요서 지방으로 진출하였고, 이어서 산둥 지방과 일본의 규슈 지방에까지 진출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였다.
1989#32103 SIBLINGS CHILDREN 32103
 
...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history
history
1989#31636 SIBLINGS CHILDREN 31636
 
0080 부여·고려·百濟 건국설화
부여 동명설화는 부여 북쪽에서 왕을 모시는 시녀가 하늘의 정기를 받아 임신을 하고 동명을 낳았는데, 그가 활을 잘 쏘자 시기를 받아 쫓기게 되었고 하늘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 부여를 세웠다는 이야기다. 고려 주몽설화는 부여에서 도망나온 주몽이 강을 건너 고구려를 세운다는 것으로 이야기 구조는 부여 동명설화와 같다. 백제 비류온조설화는 주몽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가 갈라져 나가 각각 미추홀과 위례성에 정착했다가 위례성으로 합쳐 백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1989#32106 SIBLINGS CHILDREN 32106
 
0265 晉書(648) 幽州
郡國七 縣三十四 戶五萬九千二十 范陽國(涿 良鄉 方城 長鄉 遒 故安 范陽 容城) 燕國(薊 安次 昌平 軍都 廣陽 潞 安樂 泉州 雍奴 狐奴) 北平郡(徐無 土垠 俊靡 無終) 上谷郡(沮陽 居庸) 廣甯郡(下洛 潘 涿鹿) 代郡(代 廣昌 平舒 當城) 遼西郡(陽樂 肥如 海陽)
1989#32107 SIBLINGS CHILDREN 32107
 
0276 晉書(648) 平州
統縣二十六戶一萬八千一百 昌黎郡(昌黎 賓徒) 遼東國(襄平 汶 居就 樂就 安市 西安平 新昌 力城) 樂浪郡(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玄菟郡(高句麗 望平 高顯) 帶方郡(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1989#32108 SIBLINGS CHILDREN 32108
 
0302~0315 高麗와 百濟
○ 고려는 302년에 현도군을 침공하였고 312년에는 요동국 서안평현을 차지했으며 313년과 314년에는 각각 낙랑군과 대방군을 병합했고 315년에는 다시 현도군을 침공하였다. 이것은 구려가 요동을 차지하였다(高驪略有遼東)는 표현에 어울리지 않는다. ○ 백제는 304년에 낙랑군의 서쪽 현을 빼앗았다가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 의해 왕이 살해되었다. 백제가 요서를 차지하는(百濟略有遼西)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1989#9923 SIBLINGS CHILDREN 9923
 
0307~0312 단부, 우문부 그리고 모용부
0307~0312 단부, 우문부 그리고 모용부
1989#32109 SIBLINGS CHILDREN 32109
 
0307~0312 단부, 우문부 그리고 모용부
0307~0312 단부, 우문부 그리고 모용부
1989#32104 SIBLINGS CHILDREN 32104
 
0313~0338 遼西國
단부 선비가 서진의 燕, 漁陽, 范陽, 上谷, 廣寧, 代, 遼西, 北平 8군을 차지하고 건립하였다.
1989#5584 SIBLINGS CHILDREN 5584
 
0317 東晉
司馬睿에 의해 강남에 세워진 西晉의 망명 왕조이다.
1989#9836 SIBLINGS CHILDREN 9836
 
0420~0479 劉宋과 0386~0534 北魏
0420~0479 劉宋과 0386~0534 北魏
남북조 시기의 요서 지역은 선비족이 세운 燕이 전연, 후연 그리고 북연으로 바뀌며 점유하고 있었고 436년에 북연이 北魏에 흡수된 이후로는 북중국의 패자인 위에 의해 안정적으로 점유되었다. 
1989#5572 SIBLINGS CHILDREN COMMENT 5572
 
0472 魏書(554)
臣(개로왕)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선대에는 우의를 매우 돈독히 하였습니다.
1989#5568 SIBLINGS CHILDREN COMMENT 5568
 
0472 魏書(554)
璉(장수왕)에게 조서를 내려 安 등을 호송하라고 하였다. 안 일행이 고구려에 이르니, 연은 옛날 여경(개로왕)과의 원수관계가 있음을 말하며 동쪽으로 통과시키지 않았다. 안 일행이 이로 말미암아 모두 되돌아왔다.
1989#5573 SIBLINGS CHILDREN COMMENT 5573
 
0475 魏書(554)
安 등으로 하여금 동래로부터 바다를 건너가 여경(개로왕)에게 새서를 내려 그의 정성을 포상하게 하였다. 그러나 안 등은 바닷가에 이르러 바람을 만나 표류하다 끝내 도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 북위에서 뭍으로 백제에 갈 수는 없었고 바닷길로는 사신도 제대로 보낼 수 없었다.
1989#5574 SIBLINGS CHILDREN COMMENT 5574
 
0475 百濟의 남하
0475 百濟의 남하
고려의 침공을 받아 백제는 한성을 잃고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1989#5571 SIBLINGS CHILDREN COMMENT 5571
 
0488 宋書
百濟國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其後高驪略有遼東百濟略有遼西百濟所治謂之晋平郡晋平縣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리 밖에 있었다. 그후 고려가 요동을 차지하자 백제는 요서를 차지하였다. 백제는 치소를 두고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1989#26720 SIBLINGS CHILDREN COMMENT 26720
 
0488 「솔까역사」 宋書
百濟國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 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謂之晋平郡晋平縣)✘ 백제는 본래 고려와 함께 요동 동쪽 천여리에 있다. ▐ 서진 말에 모용부 선비가 창려, 요동 등 평주를 차지하자 단부 선비가 요서, 북평 등 유주를 차지한 적이 있는데, 이 모용부와 단부를 각각 고려와 백제로 잘못 적었다는 설명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진평은 북평의 오기가 된다.
1989#16651 SIBLINGS CHILDREN 16651
 
0495 南齊書(537)
495년에 모대(동성왕)가 표문을 올려 말했다. "지난 경오년(490)에는 獫狁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 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역습케 하여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匈梨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쫓아가 베니 시체가 들을 붉게 했습니다." ▐ 獫狁과 匈梨는 혐칭인데, 여기서는 475년에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킨 고려를 말한다.
1989#39361 SIBLINGS CHILDREN COMMENT 39361
 
0495.08 三國史記(1145)
고구려가 치양성을 포위하자 동성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 소지 마립간이 장군 덕지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니 고구려 군사가 물러갔다. ▐ 백제는 고구려의 침공을 막아내는 일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1989#5580 SIBLINGS CHILDREN COMMENT 5580
 
0516 기문분쟁 직후
0516 기문분쟁 직후
475년에 고려에게 한성을 빼앗긴 백제는 웅진으로 내려와 조금씩 재기하고 있었다. 512년에 왜로부터 임나 4현을 얻었고 역시 왜의 지원을 받아 가라로부터 기문을 빼앗았다.
1989#5578 SIBLINGS CHILDREN COMMENT 5578
 
0526~0539 梁職貢圖
百濟舊來夷馬韓之屬晉末駒麗畧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백제는 옛날 흘러온 오랑캐로 마한에 속했는데, 진나라 말기에 고려가 요동을 차지하니 낙랑도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였다.
1989#2394 SIBLINGS CHILDREN 2394
 
0526~0539 「솔까역사」 梁職貢圖
百濟舊來夷 馬韓之屬 (晉末 駒麗畧有遼東 樂浪亦有遼西晉平縣)✘ 백제는 옛날 흘러온 오랑캐로 마한에 속했다. ▐ 서진 말에 모용부 선비가 창려, 요동 등 평주를 차지하자 단부 선비가 요서, 북평 등 유주를 차지한 적이 있는데, 송서(488)에서 이 모용부와 단부를 각각 고려와 백제로 잘못 적었고 양직공도는 이를 계승한 듯하다.
1989#32580 SIBLINGS CHILDREN COMMENT 32580
 
0537 南齊書
是歲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入其界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大破之 490년에 위노(북위)가 또 다시 기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지경에 들어가니, 모대(동성왕)가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그리고 목간나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 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1989#27431 SIBLINGS CHILDREN COMMENT 27431
 
0537 「솔까역사」 南齊書
是歲(魏虜→)髙麗又發騎數十萬攻百濟入其界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大破之 490년에 고려가 또 다시 기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지경에 들어가니, 모대(동성왕)가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그리고 목간나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 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1989#32113 SIBLINGS CHILDREN 32113
 
0537 ◾
동성왕이 495년에 보낸 표문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표문에서 獫狁 또는 匈梨라 한 것을 여기서는 魏虜로 바꾸어 놓았다. 북위가 백제를 침공할 이유는 없고, 가능하지도 않으며, 북위의 역사를 기록한 위서(554)에도 나오지 않는다. 당시 백제는 고려와 잦은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표문의 獫狁 또는 匈梨는 고려라고 보아야 한다. 魏는 齊의 적일 뿐이다.
1989#32114 SIBLINGS CHILDREN 32114
 
0538 三國史記(1145)
봄에 서울을 사비(다른 이름은 소부리였다)로 옮기고 국호를 南扶餘라 하였다.
1989#5569 SIBLINGS CHILDREN COMMENT 5569
 
0565 北史(659)
조서를 내려 신라국왕 김진흥을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 ▐ 낙랑군공은 처음에 고려왕에게 주어지다 나중에 신라왕에게 주어졌고 고려왕에게는 요동군공이 주어졌다. 백제왕에게는 대방군공이 주어졌다.
1989#32117 SIBLINGS CHILDREN COMMENT 32117
 
0570 北史(659)
제(北齊)의 후주는 여창(위덕왕)을 사지절 시중 차기대장군 대방군공 백제왕으로 예전처럼 책봉하였다.
1989#32119 SIBLINGS CHILDREN COMMENT 32119
 
0571 北史(659)
又以餘昌爲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 또 여창(위덕왕)을 지절 도독동청주제군사 동청주자사로 삼았다. ▐ 전해에 대방군공 백제왕이란 작위를 내린 것과 크게 차이가 난다. 청주는 지금의 산동 반도 일대를 말하지만, 작위에 들어가 있는 청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989#27408 SIBLINGS CHILDREN COMMENT 27408
 
0636 梁書
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晉世句驪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그 나라는 본래 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나라 때에 이르러 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1989#7360 SIBLINGS CHILDREN COMMENT 7360
 
0636 「솔까역사」 梁書
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 (晉世句驪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그 나라는 본래 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 서진 말에 모용부 선비가 창려, 요동 등 평주를 차지하자 단부 선비가 요서, 북평 등 유주를 차지한 적이 있는데, 송서(488)에서 이 모용부와 단부를 각각 고려와 백제로 잘못 적었고 양서는 이를 계승한 듯하다.
1989#32094 SIBLINGS CHILDREN 32094
 
0659 南史
晉世句麗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진나라 때 구려가 요동을 공략하여 차지하자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 두 군 땅을 차지하고 백제군을 두었다. ▐ 양서와 내용이 동일하다.
1989#27432 SIBLINGS CHILDREN COMMENT 27432
 
0659 「솔까역사」 南史
(晉世句麗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 양서(636)와 같다.
1989#32095 SIBLINGS CHILDREN 32095
 
0677 舊唐書(945)
광록대부 태상원외경 겸 웅진도독 대방군왕을 제수하여 본번에 돌아가 남은 무리들을 안집케 하였다. 이때 백제의 옛 땅이 황폐하여 점점 신라의 소유가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隆은 끝내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죽었다. 그의 손자 敬이 측천 때에 대방군왕에 습봉되어 위위경을 제수받았다. 이로부터 그 땅은 신라 및 발해말갈이 나누어 차지하게 되었으며(其地自此爲新羅及渤海靺鞨所分) 백제의 종족은 마침내 끊기고 말았다.
1989#27407 SIBLINGS CHILDREN COMMENT 27407
 
0677 星湖僿說(1760±)
然百濟之亾 其地爲新羅渤海靺鞨所分 此亦必遵中國之書而誤之也 百濟之地何甞入扵靺鞨 "백제가 망하자 그 땅은 신라와 발해말갈로 나뉘었다" 했으니 이것 역시 중국의 기록을 좇아 잘못된 것이다. 백제의 땅이 언제 말갈에 들어간 적이 있었던가?
1989#5575 SIBLINGS CHILDREN 5575
 
0677 東史綱目(1778)
통전과 당서에 “백제가 망하니, 그 땅이 신라와 발해말갈에게 분할되었다”고 하였는데, 삼국사기에서 그 글을 인용하였고 통감에서도 그를 따랐으니 잘못이다. 발해말갈과 백제는 서로 남북으로 동떨어져 있는 사이라 비록 침략하였다 하더라도 어찌 그 땅을 나누어 둘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를 취하지 않는다.
1989#40461 SIBLINGS CHILDREN COMMENT 40461
 
0801 通典
晉時句麗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今柳城北平之間 진나라 시기에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였다. 지금의 유성과 북평 사이이다.
1989#5577 SIBLINGS CHILDREN COMMENT 5577
 
0801 「솔까역사」 通典
(晉時句麗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今柳城北平之間)✘ ▐ 서진 말에 모용부 선비가 창려, 요동 등 평주를 차지하자 단부 선비가 요서, 북평 등 유주를 차지한 적이 있는데, 송서(488)에서 이 모용부와 단부를 각각 고려와 백제로 잘못 적었고 통전은 이를 계승한 듯하다.
1989#32096 SIBLINGS CHILDREN 32096
 
0900⁻ 三國史記(1145)
髙麗百濟全盛之時強兵百萬南侵吳越北撓幽燕齊魯爲中國巨蠹隋皇失馭由於征遼 고려와 백제는 전성기에 강한 군사가 백만이어서 남으로는 오, 월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북경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의 연과 제, 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습니다. ▐ 최치원이 당나라 관리에게 고려와 백제를 비난하며 했던 말이다. 일종의 외교문서이고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1989#26706 SIBLINGS CHILDREN COMMENT 26706
 
0900⁻ 三國史記(1145)
伏聞東海之外有三國其名馬韓卞韓辰韓馬韓則髙麗卞韓則百濟辰韓則新羅也 엎드려 듣건대 동쪽 바다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 변한, 진한이었습니다. 마한은 고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 최치원의 말인데, 이 때문인지 고려를 마한으로 인식하는 사례가 중국과 한국 기록에 나타난다.
1989#5579 SIBLINGS CHILDREN COMMENT 5579
 
1084 資治通鑑
永明六年魏遣兵擊百濟為百濟所敗 488년에 위(北魏)가 군사를 보내 침공했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1989#39366 SIBLINGS CHILDREN COMMENT 39366
 
1084 「솔까역사」 資治通鑑
永明(六→)八年(魏→)髙麗遣兵擊百濟為百濟所敗 490년에 고려가 군사를 보내 침공했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 남제서(537)의 기록을 요약한 것인데 연도를 잘못 표기해 놓았다.
1989#810 SIBLINGS CHILDREN 810
 
1145 三國史記 百濟
東城王 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북위가 군사를 보내 와서 침공하였으나 우리에게 패하였다.
1989#32111 SIBLINGS CHILDREN 32111
 
1145 「솔까역사」 百濟
(魏→)髙麗遣兵來伐 爲我所敗 고려가 군사를 보내 침공해 왔으나 우리에게 패하였다. ▐ 자치통감(1084)의 오기를 계승했다.
1989#16633 SIBLINGS CHILDREN 16633
 
1778 東史綱目
중국 사람들이 항상 부여와 백제를 혼동해 일컫기 때문에 남사에는 “진나라 때 구려가 요동을 점유하고 백제 또한 요서의 진ㆍ평 두 고을을 점거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말은 모두 중국에서 그릇 전문된 것인데 억단하여 의견을 세워 놓은 것이다.
1989#32118 SIBLINGS CHILDREN COMMENT 32118
 
2003 고등학교 교과서
정복 활동을 통하여 축적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백제는 수군을 정비하여 중국의 요서 지방으로 진출하였고, 이어서 산둥 지방과 일본의 규슈 지방에까지 진출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였다.
1989#32329 SIBLINGS CHILDREN COMMENT 32329
 
2025 慕容略有遼東 段略有遼西
2025 慕容略有遼東 段略有遼西
대체로 모용부가 창려, 요동 등 평주를 장악하고 단부가 요서, 북평 등 유주를 장악하였다. 이것은 모용이 요동을 차지하자 단이 요서를 차지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1989#14777 SIBLINGS CHILDREN 14777
 
2025.03.01 #youtube
백제와 북위의 전쟁기록은 오기
1989#32134 SIBLINGS CHILDREN 32134
 
2025.03.10 #youtube
백제의 요서 점유 기록은 오기
1989#6627 SIBLINGS CHILDREN 6627
 
段氏鲜卑
1989#14773 SIBLINGS CHILDREN 14773

-